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 RUTC 실현 : 부활 이후-내게 있는 것으로(행전3:1-10) 5/5/2019

제1,2,3 RUTC 실현 : 부활 이후-내게 있는 것으로(행전3:1-10) 5/5/2019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셔서 계속 이 언약을 주셨다. 지난 주 메시지다. 그러면 그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 방법은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나를 살려서 세상을 살리고, 나를 치유해서 세상을 치유하고, 나를 축복해서 세상을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위해 “남은 자들”이다.

마지막 때에 세상은 너무 어려울 것이다(마24장, 딤후3장). 그 속에 우리 개인은 연약하고, 실패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런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요셉이 왕따를 당하고, 그래서 노예로 팔려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요셉을 따로 구별해서 증인으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남은 자”라고 한다. 그 남은 자가 남을 자, 남길 자가 되는 것이다.

본문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 베드로 같은 사람도 쓰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실패한 베드로를 쓰신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택하시고 남겨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아픔도, 실패도, 눈물도, 전부 증거가 되게 만드신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 그 증인의 대열 속에 있고, 거기서 쓰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본문에 그렇게 쓰임 받는 비밀이 있다.

 

  1. 베드로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 앞에서 “내게는 은과 금이 없다”는 고백을 먼저 한다.

장애 때문에 성전 입구에 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설마 그 돈이 없었겠는가?

1) 은과 금에 상관없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나”에 대한 발견이다.

세상에서도 쓰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뭘 가졌느냐가 아니고, 내가 누구냐부터 시작한다(자존감).

문제는 사람들이 보는 나, 세상이 보는 나에게서 내 정체성을 찾기 때문에 여기서 상처받고, 무너진다.

결국 그것이 창3장, 6장, 11장의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2)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 렘넌트의 다섯가지 정체성이 나온다.

①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선택 속에서 부름 받은 것이다(엡1:3-5). “택함 받은 자”이다(롬11:5).

②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 받고,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된 것이다(요일5:11-12) “거룩한 씨”다(사6:13).

③ 그 생명를 가진 나는 어떤 문제, 절망에서도 망할 수 없다(롬8:31-39). “남은 자”다(습2:7).

④ 모든 민족을 살릴 자로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시는 것이다(행11:19). 흩어진 자, “디아스포라”다.

⑤ 세상을 살리고 치유하고 축복할 모든 권세를 주신 것이다(벧전2:9). 왕 같은 제사장, “전도 제자”이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나”, 정체성이 흔들리니까 나머지가 다 흔들린다. 축복을 담을 수가 없다.

 

  1. 베드로는 “이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있다”고 고백한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에 대한 확신과 누림이고, 이것은 남은 자가 가지고 있는 축복이다.

1) 그리스도 영접하고 구원받은 순간 이미(Already) 가지고 있은 축복이다.

①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한 것이다. 그 생명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생명이요, 재창조의 생명이다.

내가 살고,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이다. 생명을 가진 자를 통해 생명이 사는 것이다.

② 그 생명을 가진 자에게 세상을 살릴 권세를 주신 것이다(마28:18-20)

현장에서 분명히 영적 문제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도 주셨다고 했다(눅10:19). 이 영적 권세를 깨달은 자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마12:28)

③ 그 권세에서 따라 나오는 것이 능력이다.

정말 믿으면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했다(요14:12)

2) 이 축복을 깊이 누리는 상태를 성령충만이라고 한다(엡3:19)

① 적어도 다섯가지 능력이 내 평생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영력, 지력, 체력, 인력, 경제력).

② 불신자들은 볼 수 없고, 갈 수 없고, 할 수 없는 하나님이 준비한 절대적인 축복과 응답을 누리는 것이다.

신기하다. 작은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되어지게 하는 축복을 보는 것이다. 이때 참된 써밋의 축복이 시작된다.

그래서 본문에 베드로도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에 대해 “나와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12절)

③ 1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이 축복을 체험한 것이다.

우리가 평상시 정시기도와 정시예배에서만 언약을 제대로 붙잡아도 성령충만을 계속 체험할 것이다.

예배 때 주시는 말씀만 가지고도 3오늘을 계속 해보라.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마다 은혜가 다를 것이다. 거기서 오늘 주시는 언약을 붙잡으라. 그 언약이 성취되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전도 생각하라.

분명히 준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그때 내가 붙잡은 말씀 주라. 반드시 능력이 나타난다.

  1.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구걸하던 그 앉은뱅이의 손을 잡는다.

우리가 치유하고 살려야 할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현장”이다.

1)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적당히 동정하고 끝내지 말고, 그들의 손을 진심으로 잡아주라.

분명히 준비된 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 치유되는 한 사람이 나중에는 생명을 거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2) 적어도 네가지 치유의 과정, 시간표, 결론을 생각하면서 도와주라. 나 자신부터 이 축복을 체험하고 누리라.

① 근본 치유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 치유다. 장애가 있다고 다 동전을 구걸하며 거지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이 영적인 저주 속에 눌려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깨닫고 영접한 순간 그것이 끝나는 것이다(행10:38)

② 마음 치유다. 눌린 영적 문제가 마음과 생각 속에 자리를 잡는다. 늘 상처에 잡혀 있고, 피해의식, 우울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에 잡혀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치유하는 방법이 말씀으로 각인을 바꾸는 것이다(히4:12).

그래서 어떤 말씀을 계속 듣느냐가 중요하다. 복음의 말씀을 계속 듣고, 녹취하고, 묵상하는 만큼 치유된다.

③ 이후에 육신 치유다. 영적 치유, 마음 치유되면 몸은 같이 치유 되게 되어 있다(요삼1:2).

여기에 내 몸에 맞는 운동, 호흡, 음식을 조절해주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치유센터를 놓고 기도하라.

④ 마지막이 환경 치유다(다른 말로 문화 치유). 가정에도 흑암 문화가 가득한 가정이 있다(직장, 사회 마찬가지다)

계속 복음 선포하고 기도하면 그 환경과 문화는 바뀐다. 한 장소에서 계속 다락방, 지교회 사역을 하는 이유다.

 

결론-우리는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기준과 수준으로 살다 갈 사람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일,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쓰임 받다 갈 사람으로 부름 받은 “남은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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