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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한마음교회 주일 메시지 가장 행복한 사람 (고후 6:1-10) 이 동철 목사님 09-01-200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서론> 행복한 조건을 가지고도 자신이 행복한지를 모르면 그것처럼 불행한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속고 산다. 영적으로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단은 끊임없이 속이고 있다. 사실은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 속에 있고 다 받았는데 작은 상처와 문제, 부족한 것 하나 가지고 늘 속는다. 사단은 '너는 외롭고 불행하고 실패하고 부족하고 불쌍한 사람이다'고 속인다. 우울증, 환청,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여기에 속고 있다. 부정적인 소리만 들려온다. 사단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인생을 실패로 몰고 간다. 분명히 빛 가운데, 영원한 생명 속에 있으면서도 삶이 어둡고 작은 문제에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예배속에서 우리가 최고로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다. 이것이 안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사단이 여러분을 속이게 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실패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는 몰라서 그렇다. 영원히 죄와 저주에서 해방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시고 나의 도움이시고, 또 내가 영원한 생명속에 있다. 그런데 불평, 원망, 다툼과 시험에 들다가 세월을 다 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보라. 이것은 우리의 거울이다. 고전 10장에 이것은 말세의 경계가 되고 거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종살이에서 해방 받았다. 더 이상 종과 노예가 아니다. 무엇을 해도 축복 받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었다. 그래서 광야 40년동안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았다. 물과 음식이 없고 대적이 와도 하나님께서 책임 지셨다. 사단이 아무리 속이고 망하게 하려고 몸부림 쳐도 우리는 결국 이기게 되어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역사 하셨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리로 먹이시고, 광야 길에 구름으로 인도 하셨고, 불기둥으로 보호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 하셨다. 40년 광야 길은 살아 온 것이 기적이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길에서 불평, 원망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인생을 끝내 버렸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런 백성과 함께한 모세는 불쌍했다. 원망,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을 인도하다가 화가 나서 반석을 치게되고 나중엔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 저는 불평이 아니라 모세의 말에 청종하는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되기 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 불평한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 환경, 사람에게 속은 것이다. 그래서 신33:29에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임종의 시간에 마지막 설교를 한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와 같이 얻은 자가 너희 외에 또 있느냐?" 라고 말한다. 400년 종살이에서 구원받고 가는 인생 길에 하나님이 인생을 책임 지셨는데 이것을 몰라서 헤매다가 세월을 다 보내고 인생을 다 놓쳐 버린 것이다. 40일이면 가는 것을 40년이 걸려서 간 것이다. 환경과 현실을 보고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누리고 고백한 사람이다. 이것은 문학중의 문학이요 시중의 시이다. 어느 한국의 문인이 이 시대에는 진정한 술군이 없어서 진정한 시가 없다고 말했다. 술에 취해보지 않고는 환경과 현실을 뛰어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시를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술 취한것 그 이상으로 환경과 현실을 뛰어 넘고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세상이 불수 없는 평안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고백하는 시와 신앙고백이 많이 있다. 예술가들과 문학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제대로 받고 성령에 취해버리면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이다. 복음 전하다가 문제 속에 있었던 바울이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스스로 자천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날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버린 것이다. 그는 복음 전하다가 환란, 궁핍, 곤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매맞고, 배고픔과 자지 못함과 오만 일을 다 당했다. 그래서 8절에는 '내가 나의 이름의 영광과 욕됨에 같이 있었고 악한 이름과 영광의 이름이 있다'고 말한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욕을 먹은 적이 있으신가?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괜찮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속이는자 같은나 진실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자 같으나 살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자 같으나 다 가진자라고 말한다. 바울이 누렸던 이 행복의 비밀이 우리의 평생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바란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두가지를 생각해 보겠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그 첫째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본문 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는데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모르니까 내가 비참한 것이고 문제와 사건속에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가 아니라 율법을 받았다면 그것 때문에 우리는 정죄 당하고 계속 망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를 받았다면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과 종교를 주신 것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은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복음의 축복이고 복음의 능력이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직접 오셨고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회복시키셨고 그것을 값없이 주셨다. 그래서 은혜라고 한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와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오는 선물이라고 하셨다. '아들을 주신이가 그 아들과 함께 다른 좋은 것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저주와 죄가 끝나고 영원히 저주 받을 수 없는 자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때문에 부활 하셨으므로 그분의 부활의 능력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무녀져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다시 여러분을 세우실 것이다.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 가운에 지금 이시간에 임마누엘로 함께 하고 계신다. 어떤 문제를 당해도 하나님은 분명히 세계복음화의 증인으로 세우실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간증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어마어마 한지를 깨달으면 우리의 모든 것이 축복이고 감사와 행복의 조건이다. 문제는 지나고 보면 반드시 축복으로 바뀔 것이다. 문제가 온 만큼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것이다. 우리를 놓쳤던 사단이 우리의 약점을 건드리고 장난질한다. 하나님은 사단이 건드린 이상으로 축복하신다. 사단은 아무나 건드리지 않는다. 바울이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본문말씀처럼 역설적인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당당하게자신과,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라하다면 불행한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은혜와 감사의 조건이다. 살아서 숨쉬고 있으니까 구원받은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받은 것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는 생명이요 영원히 망할 수 없는 생명이고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이고 그 나라에 그 분과 함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죽는것도 은혜다. 죽어도 새로운 생명의 시간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답만 붙잡고 가면 되는 것이다. 전9:7-9에는 우리가 복음을 모르고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세상은 헛된 것 이라고 말한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 땅에서 끝나고 영원한 저주와 심판속에 서야 한다. 이 땅의 흑암속에 있고 영적인 고아로 사는 인생은 사는 것이 고생이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가졌든들 그것이 행복이겠느냐'고 말하다. 전도서의 핵심은 인생이 헛된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영원까지 허락된 약속을 붙잡고 있는자라고 말한다. 이것을 전제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허락되어진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내 생에가 얼마나 감사한 인생인지를 깨닫고 가라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가진 자의 삶이다. 바울은 이 답이 있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복음과 그리스도 그리고 임마누엘 속에 있다는 것을 가슴 저리게 알고 있었다. 2. 받은 은혜를 나누었던 사람 두번째로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엄청난지를 깨달았고 그 은혜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본문 10절에 '내가 근심하는 자 같이 보이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이 보이나 나는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영적인 부요와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누리니까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부요해 진다. 이것이 전도요 복음 가진 자의 축복이다. 그리고 영적인 흑암의 세력이 무너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성경은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내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복의 근원이 샘물과 같이 솟아나기 때문에 결국은 나 때문에 살게 된다. 성경에는 우리 안에 영생의 샘물이 넘치고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 주는 데도 솟아난다. 나의 누림을 나누어주는 축복과 비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된다. '너는 복의 근원이고 너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이 확신을 가지고 가야 한다.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가야 한다. 진정한 겸손은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속에 들어가야 나오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과 세상을 부요케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는 한 평생 이 축복을 누리고 살다가야 한다.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안의 부요인 평안, 자유, 해방과 응답을 누리니까 나 때문에 사람이 살아나고 일군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가졌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향기처럼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1) 사람을 부요케 하는것에 담긴 의미 사람을 부요케 한다는 것에는 몇 가지 뜻이 있다. ① 사람을 살리는 사람 첫째로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율법을 가졌다면 사람을 계속 죽일 것이다. 율법은 계속 정죄, 판단해서 죽이는 것이다. 율법은 그 목표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답을 주는 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잡아야 한다. 율법아래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정죄요 판단이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는 무조건 살리는 것이다. 상대의 문제를 놓고 정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이 보게 하신 것은 기도하고 그를 도와 주라고 하신 것임을 깨달은 자를 사명자라고 한다. 복음을 가진 자는 치유를 받고 자신이 자유함을 받고 진정한 사명자가 되는 것이다. 복음은 언제나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에 책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책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율법의 책망은 정죄와 비난을 위한 것이고 복음의 책망은 사랑하기 때문에, 잘되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롭고 겸손한 자를 책망하면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지만 거만한 자를 책망하면 그가 너를 미워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정말 상대를 사랑하고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때에 한 마디를 하라. 아니면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 ② 사람을 잘되게 하는 사람 그러면서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그냥 돕고 축복하는 것이다. 성경은 원수라도 축복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축복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에게 한 축복은 그 기도가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한다. 축복의 씨를 뿌리시기 바란다. ③ 사람을 세우는 사람 정말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는 사람을 세우는 자이다. 아무리 오네시모 같은 도둑이라도 바울과 같은 복음의 사람, 사람을 세우는 사람을 만나니까 사도와 감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눈이 열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갈급한데 메시지를 아무리 줘도 끝까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끝까지 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신학교 주일을 지키고 있다. 신학교를 세우는 일은 후대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될 일이다. 우리가 복음을 몰라서 율법과 종교의 체질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말씀이 맞는데 삶에서 확인이 안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복음을 듣고 자라난 아이들은 삶이 복음이고 응답이다. 미국 사람들은 삶의 응답과 평안과 누림이 있는 것이다. 신학교와 신학생을 도우는 일은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것이다. 저의 아들을 결혼하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목사로 바쳤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자라고 있다. 목사가 행복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첫째로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인생 전부를 책임질 것이라는 자부심이 내게 있다. 두 번째는 끊임없이 주는 축복을 저는 알고 있다. 주는 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래의 모습이다. 사람을 사랑을 줄 때 행복한 것이다. 내게 있는 작은 것을 줄 때 행복한 것이다. 전도하고 남을 도왔는데 시험들고 허전한 사람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고 자기 이름으로 했을 것이다. 또 자기 안에 누림이 없이 의무로 했을 것이다. 직업적인 목사가 되면 목사의 일 자체가 고통이다. 세 번째로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기 때문에 목사로 된 것이 행복하다. 저는 법관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저는 후회스럽지 않다. 검사, 변호사는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직업이지만 목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다. 오늘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사람을 살리는 주의 종을 세우는 헌금이다. 평생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헌금 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요케 하실 것이고 여러분 때문에 모든 사람이 결국은 부요케 될 것이다. 내게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니까 나 때문에 다 잘될 것이다. 한 평생동안 후대를 살리고 가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수천 수십만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다. 내가 복음의 부요를 누리고 평생 사람을 부요케하는 축복을 누리다 가게 기도하시고 한 주간 승리하시기 바란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에는 창3장 문제가 계속 오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은혜 속에 있는 자인 하나님의 자녀요 약속의 백성으로, 세계복음화의 증인으로 세워질 우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은혜를 누리고 그 고백속에 살아가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의 누림과 부요함 속에 어떤 어둠의 권세도 우리를 이기게 하지 못하게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이 한 주간의 기도의 제목이 되고 인생의 응답이 되고 평생의 신앙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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