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 RUTC 실현 : 오직의 언약을 붙잡은 남은 자(고전2:1-5) 8/11/2019

제1,2,3 RUTC 실현 : 오직의 언약을 붙잡은 남은 자(고전2:1-5) 8/11/2019

 

“오직의 축복”이다. 왜 오직이어야 할까? 오직이라면 뭐가 내게 오직이어야 할까? 그 오직은 뭘 위한 오직일까?

우리가 “오직”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적어도 세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로, 그것은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다.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유일하기 때문에 오직이 될 수 있다.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유일한 것이 아닌데 거기에 오직이 된다면 그것은 속는 것이고, 나중에는 집착이 되고, 중독이 된다. 사단은 자꾸 우리로 세상의 틀린 것으로 오직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창1:2의 문제가 오고, 나중에는 우울증, 자살 충동에까지 가는 것이다.

둘째로, 오직은 내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뭔가에 오직을 한다면 어마어마한 힘이 나온다. 발명왕이라고 부르는 에디슨은 어린 시절에 귀를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뭔가 실험을 하다 폭발을 해서 귀를 다쳤다. 그러나 에디슨은 오히려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뉴에이지 같은 단체들이 이 집중을 훈련해서 다른 힘을 체험하게 하는 데, 오히려 영적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로, 오직은 뭔가를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이 뭔가 마음이 정해지면 끝까지 지속해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특히 늘 인간관계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금방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이 사람에게 이 말하고, 저 사람에게 저 말하는 사람들은 큰 일 하기는 어렵다. 사실은 조심스러운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오직은 무엇이어야 하며, 그 오직은 무엇을 위한 오직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다. 행1:1, 3, 8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능력을 오직으로 바라보고,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고 살리는 키요, 집중 훈련의 키요, 전도자의 삶 62가지의 키다. 연약한 제자들이, 이름도 없는 마가 다락방 성도들이, 핍박자 바울이 로마를 정복하고, 세계를 살린 비밀이다. 그 축복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1. 왜 그리스도가 나의 오직이어야 하는가?

1) 가장 근본적인 시작은 그 분이 나를 오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나를 오직으로 사랑하신 그 분이 나를 향한 그 오직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왜 오직의 사랑인가? 그 분은 단 한번의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사랑하신 것이다.

그것도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이다(롬5:8). 내가 그 분을 알고 사랑하기 전에 먼저 그 분이 나를 택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이다(요일4:10). 이 사랑을 절대 사랑, 오직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2) 그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근본 저주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이다.

근본 저주가 뭐가? 원죄의 저주(롬5:12)이다. 사단의 저주이다(요10:10). 영원한 지옥 저주다(히9:27).

① 하나님의 아들이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고, 모든 저주를 끝내셨다(요19:30)

그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해방된 것이다(롬8:1-2). 그 안에 살아가는 삶이 축복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갈3:14)

② 그 분이 부활하면서 계속 인생을 저주로 몰고 가는 사단의 권세를 박살내고 우리의 왕이 된 것이다(요일3:8)

사단이 우리의 지나온 상처와 현실 문제를 가지고 다시 속이려고 할 것이다. 속으면 늘 패배자, 낙오자가 된다.

이제 그리스도의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 영적 세력들을 쫒아내기만 된다(눅10:19, 고전15:57). 승리자가 된다.

③ 그 분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의 길과 진리와 새 생명이 되어 주신 것이다(요14:6).

그 분을 선지자라고 한다. 이 대제사장, 왕, 선지자를 합쳐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3) 이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한마디로 “복음”(눅2:10)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냥 복음 아니다. 유일한 복음이다(행4:12). 완전한 복음이다(고전2:2). 다시 문제와도 상관없다. 가난해도 상관 없다. 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살아도 죽어도 상관없다. 세상 사는 날 동안은 세상 살릴 증거가 되고(행1:8), 죽으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롬16:27). 이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오직의 가치가 없는가?

  1. 왜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이어야 하는가?

1) 그래야 이 땅에 깔린 사단의 열두가지 틀(올무, 함정. 세상 나라)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우리의 상처, 실패, 저주, 운명, 다 이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빠져 나왔다(골1:13-14)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거기에 속는다. 또 나, 육신과 물질, 세상 성공, 거기에 영적인 세력들, 모든 성장과정의 상처, 가문의 문제가 끝났는데, 거기에 붙잡혀 영향 받고, 눌려 살고, 불신자 수준보다 못하게 사는 것이다.

2) 우리는 더 이상 이 사단이 만든 열두가지의 틀에 묶여 살 인생 아니다. 이 속에 속한 자가 아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요, 하늘의 배경을 누려야 하는 자들이다. 그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눅17:21). 가는 곳마다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도록 기도하라(마12:28)

내 학교에, 친구 사이에,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 시대에 영적인 흐름이 바뀐다. 이러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3) 이 축복을 누리면서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 사업을 한다면 하는 모든 것이 유일성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하늘 배경이 역사한다. 보좌의 권세가 함께 한다. 천사를 동원시켜 도우시는 것이다(시103:19-21)

성공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성공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거기서 증인이 되고, 살려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흑암과 저주와 재난과 고통이 가득한 이 땅에서 이 축복을 빼놓고 무엇을 오직으로 붙들겠는가?

 

  1. 왜 성령의 능력이 오직이어야 하는가?

1) 구원받고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매순간 내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는 늘 불안하고, 염려할 것 밖에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른다. 그것이 솔직한 인생이다.

그런 내 힘으로는 누구도 못 바꾸고, 못 살린다. 내가 나도 못 바꾸는데, 누구를 바꾸는가? 바꾸려고 하지 말라. 성령의 능력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체험하라. 그래서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만 바라보라는 것이다(3-5절)

2) 그 힘을 누릴 때에 작은 일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작품이 된다.

고난과 문제 속에서도 뭔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다윗의 시편, 존번연의 천로역정, 화니 크로스비의 찬송들)

3) 그때에 나를 통해 사람이 치유되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고, 세상을 살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을 재창조의 역사라고 한다. 노예가 세상을 바꾸고, 핍박받는 마가 다락방 성도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결론-우리 한 사람이 하나님께 오직의 사람이다. 그 분이 주신 해답인 그리스도, 천국 배경인 하나님 나라, 영원한 능력인 성령의 능력을 오직으로 바라보라. 내가 살고, 후대가 살고, 교회가 살고, 세상 살리는 증인으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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