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8) 4/8/2018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8) 4/8/2018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있다. 그 분께서 세상을 살리기 위해 택하신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조용히 그 제자들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 같으면 부활하시고 온 세상에 보란 듯이 알리는 일을 했을 것이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은 교권주의자들, 로마의 권세자들 앞에서 부활절 특별 행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주님은 조용히 제자들을 찾아 가셨다.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이 찾아간 제자들은 그냥 제자들이 아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을 때 무서워서, 절망해서 다 도망간 사람들이다. 특히 베드로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보는 앞에서 자기는 그 분을 모른다고 부인, 저주, 맹세까지 했다. 그렇게 해놓고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제자들이 옛날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으러 간다. 3절에 보면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은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이 시대 남은 자 렘넌트요, 세상 살릴 전도자로 쓰임 받을 자로 부름 받은 것을 알지만 막상 현실과 문제 앞에서는 다른 삶을 산다. 때로는 불안, 염려, 낙심, 원망 속에 살고, 심해지면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보려고 애쓴다. 애를 쓰는데, 되는 것은 없고 거의 불신자 수준으로 사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신 것이다.

주님은 어떻게 이들을 치유하시는가? 결국 이들이 마가 다락방의 주역이 되고,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로마를 비롯해서 전 세계를 살리는 참 제자로 쓰임 받게 된다. 오늘 그 축복이 내게도 새로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1.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이다.

1) 정말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사람은 외롭지도 않고, 어떤 경우도 포기하지 않는다.

① 어릴 때는 부모를 통해서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내가 안전하다는 것(Security)과 내가 중요하다는 자기 존중감 이(self-significance)이 자리를 잡는다. 성장해서는 다른 사람들(친구, 배우자등)을 통해 이것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창3장에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자가 상처투성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기준, 자기 욕심으로 산다. 결국 인간은 서로 상처를 주다가 영적 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다(사61:1)

어떻게 치유하시는가?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이셨다(롬5:8, 요일4:10)

그 십자가의 피로 나는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이다(골1:13, 엡1:3-5)

③ 구원 받아 놓고도 불신앙에 빠지고, 갈등이 오고, 사단에게 속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러 가지 환경, 현실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불신자 상태로 오래 살고, 복음 없는 종교 생활에 오래 빠져 있었 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들어가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못 깨닫고 산 것이다.

2) 예수님이 부활해서 이 실패하고 무너진 제자들을 또 찾아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임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이다(빌1:6)

밤새 빈 그물을 던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봐라” 하신다.

6절에 그 말씀을 따라 했을 때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② 아무리 절망의 시간이라도 우리가 말씀 붙잡고, 믿음 회복하면 반드시 나를 사랑하는 그 분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매일 말씀 붙잡고, 거기서 기도 제목을 찾고, 말씀 따라 가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요15:7).

 

  1.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을 반복해 질문을 하신다.

여기 “이 사람들”이 누구를 의미할까? 그리고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1) 이제는 세상의 것 잠시 내려놓고 그리스도 사랑의 깊이, 높이, 넓이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엡3:18-19)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며 손을 내미시는 그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의 결단과 신앙 고백 속에 붙잡는 것이다.

그때에 나의 숨은 상처들이 치유된다. 그 숨은 상처를 건드리며 나를 속여 왔던 흑암 세력도 그때 무너진다.

그 분의 사랑과 능력으로 채워지면 흑암 세력이 역사할 공간이 없다. 그것이 성령충만이다(엡5:18).

2)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반복해서 고백하게 만든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전도자의 삶 21가지 집중 포인트이 뭐냐? 21가지를 줄이면 7가지이고, 그것을 하나로 줄이면 이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① 갈보리의 사랑에 집중하고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② 내 생각과 감정, 무의식, 잠재 의식에까지 각인 뿌리 체질이 되게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③ 내가 가진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 분만이 나의 오직이 되면 반드시 유일성, 재창조의 능력 나타난다.

④ 이제는 세상의 욕심과 즐거움 좀 내려놓고 주님께 내 마음이 일심, 전심, 지속이 되게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⑤ 평상시에, 어려울수록, 영원까지 바라보며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24시, 25시, 영원이다.

⑥ 내가 해야 할 당연한 것부터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축복으로 바뀐다.

⑦ 이 그리스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세상 살리는 것이 나의 천명, 소명, 사명이다.

어려운가? 해결되지 않는 영적 문제가 있는가? 나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으로 깊이 들어가고 감사해보라.

 

  1.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집중하고, 그것을 체험할 때 깨달아지는 것이 미션이다. “가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나중에는 생명도 걸게 된다(18절). 훗날 제자들은 다 복음 때문에 순교하는 인생을 살다 갔다.

미션은 주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다(“구주를 생각만 해도”의 작시자 버나드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인간은 받기만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줌으로서 받은 것이 커지고, 더 행복해지는 존재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가 가서 먹여야 할 “어린 양”들은 누구일까?

1) 운명, 저주, 흑암에 묶여 고통을 당하는 불신자들이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구원하실 “어린 양”들이 있다.

그들을 찾아내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능력이 나타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나의 전도와 선교)

2)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 여전히 상처 속에 헤메는 어린 양들이 있다.

마25:40에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다(나의 치유 사역 미션).

3)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렘넌트들이 그 속에 있다.

기도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고, 그 기도와 헌신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나의 렘넌트 미션)

 

결론-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길 원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질문 속에 담긴 치유의 언약을 붙잡고, 참된 치유과 새로운 축복이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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