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 RUTC 시대 :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사람들(왕하2:6-14) 9/30/2018

제1,2,3 RUTC 시대 :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사람들(왕하2:6-14) 9/30/2018

 

농사를 짓고 살던 한 농부가 그 시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던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쓰임을 받게 된다. 어느 정도로 쓰임을 받았냐? 다윗 왕국 이후에 이스라엘 국경에서 계속 괴롭히고 공격해 왔던 나라가 있다. 아람 나라다.

이 나라의 군대 장관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를 말씀으로 치유한 사람이다(왕하5장).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침략해오는 아람 군대를 기도로 항복하게 만든 사람이다. 유명한 도단성의 역사이다(왕하6장). 엘리사의 기도로 수많은 아람의 군대가 앞을 보지 못하고 헤메면서 다 죽을 상황이 왔지만 오히려 먹을 것을 주어서 돌려보냈다.

그 이후에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했다(왕하6:23). 기도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붙잡은 나라의 증거를 보이고, 원수까지 살려 보낸 것이다. 치유 사역과 써밋 사역의 모델이다.

그러면서 선지자 학교를 세워서 많은 주의 종들을 배출해서 이스라엘의 최고의 영성을 회복시킨 지도자이다.

렘넌트 가운데 이런 지도자들이 일어나 교회를 살리고, 후대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것이 렘넌트 시대이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일단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자기를 이끌어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며 간절히 원했던 축복이 있었다. 딱 하나를 구한 것이다. “당신의 영감의 갑절을 원하나이다”. 무슨 의미일까?

 

  1. 일단 내 옆에 나를 축복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을 보면 다 그 배후에 그들을 축복하고, 지원하고, 발판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히 하나님은 내 옆에 나를 가르치고 축복해줄 누군가를 붙여주신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놓치고 산다.

1) 모든 렘넌트들은 부모의 축복부터 받으라.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이 그 아들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그 아들 요셉을 비롯한 12아들 을 축복한 것이다. 부모가 언약을 붙잡고 축복한 그대로 후대가 그 축복을 계승한 것이다.

부모가 영성을 가진 부모로 서야 하는 이유도 이것이고, 자식이 부모를 순종해야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무엘이 엄마의 깊은 기도 속에서 쓰임 받은 사람이다. 디모데도 그 엄마와 외할머니의 믿음을 배운 사람이다.

2) 본문의 엘리사처럼 주의 종들의 축복을 받으라. 주의 종들이 평생 내 인생을 축복하는 자들로 있어야 한다.

① 9절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엘리사의 소원은 주의 종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그대로 된 것이다.

② 성경에 모든 교회와 시대와 후대를 살린 모든 사람들이 같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주의 종 모세의 시종으로 있으면서 그를 통해 훈련을 받고, 축복을 받은 것이다.

사무엘의 엄마인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사무엘을 잉태한 것이다(삼상1:17-18)

다윗에게 평생 세 사람의 주의 종이 멘토가 되고, 축복자가 되고, 중보자의 역할을 해주었다(사무엘, 나단, 갓)

사무엘,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안수한 사람이다(삼상16:13). 나단,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할 때 나단에게 상담을 했다(삼하7장). 밧세바를 범하는 큰 실패를 할 때도 나단을 보내어 회개하게 하고, 축복하게 하셨다(삼하12장). 갓, 다윗의 노년에 인구 조사를 하고 큰 고난을 겪을 때에 갓을 통해서 회복의 예배를 드리게 하셨다(삼하24장)

③ 12절에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반복해서 두 번을 부르며 그 축복을 구했다.

아버지는 자녀를 보호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딤전5:17). 가장 중요한 것은 “축복하는 관계”다.

3) 교회의 축복을 받으라. 그래서 누군가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한 것이다.

그만큼 내 마음과 기도 속에 교회가 담겨야 한다. 그래서 모인다. 마귀가 이것을 놓치게 만든다(히10:24-25)

 

  1.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누리는 나만의 깊은 기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집중의 원리가 나온다.

왜 엘리사가 계속 엘리야의 뒤를 좆아 갔을까?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고, 그것이 집중의 방법이었다.

1) 엘리사가 간절히 구한 갑절의 영감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로 말하면 행1:1, 3, 8이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깊은 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영적 축복, 영성이다.

2)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이 흑암 덮힌 시대에 내가 살고, 후대와 교회와 시대를 살린다는 것을 안 것이다.

천명, 소명, 사명을 붙잡은 것이다.

3) 다른 것을 구한 것이 아니다. “오직”이었다. 당연히 유일성, 세상을 바꾸는 재창조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길갈, 벧엘, 여리고라는 도시들을 지나면서 다른 욕심이 생길 수 있었고,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4)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는 데도 끝까지 따라 온 것이다. 일심, 전심, 지속이다.

5) 제자로서 따라 간 것이다. 축복만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엘리야의 시종 역할을 하면서 따라간 것이다.

그것이 당연, 필연, 절대이다. 단순히 사람을 돕고 따라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간 것이다

6) 엘리야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갈 때 모든 길에 24시, 25시, 영원히 같이 바라보며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 제자는 고난도, 눈물도 같이 하면서 가는 것이다. 내가 누구와 붙어 다니냐?가 중요하다.

7)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각인, 뿌리, 체질이다.

 

  1. 엘리사에게 왜 이런 갑절의 영감이 그렇게도 필요했는가? 우리에게는 왜 이런 축복이 필요한 것인가?

세가지 결론을 붙잡고 그 갑절의 영감,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깊은 것을 구한 것이다. 우리가 가질 소원이다.

1) 엘리사가 증인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너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에 살았다. 아합왕 시절이다. 왕도 백성도 타락하고, 대적 이 주는 고통들은 너무 컸다. 엘리야가 너무 지쳐서 생명을 거두어가 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왕상19:1-10)

그 속에서 엘리사는 승리했고, 시대 살린 증인으로 섰다. 하나님은 우리도 그렇게 세우시겠다는 것이다(행1:8) 2) 엘리사가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살리는 자이다. 그래서 대적인 아람의 장군도 살리고, 그 군대 모두에게 먹을 거 주어 살려 보냈다.

성령이 주시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하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는 자로 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3) 엘리사가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쓰기를 원하시는 것이다(마4:19, 마28:18-20). 제자는 그리스도와 복음 때 문에 살 수도 있고, 죽을 것도 준비하는 사람이다(마16:24-25). 받을 응답도 따로 있다(막10:29-30)

결론-단 하루를 살아도 증인으로, 전도자로, 제자로 살 수 있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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