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6) -나의 달란트를 새롭게(마25:14-30) 2/7/2016

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6) –나의 달란트를 새롭게(25:14-30) 2/7/2016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에 제자들에게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주님이 가신 이후에도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게 쓰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중요하게 쓰임 받아야 한다.

“나는 힘도 없고, 가진 재능도 없고, 현실은 너무 어렵다”, 갈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늘 답을 찾아야 한다.

달란트는 로마 시대의 금돈으로 한 달란트는 보통 노동자가 1년 이상을 벌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이 멀리 외국으로 가면서 세 사람의 종들에게 자기의 달란트를 나누어주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뭔가를 남겨 보라는 것이었다. 각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 세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장사를 해서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세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역시 다시 세 달란트를 남겼다. 주인이 돌아와서 이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을 하고 더 많은 것을 맡겼다고 했다.

문제는 마지막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냥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왔을 때 한 달란트 그대로 내놓았다. 이 종이 그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으면서 주인에게 뭐라고 했냐? “당신은 굳은(hard)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고, 헤치지도 않고 모으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냥 그대로 가져 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책임을 주인 탓으로 몰아 버렸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은 내게 준 것이 없다고 한다. 비교 하면서 누구에게는 많이 주고, 내게는 이거 밖에 안 주었다고 한다.

평생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을 만난다.

이 말을 듣고 주인이 뭐라고 했는가? “내가 너에게 너무 작은 것을 주었다. 미안하구나”, 이렇게 했기를 바라는가?

“어쨌든 한 달란트라도 남겼으니 손해는 안 끼쳤구나” 했기를 바라는가? 아니다. 26절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면서 그 가진 한 달란트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쫒으라”고 했다. 우리가 이런 인생을 살다가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꼭 다섯 달란트, 세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살기를 바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이다.

달란트라는 말은 세상적으로는 화폐였지만 성경 다른 곳에서는 “재능, 은사, 직분”, 이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1) 원래는 하나님이 창조할 때 모든 인생에게 주셨던 것이다.

창1:27에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이 그 말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 속에는 적어도 세가지가 포함된 것이다(하나님과 소통하는 영성,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발전시키는 창조성, 하나님의 성품)

여기서 창조성에 관련된 것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 달란트다.

2) 이 축복을 완전히 잃어 버리게 된 사건이 창3장 사건이다.

사단은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 되면서 본래 우리 안에 있던 영성, 창조성, 그 분의 성품, 다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영성은 우상 숭배로 빠져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 동물,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어 섬기게 했다(1:23)

창조성은커녕 게으르고, 무능한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 것이다. 반대로 귀신을 섬기면 다른 능력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준다(뉴에이지 운동, 초능력 운동, 종교의 영성 운동). 인간 안에 하나님의 성품은 다 무너져 버렸다.

3)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보내셔서 이 저주에서 해방 시키신 것이다(구원).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목표다.

구원받은 순간 하나님이 같이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요, 은사이다.

엡4:7-8에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잡은 자를 데리고 가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했다. 거기 선물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적인 은사”를 말하는 것이다(롬12장, 고전12장)

그래서 신자가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 은사들이 보인다.

상처에 잡히고, 흑암에 잡혀 눌려 있을 때는(행10:38)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영적인 지도자들이나 영적인 부모들이 기도를 해주면서 격려를 해주고, 코멘트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윗에게 사무엘이 기름을 부을 때 그때부터 하나님의 신이 크게 감동되었다고 했다(삼상16:13)

작은 것을 하는데 성령이 역사하니까 전문성을 넘어 유일성이 되는 것이다(다윗의 돌팔매, 찬양, 리더쉽)

 

  1.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주셨다는 것이다. 절대 사명을 위해 주신 것이다.

1)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한 달란트를 그냥 숨기고 주인을 원망하는가? 차별을 한 것이 아니고 배려였다.

하나님이 차별했다는 것이다. 비교 의식에 빠져 거기서 낙심을 하고, 포기를 하고, 마귀에게 속는다.

다섯 달란트, 세 달란트도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다. 그래서 칭찬하고 축복하실 때에 하신 말씀이 뭔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더 큰 것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2) 심지어 축복을 하실 때도 다섯 달란트, 세 달란트 남긴 자에게 주시는 칭찬과 상이 같았다.

그것이 은사든, 직분이든 내게 주신 만큼을 감사하고, 그것을 훈련하고, 하나님 앞에서 남겨 보라는 것이다.

이런 중심으로 세상을 살고, 직장을 살고, 신앙 생활을 하면 무조건 성령이 역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치명적인 사고나 장애를 안고도 이 축복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시각 장애인 화니크로스비 등)

 

  1. 내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쓰여지는 인생이 되라는 것이다. 그것이 절대 헌신이다.

1) 달란트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은 것이다. 그래서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재능으로, 달란트로, 이 시간으로, 이 물질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거 가지고 우리의 절대 사명인 전도도 하고, 절대 천명인 세계복음화도 하는 것이다.

부족한가? 한계에 부딪히는가? 정말로 이유를 붙잡고 기도해보라. 하나님은 내 중심을 보시는 것이다.

2) 모든 핑계를 버리고 도전해라. 상처, 가정 배경, 무능력, 전부 핑계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났고, 이제는 내 안에서 성령이 도우시겠다는 것이다.

공부든 일이든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하라. 시대적 업적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헨델의 메시야)

그리고 정말로 기도했다면 생명 걸고 도전해보라(에디슨의 고백 천재는 99%의 땀이고, 1%의 영감이다)

비유에서 주인이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겠는가? 게으른 것은 영적 문제다(잠19:24, 살후3:10)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운동을 하면 뇌 신경도 살아나고, 기억력을 자극하는 해마도 살아난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주셨다. 그 축복을 새롭게 하고, 착하고 충성된 인생을 살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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