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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오늘 치유와 영성(창26:1-5) 9/24/2017
지난 주의 “나의 과거 치유와 영성”에 이어서 이번 주는 “나의 오늘 치유와 영성”이다. 하나님께서 꼭 나의 과거와 오늘을 치유하셔서 하나님이 준비한 모든 축복을 누리고, 가정과 교회와 시대를 살리는 증인으로 세워지길 바란다.
왜 오늘을 치유해야 한다는 제목일까? 이해가 되는가? 적어도 세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
첫째는 실제로 오늘 어려움이 올 수 있다. 일어났는데 몸도 힘들고, 일을 하는데 잘 안 풀리고, 여러 문제가 올 수 있다. 그러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고, 낙심, 불안에 빠지기도 한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면 결국 어떤 일들이 생길까?
오늘 힘들었던 것은 쓴 뿌리가 되고, 또 치유 받아야 할 과거가 된다. 영육은 병들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둘째는 사람은 오늘을 살면서(학업, 일, 사역) 미래를 준비한다. 그런 오늘을 그냥 대충 의미없이 보냈다면 미래에 나는 거둘 것이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미래가 불안하고, 갈수록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셋째는 과거는 잊혀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실제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늘이다.
오늘 행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면 과거 상처도 쉽게 치유된다. 오늘의 행복이 과거의 불행과 상처도 삼켜 버린다. 더 나가서 오늘 행복한 힘으로 미래를 꿈꾸며 도전도 할 수 있다(행복감을 느낄 때 생기는 세로토닌의 힘)
어떤 이유로든 오늘 내가 이렇게 살지 못한다면 그 나의 오늘은 치유 받아야 한다. 오늘이라는 “날”이 치유받은 것이 아니고, 오늘을 사는 나의 삶의 자세가 치유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을까?
- 나의 오늘에 대한 의미가 중요하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맞는다. 그런데 대부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가치있게 깨닫고 살지 않는다. 일단 그것이 문제다. 아무리 작은 것도 그 의미와 가치를 알면 소중히 여기고, 결국은 그만큼의 보상을 얻는다.
우울증이 없어서만 오지 않는다. 너무 많아서 가치를 잃어버리면 만족이 없고, 결국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1) 분명히 나의 오늘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이다(마10:29-30, 대상 29:11-12).
다른 말로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날이다. 우리에게는 매일이 주의 날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 오늘 허락된 이 날에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살전5:16-18의 이유다).
혹시 문제가 다시 오고,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도 분명히 오늘 속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축복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것, 나의 날, 나의 일, 나의 만남, 나의 현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전도도 나온다. 사람들이 나의 오늘을 보고, 증거를 본다. 행복하고 감사하면 오늘 얼굴빛도 다르다. 3) 나의 오늘은 하나님이 준비한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시간이다(갈6:7-9).
하나님 없는 인생, 불신자는 열심히 심어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온다(그것이 창3장의 저주). 그래서 사람들 은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에게는 무엇을 약속했는가? 심는대로 거둔다고 하셨다.
혹시 어려움이 오고, 실패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씨를 뿌리고 있으면 나중에는 반드시
모든 것이 축복과 증거로 바뀐다는 것이다. 오늘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이삭이 그 대표적인 증인이다.
- 어떻게 나의 오늘을 누릴 수 있는가?
1절에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삭의 때에 또 흉년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때 그러더니 왜 내게도 이러지” 하며 불신앙에 빠질 수 있다. 이때 이삭은 문제 앞에서 선택이 달랐고, 누린 축복도 달랐다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를 얻었고(백년의 응답), 시기를 받아 계속 우물을 뺏기고 양보를 했지만 움직 이는 곳마다 축복이 찾아왔고(르호봇의 축복),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이삭이 받은 축복을 인정했다(29절)
1) 어떤 문제 속에서도 구원받은 내게 주신 근원적 축복, 언약적 축복 붙잡으라.
① 이삭이 잠시 흔들릴 수 있는 시점에 하나님이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똑같다.
“내가 지시하는 땅(가나안 언약, 그리스도)에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근원), 너와 네 자손을 하늘의 별 처럼 번성케 할 것이고(증거), 반드시 천하만민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세계복음화)”
②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축복의 언약을 각인시켜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언약이 나 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오늘 듣는 복음과 언약의 말씀이 내게 뿌리를 내리고, 체질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역할이 크다. 어릴 때부터 언약을 각인시켜주고, 믿음으로 사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2) 꼭 나만의 묵상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영적 힘을 얻으라(3오늘의 축복).
내가 하루를 누구와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첫째, 말씀은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약속을 확인하는 것이다(하나님과 전화 통화). 둘째, 기도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셋째, 전도는 하나님이 주실 만남의 축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삭이 잘 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 그가 묵상의 사람이었다(창24:63). 나만의 시간, 깊은 시간을 갖는 것이다.
3) 무조건 오늘을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날로 믿고, 믿음과 감사로 시작하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날,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날이다.
믿음과 감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은 클수록 많이 담고, 깨져 있으면 안 된다.
① 고통을 느끼는 것도 잘 깨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이다(어느 한센병 전문의의 감사)
②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오늘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자족하며 감사하라(딤전6:6-10, 빵 한조각의 감사)
- 어떤 문제(마음의 상처, 경제문제, 질병)가 다시 와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래를 붙잡고, 오늘을 도전하라
도전이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오늘 믿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1) 마귀는 거짓말을 하며 불신앙을 심는다(요8:44). 가라지를 심는 것과 같다(마13:39). 꼭 영적싸움으로 승리하라.
아담이 마귀에 속아 불신앙과 불순종에 빠져 선택을 한 결과가 인류의 고통이다(롬5:12). 한 사람이 중요하다.
그 땅에 기근이 왔을 때 이삭은 애굽(세상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기를 받아 우물을 뺏기고 했지만 사람들 과 싸우지 않았다. 그대신 자기 안에 불신앙, 그것을 부추기는 사단과 믿음의 싸움(영적 싸움)을 한 것이다.
2) 그 기근의 때에 믿음의 씨를 뿌렸는데, 100배의 열매를 거두었다고 했다. 오늘, 지금 그 믿음의 씨를 뿌리라.
기근에 씨를 뿌린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의 사람이 증거를 얻는 기회다.
내 형편 그대로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나누고, 섬기고, 헌신하고, 수고하라.
올 연말까지 많은 훈련의 시간들이 있다. 내 안에, 후대들에게 반드시 거둘 응답의 씨 뿌리는 시간으로 삼으라.
결론-언약 속에서, 나만의 시간 속에서, 오늘 드리는 나의 믿음과 감사 속에서 나의 오늘이 치유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오늘 치유와 영성(창26:1-5) 9/24/2017 September 24,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과거 치유와 영성(창12:1-9) 9/17/2017
하나님이 영적으로 타락한 바벨탑 문화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에서 택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보내서 최고의 축복의 사람으로 만드셨다. 특히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고 부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가 이 갈대아 우르였다. 이 아브라함을 향해 “믿음의 조상”, “축복의 근원”, “모든 민족의 영적 조상”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이 축복이 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온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이라고 강조한다(갈3:29).
이 약속대로라면 우리 각자는 내 가문과 교회와 세상을 살릴 정도로 응답과 축복을 누릴 자들이 맞다. 그런데 솔직히 잘 안 믿어진다. 여전히 지금 나는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오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내야 한다.
오늘 붙잡아야 할 답이 뭐냐? 나의 과거 치유와 영성 회복이다. 아브라함을 보면 많은 어려움과 실패가 있었다. 그 모든 어려움과 실패가 어디서 왔냐? 치유 받지 못한 과거에서 왔고, 그것이 언약을 붙잡고 하나씩 치유될 때마다 그 모든 어려움과 실패도 전부 축복으로 바뀌었다. “복의 근원”이라는 언약대로 인생 전부가 축복이 되었다.
- 왜 과거 치유가 중요한가? 그것이 나의 영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겠다.
1) 과거 치유가 안 되면 내 지나온 날의 시간은 전부 상처로 남고,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진다. 나이가 드는 것도 억울한데 노년이 될수록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자식들과 소통이 안 되고(소외감), 없던 병도 생기고, 노인 우울증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런 고통들이 나이가 들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벌써 성인 시기로 가는 사춘기에 겪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오기도 하고, 갑자기 올 수도 있다(심지어는 공포증, 공황장애)
거의 이런 병들이 과거(상처, 아픈 경험과 기억)와 연결되어 있다. 의식에서는 잊혀진 줄 알았는데 몸이 기억을 하기도 하고, 내 무의식에 남아 있다가 나오기도 하고, 계속 참고 살다가 한계에 부딪혀 나오기도 한다.
2) 우울증, 공포증, 공황장애, 이런 것들이 영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면 회복이 어렵다. 약물로 회복한다고 하다가 약물 중독이 되기도 하고, 거기 자살로 연결되는 것이 많다(대학생들의 30%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경험)
3) 이런 심각한 증세는 아니더라도 믿음(영성)의 큰 손해를 본다. 하나님의 약속, 머리로는 아는데 안 믿어진다. 안 믿는 데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는가?(히11:1-2).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이 없고, 늘 사단에게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유다. 결정적인 사건이 정탐꾼 사건이다. 후대까지 고난을 당한다(민14:33).
- 어떻게 과거 치유를 받을 것인가? 반드시 세가지 축복을 붙잡고, 각인 뿌리 체질되도록 집중해야 한다.
1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했다. 무슨 뜻인가?
1)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순간(구원) 우리에게 시작된 근원적 축복을 붙잡으라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불신자 상태 속에 살았어도, 그래서 어떤 실패 속에 살았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를 영접한 순간 내 근원이 바뀐 것이다. 내가 지시하는 그 땅 가나안(그리스도)으로 가라는 말이 그 말이다.
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 전에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 나는 어떤 배경 속에 살아 왔냐? 창3장의 원죄의 저주, 출20:4-5의 가문의 저주, 요8:44의 마귀의 저주, 히9:27의 영원한 지옥(이 세상부 터 지옥)이 나의 배경이었다. 끝없는 문제와 고통과 저주 속에서 못 빠져 나온다. 운명이라고 한다.
② 그리스도 영접한 순간 우리는 여기서 빠져 나온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지라” 했던 것처럼 모든 숨은 고통과 저주까지도 축복으로 바뀌는 신분을 얻게 된 것이다(근원적 축복). 엡1:3-5의 축복이다.
③ 세상에서도 근본을 강조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세상의 부와 성공에 상관없이 저주 받은 가문과 하나님의 축복 받은 가문은 분명히 다르다. 마귀도 성공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고후5:17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 그 뜻이다. 근본이 다른 것이다. 모든 저주, 운명, 지옥은 끝난 것이다.
2) 이제는 구원받은 내가 구체적으로 누려야 할 언약적 축복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근본이 바뀌었음에도 또 문제가 올 수 있다. 광야 같은 세상이고, 아직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이다(계20:10)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모든 문제에 상관없이 체험해야 할 언약적 축복을 주셨다(2-3절)
과거를 치유하기 위한 모든 방법(최면 치료, 망각, 대면, 약물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언약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말씀 속에서 내게 주시는 언약을 찾아내고, 묵상하고, 붙잡아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히4:12)
4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쫒아갔다”고 강조한 이유도 그것이다.
① 반드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했다. 증인의 언약이다. 나의 남은 생애, 평생의 시 간표를 통해 체험하고 누려야 할 축복이다. 단순한 성공, 축복이 아니다. 나를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언약을 붙잡은 믿음 회복할 때는 전부 축복이 된다. 그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다(롬4:3).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가나안의 헷 족속이 땅을 주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이 그 인생의 결론이다. “내 주여, 당신은 우리 중에 축복 받은 방백(a migthy prince)이니이다”
내 지나온 과거의 눈물도, 상처도, 억울했던 일도, 마귀가 보고, 세상이 똑똑히 보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②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할 것이라고 했다. 승리의 언약이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받고 가나안에 갔다가 기근이 와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애굽왕에 게 준 사건이 있다. 17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 인해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렸다”고 했다. 하나님이 늘 부족하고 실패하는 우리를 이렇게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복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언약적 축복이다. 율법 안에 있었다면 그 믿음대로 저주 받아야 한다.
③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전도자의 축복, 세계복음화의 언약이다.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말할 수 없도록 축복하셨다. 빈손으로 가나안을 갔는데, 집에서 키운 가병이 318명이 었다(창14:14). 롯과 그 가족을 살리고(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 나중에는 완전히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위 해 기도하고, 유일한 복음을 전한 전도자가 된다(창19:29). 그 후대를 통해 다윗과 그리스도가 오신다(마1:1)
3)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을 붙잡으라. 그것이 성령충만이고, 영성이다.
그 모든 상처를 이기고, 넘어갈 수 있는 영적 힘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이다(요4:24).
아브라함이 언약을 깨닫고, 먼저 한 것이 예배다. 가는 곳마다 계속 제단 쌓는 일에 성공한 사람이다(6-9절)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되라. 혼자 드리는 예배, 가정 예배도 중요하고, 내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롬12:1-2).
예배의 키가 뭐냐? 늘 감사 찾아내고, 그 분을 높이고(우선권, 오직), 그 분의 뜻대로 인도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결론-과거 문제 치유받고, 하나님이 준비한 오늘을 누리고,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라. 마지막 때에 사단의 역사가 발악하나 “여호와이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창22:14). 그 속에서 최고의 영성 누리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과거 치유와 영성(창12:1-9) 9/17/2017 September 17,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달려갈 길-써밋(딤후4:3-8) 9/10/2017
오늘은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장이다.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결론과 같이 준 메시지다.
5절에 디모데에게 근신하고, 고난을 각오하고,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했고, 6절에는 본인 자신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전도자로서의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다. 바울과 디모데가 달려가는 길이 같았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하나님 앞에서 달려가는 길이 같다’, ‘목사와 성도가 달려가는 길이 같다’, ‘아내와 남편이 달려가는 길이 같다’, 대단한 열매가 없는 것 같아도 행복하고 성공한 것이다. 세가지가 같으면 된다. 해답이 같고, 결론이 같고, 목표가 같으면 된다. 해답은 그리스도, 결론은 증인, 목표는 세계복음화 할 만큼의 써밋의 길을 가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만 해답이냐? 오직 그 분만 우리 인생이 당하는 모든 문제의 근본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원죄, 사단, 운명, 지옥이다. 인생은 시작부터 원죄의 저주로 시작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안 가르쳐줘도 죄부터 배우고, 평생 죄와 저주를 쌓고 산다.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가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도적질을 하는 자라고 했다(요10:10). 육신의 눈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끝없는 영적 문제를 만들어 우리를 무너지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실패, 고통, 저주가 대를 이어 계속 된다. 운명이라고 한다. 그 마지막은 지옥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이 근본 저주를 그리스도가 제사장, 왕, 선지자라는 세 권세를 가지고 해결하신 것이다.
참 제사장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고, 나를 복의 근원으로 만드신 것이다(롬8:1-2). 참 왕으로 오셔서 우리 인생에 매순간 고통을 주는 사단의 권세를 밟아버린 것이다(요일3:8)
참 선지자로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과 나 자신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되어 주셨다(요14:6).
이 그리스도를 붙잡고 누릴 때 어떤 문제가 또 와도 상관없다. 모든 것이 증거로 바뀐다. 이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 이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인 것을 계속 체험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어떻게 체험하는가?
1) 그리스도 바라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배하는 이 시간도 그 은혜, 그 사랑, 그 능력이 나의 것으로 체험되도록 집중하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문제가 올 때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 붙잡은 잠깐의 집중의 시간만 가져도 된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내 모든 문제를 끝냈다. 어떤 문제도 문제 아니다. 나의 모든 문제는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신 주님, 내 인생 모든 문제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내가 주를 바라봅니다. 주의 은혜와 주의 능력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을 간증하는 증거가 되기를 원합니다”
2) 그때 반드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체험된다(눅17:21). 내가 그리스도를 누리며 기도하는데, 성령이 역사하 시면서 흑암 세력이 무너지는 것이다(마12:28). 그때부터 뭔가 막혔던 하나님과 내 자신과 세상과의 참된 소통 이 시작된다. 흑암 세력이 무너지면서 뭔가 막혔던 관계도 회복되고, 막혔던 문들이 열리는 것을 체험한다.
막힌 문이 열리는 정도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 속에 되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잠3:5-6).
3) 이 비밀을 체험하는 어느날부터 내 안에 꿈이 생긴다. 비전이 보인다.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도 보인다.
그때 뭐를 하게 될까? 내 안에 함께 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영광과 시대 살리기 위한 도전을 하게 된다.
그것을 세계복음화를 위한 써밋의 도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이, 렘넌트가 가야 하는 길이다.
- 우리가 가야 할 길, 써밋을 향한 도전, 어떤 의미일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의 길, 엘리뜨의 길, 힘을 가진 자의 길을 가자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지고, 세상적 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 더 시달리고, 그래서 더 세상을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다. 우리의 성공은 성공 자의 자리에 서서 그 틀린 성공자 살려내고, 세상 살리기 위한 성공자, 써밋의 길을 가는 것이다.
“써밋”하면 생각나는 것이 3단체 중에 하나인 유대인 교육이다. 그들의 교육 방법, 시스템, 대단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만 없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참된 써밋을 향한 7가지 길을 생각하겠다.
1) 유대인들은 토라(십계명 포함한 율법), 쉐마(신6:4-9), 탈무드를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고 지혜를 가르치면서 최 고의 선민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그리스도 복음만 없다. 율법과 전통에만 짓눌려있고, 그래 서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 노예, 포로, 속국, 끊임없는 영적 문제가 계속 된 것이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복음이 뭔지를 알게 하고, 거기서 나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2) 유대인들은 훌륭한 위인, 성공자들을 만나게 해서 모델을 삼게 한다. 중요하고, 굉장한 축복이다.
우리는 두가지가 다르다. 세상의 모델이 없어도 성경의 모델, 특히 하나님이 시대마다 남겨놓으신 렘넌트들의 모델이 있다. 렘넌트들이 걸어간 그 길을 나도 가고 있다. 또하나는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잘했느냐를 보는 것 아니다. 그들이 실패하고 고난을 당하나 그 렘넌트들의 배후에 서서 그들을 이끄신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다.
3) 유대인들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라는 세 절기를 지키며 유대인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우리는 그 절기 속에 담긴 영적 비밀인 그리스도(절대 해답), 하나님 나라(절대 배경), 성령의 능력(절대 능력)을 붙잡는 것이다. 이 비밀을 가지고 그냥 성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살리는 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4) 유대인들은 지금도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며 가족들끼리 모인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모든 민족이 그 안에서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일만이 아니다. 부활하신 그 분이 부활의 능력으로 6일 내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누리며, 승리하고, 현장 살리는 것이다(현장교회).
5) 유대인들은 13세에 성인식을 하면서 스스로 책임지는 독립심을 키워준다. 그때 돈을 모아주기도 한다. 좋다.
우리는 “오직”을 체험하는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의 오직이 될 때 어떤 문제가 와도 상관없다. 내가 나를 책임지는 인생이 아니다. 오직 그 분이 나의 주인되어 나를 책임져주는 삶을 체험하게 돕는 것이다.
6) 유대인들은 곳곳마다 회당을 만들어 공동체 교육을 한다. 거기서 유대인의 문화, 언어, 전통을 공부한다.
우리는 렘넌트 공동체(RUTC 시대)를 만들어 그리스도가 나의 오직이 될 때 그 분의 능력이 나의 모든 하 는 일(그 속에 학업, 기능, 업)에 “유일성”의 증거가 되는 것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7) 유대인들은 중요한 자리에 로지(Lodge)와 유대인 학교를 세워 거기서 엘리뜨 교육을 한다. 이들이 키워 보내는 학생들이 하바드, 프린스턴, 예일 같은 학교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엘리뜨를 세워 무엇을 하는가? 유대인 중심의 세상을 못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영적 써밋)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재창조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그들이 전도 제자)
결론-하나님이 우리를 이 그리스도의 복음 붙잡은 대열에 세우시고, 시대 살릴 렘넌트, 전도제자, 영적 써밋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이다(신33:29, 사60:22, 마28:18). 믿음 가지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해 도전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달려갈 길-써밋(딤후4:3-8) 9/10/2017 September 10,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누릴 축복-소통(딤후3:1-5) 9/3/2017
전도자가 누릴 축복 62가지 중에 오늘은 9가지 소통의 축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본문에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에 어떤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날지를 알려준 것이다. 2-5절까지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다. 총19가지의 악한 일들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긍하고(자기 자랑에 빠지고), 교만하고, 훼방(남을 짓밟고), 부모도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고,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고, 참소하고(남을 허물을 드러내고 비난),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우며(잔인함),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조급하고, 자고하고(허영에 빠짐),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영적 상태) 자들로 가득할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하면 ”모든 관계가 무너지고 깨진다“는 것이다.
마귀가 창3, 6, 11장의 배후에서 한 짓이 뭔가? 모든 관계를 깨지게 한 것이다. 창1:26-28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며, 모든 관계의 화평과 축복을 누리던 것이 다 깨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부부 관계도 서로 비난하는 관계가 되고, 가인과 아벨의 형제 관계도 깨지고(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 세상과의 관계도 깨지고(전부 홍수 심판의 저주 속으로), 바벨탑 사건 이후에 다른 언어를 가지고 다 흩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오신 것인가? 예수님이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길이 하는 일이 뭔가?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성령이 역사하면 모든 관계가 화평하고 하나가 된다(엡4:3-4). 행1:8에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 땅끝 곧 모든 사람, 모든 민족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에 증거를 주고, 쓰시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단이 역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계속 원망하고, 갈라지고, 싸우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뱀의 혀가 갈라져 있듯이 갈라내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 하나되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시키신다고 했다(엡4:6)
이 일을 불신자가, 다른 종교인들이(불교, 캐톨릭, 통일교)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과 저주가 더해져 간다.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회복하고 누려야 할 소통의 축복 9가지 생각해보겠다. 이것을 잘 훈련하면 모든 관계, 만남, 사건 속에서 정확히 하나님의 뜻을 찾고, 성령 인도를 받게 된다. 꼭 렘넌트, 전도자가 회복해야 할 축복이다.
-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소통의 길 세가지다(높이, 깊이, 넓이). 이것을 누리면 참된 영성이 회복된다.
엡3:19에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그 높이, 깊이, 넓이를 누리라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1) 높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그 분이 그리스도이다.
하늘 보좌에 계신 그 분이 내려와서 나를 하나님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그 사랑의 높이가 어느 정도냐?
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 분의 생명, 권세와 능력이 내 안에 함께 하신 것이다(벧전2:9). 그래서 우리가 그리 스도의 권세를 믿고 갈 때 우리가 가는 자리에 하늘의 보좌의 배경이 역사하는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천사가 동원되고(히1:14), 흑암의 세력이 깨지고(눅10:19),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다.
2) 깊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랑이 어느 정도 깊으냐? 영세 전에 날 선택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이다(엡1:3-5)
시139:17-18에 보면 주의 생각은 너무 보배롭고 그 뜻이 깊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를 어느 정도 로 아시는가?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통촉하시고, 저 바다 끝에 거하고, 음부에 거할 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깊은 곳까지 치유하신다.
3) 넓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향한 것이라는 것이다(요3:16)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땅끝까지 가는 것을 전도와 선교라고 하는 것이다.
버나드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찬송가 “구주를 생각만해도” 작시자)-“사람은 자기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러다가 하나님 사랑을 자꾸 체험하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님을 위해 만민을 사랑하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
-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소통의 길 세가지다(과거, 현재, 미래). 이것을 누리면 참된 인성이 회복된다.
내 스스로 나와 단절되어 있고,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내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소통하라.
1) 나의 과거, 단 하나도(실패 아픔도)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정말 하나님이 영세 전에 나를 선택하시고, 영 세 전에 준비한 복음으로(롬16:25) 구원 받은 것이 맞다면 나의 과거, 하나님이 모르는 채 진행된 것인가?
전부 나를 구원하시고, 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이 준비한 미래를 향한 발판이다.
더 이상 나의 과거를 건드리며 속삭이는 사단의 소리를 듣지 마라. 상처, 원망, 하나님 백성의 단어가 아니다.
2) 나의 현재, 감추었던 복음을 이제 나타나게 하셨고(롬16:26), 정확하게 내게 찾아 오셨고, 나의 오늘 속에 함께 하신 것이다. 나의 오늘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구원 받고, 자녀된 나에게 아버지가 허락하신 최고의 시간이다. 모든 불평을 버리고, 오늘을 감사하고, 누리며 살라(그것이 24시, 25시, 영원이다)
3) 나의 미래, 모든 것이 증거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증거로 바뀌는 시간, 그것이 나의 미래다.
복음 없으면 매일이 불안하지만 복음 제대로 붙잡으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오고,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비전). 부족한 나를 렘넌트로, 전도자로 부르신 분이 세상 살리는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를 영원까지 붙잡고 계신다.
-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소통의 길 세가지다(위, 아래, 옆). 이것을 누리면 만남의 축복(사회성)이 회복된다.
1) 위다. 내 위의 권위와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주님도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다(빌2:8)
나를 축복하는 배경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엡6:1-3의 부모, 삼상1:18의 주의 종, 학교에서, 직장에서)
2) 아래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일 수도 있고,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주님은 스스로 낮아지시고, 모든 고통을 체험하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다고 하셨다(히4:15)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아픔의 자리로 낮추시는 이유다(삼상22:2에 다윗이 아플 때에 만난 400명).
3) 옆이다. 편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이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가 모델이다(삼상18:1)
서로 경쟁하고 죽여야 하는 관계인데,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했다. 복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관계이다.
결론-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소통의 사람이 되어 모든 축복을 회복하고, 세상 살리는 일에 쓰여지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누릴 축복-소통(딤후3:1-5) 9/3/2017 September 3,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와 함께(딤후2:1-7) 8/27/2017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이다. 새 가족들은 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복음 가진 우리가 힘을 모아서 렘넌트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힘을 모은다는 의미에서 “Unity Training"이다.
제1 RUTC 운동은 흑암 가득한 시대마다 분명히 하나님이 남겨놓은 렘넌트가 있는데 찾아내서 세우자는 것이다, 렘넌트의 축복이 뭔지를 전달해주고, 시대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발판과 배경이 되자는 것이다.
단순히 내 자식을 잘 키워보자는 것이 아니다. 모세가 귀한 이유가 뭔가? 80세에 부름 받아서, 그리스도의 피 언약 붙잡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 더 중요한 것이 뭔가? 여호수아와 갈렙이라는 두 명의 렘넌트 제자를 세워 가나안 정복을 완성하게 한 것이다. 사무엘이 귀한 이유가 뭔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꾼 다윗 같은 렘넌트가 일어난 것이다. 엘리야를 통해 일어난 렘넌트 제자는 누구인가? 엘리사이다. 지난 주 강단의 주인공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그는 누구인가? 바울이 현장에서 만난 렘넌트 제자이다. 내 육신의 자녀가 아니다. 그런데 생을 걸고 언약을 전달해주고, 도운 것이다. 그들이 시대를 살리고 바꾸는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렘넌트 언약을 잡고 헌신할 때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 축복 속으로 들어가자는 것이 제1 RUTC 운동이다.
제2 RUTC 운동은 뭐냐? 그렇게 세워진 렘넌트들을 데리고 함께 현장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들이 1세대의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면서 “동역자”라고 불렀다(롬16:21). 세상에서도 젊은 세대가 함께 하지 않으면 사업을 해도, 국가도 희망이 없다. 너무 빠르게 사회가 바뀌고, 정보가 전달된다. 1세대의 경험(연륜)과 2세대의 정보와 패기가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를 해보자는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치유하고, 살리고, 세상을 바꾸시겠다는 것이다. 무슨 힘으로 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이다. 구원받은 나와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행1:3의 마지막 언약)
뭘 열심히 하고, 그래서 불가능에 도전해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그 분의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1) 문제와 고통이 있는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가? 문제 아니다. 증거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고, 시간표이다.
요셉이 팔려 갔는가? 그런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창45:5)
2)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무슨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가? 뭐를 해도, 어떤 직장과 학교에 가도 상관이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증거를 주시고, 나를 세상 앞에 증인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언약을 잡고 해라. 반드시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간증을 하게 할 것이다. 나보다 더 귀한 사람이, 심지어는 대적까지 나를 보면서 하나님을 볼 것이다. “너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단6:26-27). “네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다”(창26:29)
내가 부족하고, 실패했을수록 좋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고전15:10) 일부러 모자르게 살고, 실패하며 살라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나를 보고, 그 시간에 체험해야 할 것이 있다.
- 하나님이 주시는 근본 축복이다.
1) 그리스도(행1:1), 하나님의 나라(행1:3), 성령의 능력(행1:8)이다. 이 근본 축복의 시작은 하나다. 그리스도다.
① 나의 연약함과 나의 실패와 내가 지금 겪는 그 문제를 통해서 정말로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 나를 보라는 것 이다. 그리스도 체험하는 기회다. 내가 완전하고 부족하지 않은데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가? 내가 안 되니까 그 분이 오셔서 나를 위해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 또 넘어질 거 아니고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 안에서 해방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고, 축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해답이다.
② 이 그리스도 믿고 가는 모든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요셉처럼 노예로 가도, 감옥에 가도 상관 없고, 왕궁에 있어도 상관없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니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완전히 흑암 가득한 자리라도 거기에 천사가 동원되고, 하늘 보좌의 권세가 나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③ 늘 부족한가? 무능한가? 오직 그 분을 바라보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주신다고 했다(사40:31). 내가 약할 때 그의 능력이 강해진다고 했다(고후12:9-10). 그것이 성령의 능력이다. 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2) 이 근본 축복이 각인, 뿌리, 체질이 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집중해 보라는 것이다.
1절에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지라”고 했다. 강해지고 싶은데, 문제만 오면 흔들린다.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에 속아 불신앙에 빠지지 않으면 잠시 흔들려도 강해져가는 시간이다.
① 그때를 “오직”의 시간으로 집중해보라. 반드시 유일성,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② 두 마음 품지 말고 “일심”으로 해보라. 전심으로 하고, 지속할 수 있다.
③ 이것을 평상시 “나의 오늘”로 습관화시켜 보라. 그것이 24시다. 반드시 25시, 영원으로 연결된다.
④ 무엇을 해도 그리스도를 위한 천명으로 붙잡으라. 나를 부르시는 소명이 깨달아지고, 나의 사명이 보인다.
⑤ 당연히 할 것을 찾아내라. 사실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하는 일이 필연, 절대적인 축복이 된다.
- 렘넌트와 같이 가야 할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현장을 놓고 기도 시작해보라
1) 내가 있는 자리가 내 현장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 모두가 복을 받게 만들라. 렘넌트부터 살리라.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나를 통해 살려 낼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갈급한 사람)
2절에 있는대로 조금만 도와주면 함께 복음 위해 전도자로 쓰임 받을 준비된 사람이 있다(충성된 사람).
2) 7가지 시급한 현장도 있다. 제2 RUTC운동의 핵심 현장이다. 이들에게 그리스도, 복음 좀 전해주라는 것이다.
복지 사역(노인, 어린이, 장애자), 치유 사역(근본치유, 마음치유, 기본치유, 환경치유), 문화 사역(시대 흐름),
다민족, 탈북자. 미자립교회, 선교NGO 이다. 복음 없이 이것을 하기 때문에 온 세상에 더 큰 문제가 계속 된다.
3) 본문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세가지 전도자의 정체성을 붙잡고, 현장 살리는 길을 가라고 했다.
① “너는 영적 군사다”-사람하고 싸우지 말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와 영적 싸움하라는 것이다.
② “너는 경주자다”-마라톤 하는 경주자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불법을 행하고, 악할 일을 하며 나를 훼방하는 자들 이 있고, 그런 일들이 생긴다. 끝까지 언약 붙잡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③ “너는 미래를 심는 농부다”-씨 뿌리는 자는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라.
“씨 뿌리는 자가 먼저 먹게 될 것이라”, 무슨 말인가? 반드시 심은대로 거두어 증거를 볼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7절에 “조금만 생각하면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 단 몇 년 이내에도 우리 교회와 이 사회에 큰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렘넌트 살리고, 렘넌트와 함께 가는 시대를 준비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와 함께(딤후2:1-7) 8/27/2017 August 27,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딤후1:1-8) 8/20/2017
디모데서는 전도자 바울이 자신의 인생과 사역 속에 특별히 사랑했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다. 어느 정도 사랑하고 아낀 아들이냐? 고전4:17에도 바울은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바울이 이 디모데를 어떻게 만났냐? 육신의 자식은 아니고, 바울이 전도하다가 루스드라 지역에서 만난 것이다.
행16:1-3에 보면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위 국제 결혼한 가정의 자녀였고, 이미 청년 시절에 성도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후에 디모데는 계속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역자가 되었고, 로마까지 동행하며(행20:4), 훗날 로마 복음화에 중요하게 쓰임을 받는다.
국제 결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여러 가지 갈등도 있고, 정체성의 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다른 문화권의 부모 아래서 성장부터 다인종, 다민족을 알고 자란 것은 세계복음화를 위해서는 축복이다. 우리 교회에 국제 결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많은 데, 언약이 되고,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마지막 순교의 죽음을 맞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남긴 편지다. 딤후4:21에 보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와서 함께 해주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마지막을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어떤 의미인가? 나중에 그 편지가 성경이 된다. 그만큼 디모데는 하나님 앞에서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나를 통해 이런 렘넌트가 세워질 수 있다면, 그래서 이런 렘넌트가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바울은 이 디모데를 생각하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3절). 이런 렘넌트 한 두 사람만 있으면 행복한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모세가 80세에 세운 여호수아와 갈렙). 이것이 제1 RUTC 운동의 목표요 기도제목이다. 우리 각자가 그 축복의 주역이 되기를 바란다.
디모데가 누린 세가지 축복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주셨고, 계속 체험하라는 것이다.
- 디모데가 가진 영적 배경이다.
배경이라는 말은 뒤에서 받쳐 준다는 뜻이다. 영적 배경이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세가지다.
1) 우리를 구원하시고, 렘넌트로 부르신 하나님 자신이 배경이다.
나를 영원 전에 선택하시고, 창조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구원하신 하나님 자신이 나의 배경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다(사7:14, 마28:10).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결국 하나님이 도와 주어야 한다. 그래서
2절에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2) 믿음의 부모와 가문의 배경이다. 3절에 “너희 조상 때부터 섬겨오던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표현이 있다.
우상 숭배하고, 자손 3,4대 저주를 물려주는 가문의 배경이 있고, 복음 붙잡고 하나님 섬기다기 천대까지 축복 을 물려주는 가문의 배경이 있다(출20:4-5). 모든 부모는 적어도 세가지 배경이 되어주어야 한다.
① 믿음의 배경이다. 5절에 디모데에게 있었던 믿음이 원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다고 했다.
믿음은 눈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힘이고, 그 힘이 자식에게까지 흘러가는 흐름이다. 평상시에, 문제와 사건이 있을 때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영적 흐름이 나를 살리고 자녀를 살리는 것이다.
② 기도의 배경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는 천사가 움직이고, 흑암이 무너지며, 성령의 능 력이 역사하는 것이다. 렘넌트 가는 길을 사단이 얼마나 훼방하겠는가? 생명 걸고 이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③ 정서적인 배경이다. 부모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줄 때 자식은 큰 힘을 얻는다. 반대가 되면 결국 무너진다.
부모가 정말 언약을 붙잡고, 렘넌트의 미래를 보며, 무조건 격려와 용기와 힘을 주면 방황하다가도 돌아온다.
3) 교회의 배경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모든 성도들을 영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는 이 땅의 배경이다.
내가 어느 교회에 속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통 중요한 의미가 아니다. 교회가 나의 영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렘넌트는 내가 어디를 가도 내 교회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누려야 하고, 교회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렘넌트를 놓고 실제로 기도하고, 만날 때마다 힘을 주고 용기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렘넌트는 자기의 기도 제목과 비전을 교회가 알고 기도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 디모데가 가진 영적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떤 영적 상태를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믿음이고, 영성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그리스도 언약을 알고, 나를 향한 하나님 사랑과 계획과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 회복하고, 영적 상태 회복하면 내 인생에 마귀 세력은 깨지고, 내 영적 문제, 삶의 문제, 치유된다.
1) 5절에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했다(영어에는 “신실한, faithful” 믿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하기만 해도 참 믿음 가질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환경, 현실, 남 핑계 대지 말고, 정직하게 날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것 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이 문제, 갈등을 주시는 이유도 이것이다. 거기서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 나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때만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 붙잡을 수 있고,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나중에는 오직이 된다.
2) 4절에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한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눈물이 있는데, 무슨 눈물이었을까?
나 같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에서 나오는 눈물이다. 근본적 감사가 있는 믿음이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정말 내가 도와주어야 할, 기도해주어야 할 영혼이 보인다. 그때 나오는 눈물도 있다. 영혼 사랑에 대한 눈물이다. 그러다가 흑암에 고통 당하는 이 시대를 향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 전도자이다.
울어야 하는 시간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서 내가 뭘 위해 울어야 하는지 답을 찾아 보라.
- 디모데가 누린 영적 은사이다. 흔히 성령의 은사라고 한다(롬12:6-13, 고전12:4-11).
하나님이 나를 그냥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릴 자로 쓰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시는 것이 은사다.
1) 6절에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가 불같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성도에게는 각각 주시는 은사가 있다. 그 속에 우리의 학업, 기능, 경험, 직분, 타고난 성품도 있다. 그것이 가장 작은 것처럼 보여도 성령이 역사하면 세상을 살리는 영적 은사가 된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기능 써밋, 문화 써밋이다. 그것을 도전하라는 것이다.
2) 거기에 사단이 역사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작은 일을 하면서 세상을 분쟁과 저주로 끌고 가는 마귀은사가 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성령의 은사가 되기를 축복한다.
결론-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우리가 가야 할 마지막 결론이 뭔가? 8절이다. 증인으로 세우고, 전도자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 가는 길에 고난도 올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이다.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self-discipline)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 분의 능력 속에 있다. 그 분의 사랑 속에 있다. 우리가 집중하고 훈련할 것은 거기에 “오직”이 되는 것이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딤후1:1-8) 8/20/2017 August 20,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바울이 누린 영성의 축복과 세계복음화(고후12:5-10) 8/13/2017
렘넌트 7명이 체험하고 누린 영성의 축복의 마지막이다. 바울이 누린 영성의 축복과 세계복음화이다.
다시 정리한다. “영성”이란 말은 한마디로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고, 그 성령의 능력이 나의 인생 속에 역사하는 축복을 체험하고 누리는 상태다. 인생이라 함은 나의 내면, 하는 일, 시간표(어리든 늙었든 상관없다), 머문 자리까지 다 포함된다. 이 축복으로 나를 살리고, 교회 살리고, 후대 살리고, 세상 살리다 가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께 쓰임받은 렘넌트들은 언제 이 축복을 체험했을까? 지난 주에 이사야를 통해 보았듯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능력이 아니면 안 되는 내 모습을 진짜 볼 때이다. 자기 개인, 나라, 시대 속에 고통이 계속 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문제가 올 때 사람은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해결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절망하고 자포자기도 한다. 그때 대부분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분노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때 하나님의 답을 얻는다. 먼저는 그 분 안에서 나를 찾는 것이다. 사6:13에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한 씨”라고 했다. 어떤 경우도 망할 수 없는 하나님 생명(영적 DNA)를 가진 것이다.
연약하고 무능한가? 그 분이 준비한 것을 찾으면 된다. 오직 그 분을 바라보면 다른 힘을 주신다고 했다(사40:31).
마지막 깨닫는 것이 그 속에서 나를 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미션이다. 나의 현장을 찾게 하시는 것이다.
작고 연약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나 같은 자 살리고, 세상과 시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사60:22, 62:10)
본문의 바울도 마찬가지다. 그가 세계복음화를 위해 정말 쓰임 받을 때는 세상적으로 잘 나갈 때가 아니었다.
사실은 가장 연약할 때에 가장 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어 쓰신 것이다. 그 능력이 영성이다.
바울을 보면 우리 인생에는 세 단계, 세 시간표가 있는 것 같다.
- 자기 기준, 자기 열심, 자기 능력으로 사는 때이다. 사실은 이것이 불신자가 사는 삶이다.
빌3:4-6에 바울 자신도 꽤나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거 가지고 교회를 핍박했다.
이것이 사단이 만들어낸 12가지 저주 속에 빠진 그리스도 만나지 못한 불신자 인생이다.
1) 먼저는 창3(나 중심), 창6장(육신 중심), 창11장(성공 중심)에 잡혀 있는 나의 근본이다. 내 기준, 수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절대 나를 못 뛰어 넘는다. 육신 기준에 빠져 있으니 영적인 것 못 본다. 육신의 것은 무너지고 흙으로 돌아가니 허무 밖에 안 남는다. 세상에서는 끝없이 경쟁하고 성공하는 듯 하나 상처 밖에 안 남는다.
2)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영적 흐름이 있는가? 행13, 16, 19장에 정치, 경제, 문화, 싹 누가 장악했는가?
겉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인 것 같은데, 그 안에는 사단의 영적 흐름이 흘러가고 있다. 무속, 점술, 우상 숭배다 3) 개인의 인생 근본은 어떤가? 불신자 상태 여섯가지를 못 빠져 나가는 것이다(마귀 자녀, 영적 문제, 정신 문제, 육신 문제, 내세 문제, 후대의 대물림). 빠져 나올 수 없는 저주이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하고 사는 것이다.
한국에 어느 대통령, 열심히 살았고, 약한 자들을 대변하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자살하 면서 “다 운명 아니겠는가” 하면서 갔다. 그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 그리스도다.
-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때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받고, 그 축복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행9장에 가보면 바울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시간이 온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바울에게 찾아오신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그 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계3:20). 하나님이 직접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시간이다.
우리가 누군가가 구원받기를 원할 때는 이런 시간을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대부분 중요한 한 사람이(가족이 든, 다른 전도 대상자이든) 주께 돌아올 때를 보면 그 배후에서 기도한 사람들이 있다(계8:3-4)
2) 이때 그리스도는 어떤 일을 하시는가?
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나의 지나온 과거의 허물, 오늘의 실패, 미래의 부끄러움까지 십자가의 피로 덮여지 는 것이다. 내 영혼 속에 그 분이 거하시면서 나를 영원히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빌1:6)
이 복음만 깨달아도 자유함이 오고, 용기와 희망이 생긴다. 이때 영적인 치유와 마음의 치유가 이루어진다.
② 문제는 은혜 받고도 계속 갈등한다. 내 삶이 치유되어야 한다. 그 시작이 뭔가? 하나님이 나를 보게 만드신다.
내 안에 빛을 비추셔서 나의 숨은 어둠(나의 연약함, 거짓됨, 악함)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바울처럼 그리스도 영접한 순간 보는 사람도 있다. 3일간 소경이 된다. 내가 나를 못 보는 영적인 소경이었다는 것이다. 영적 소경이 되면 내가 얼마나 나 자신과 세상과 마귀에 속고 살았는지 못 본다.
시간이 가면서 말씀, 기도 속에서 영적으로 성숙해 가면서 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 시간표이다.
분명한 것은 반드시 나를 보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게 된다.
-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영성), 그 분의 소원과 미션을 위해 쓰임받는 시간이다(세계복음화).
1) 우리가 평상시에 조금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면 그것을 체험한다(그것이 24시다)
듣는 것,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호흡하면서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시간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때 살전5:16-18이 나온다. 기쁨이 생기고, 사는 것이 기도요, 모든 문제에서 감사 나온다. 평상시 영성이다.
2) 그러다가 어려운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위기가 오고, 바울처럼 치명적인 질병이 올 수도 있다.
어떤 시간인가? “오직”의 시간이다. 왜 이런 시간이 필요한가? 뭐를 위해 허락하시는 시간일까?
① 분명한 결론을 잡으라는 것이다(행1:8). 어떤 문제도 문제 아니다. 이 문제도 그리스도의 증거가 될 것이다.
바울은 그때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는 것이다. 유일성이다.
그래서 바울은 평생 자랑할 것이 두가지 밖에 없다고 했다. 여러 약함(5절)과 오직 그리스도(갈6:14)이었다.
② 하나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주신 것이다(고전2:10). 내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통이 깨달아 진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세상을 살리려고 했던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고통이 깨달아진다.
③ 그때 오히려 세상을 살리는 세계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때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
오직 그 분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도전이다. 실제로 바울은 그 병을 가진 채 훗날 로마복음화에 도전한다.
행19:21에 그 연약한 몸을 가지고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도전한다. 로마로 가는 길에 또 죽음의 위기를 만나지만 하나님은 무슨 답을 주시는가? “바울아 두려워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행27:24)
결론-약한 것도, 실패한 것도, 질병도 문제 아니다. 우리를 영적 써밋으로 만들어 세상 살리는 자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기능 써밋, 문화 써밋의 축복은 따라 온다. 이 언약 붙잡고, 모든 문제 사건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바울이 누린 영성의 축복과 세계복음화(고후12:5-10) 8/13/2017 August 13,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이사야가 누린 영성의 축복과 세계복음화(사6:6-13) 8/6/2017
20년 전 본문에 등장하는 렘넌트의 언약을 붙잡고 한국에서 작은 수련회로 시작한 렘넌트 운동을 통해 전 세계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렘넌트의 언약을 붙잡고 많은 목회자, 선교사, 중직자, 전문인들이 일어났다. 항상 감격스럽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성취시키시고, 성령으로 일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사실이 확인이 된다.
렘넌트 운동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이 운동을 축복하실지 몰랐다. 그 때의 환경, 현실이 그랬다.
본문의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렘넌트의 언약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고, 더 심각했다. 교회는 타락하고 무너지고, 성도들은 세상에 짓밟히고, 완전히 흑암이 이스라엘을 덮고 있는 때였다(사60:2)
이때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 받을 때가 20세 정도의 나이로 본다. 청년이다. 그가 자신의 무능과 무너지는 교회와 나라와 시대를 바라보며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거기서 하나님을 체험한다. “렘넌트”라는 하나님 계획을 깨닫게 되고, 그 분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 그 이후 렘넌트 살리고, 교회와 시대를 살리는 사명자로 쓰임 받게 된 것이다.
이 축복을 영성의 축복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과 시대의 문제를 보며 조금만 그 분께 집중하면 이 축복을 체험한다.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자신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보지만(5절), 그때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응답하게 된다(8절).
우리가 천명과 소명과 사명을 체험할 때는 잘 나고 완전할 때가 아니다. 진짜 부족하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집중하는데, 그때 그 분이 준비하신 축복이, 그 분의 계획이, 그 분의 능력이 체험되고, 훗날 그 분의 증인으로 서는 것이다. 무능도 실패도 상관없다. 나이도 상관없다. 다만 좀 어려서 일찍 영성의 축복을 체험해서 좀 오래 증인으로 살다 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이번 리더 메시지는 핵은 “증인”이다. 오직 복음으로 치유하는 증인, 24시 능력을 체험한 증인, 마침내 세상 살리는 증인이다. 본 대회에서는 그 비밀을 가지고,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도전을 하라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같은 핵심 세가지가 있다. 그것을 붙잡으면 된다.
- 이사야 7:14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를 찾는 길이다.
실패하고 무능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른 답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구원의 축복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는가? 그래서 그 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스스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창3장 사건-롬3:10, 엡2;1, 요8:44)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내 안에, 내 평생에, 모든 문제 속에 함께 하신 것이다. 그 분의 생명과 그 분의 권세와 능력이 내 안에 심겨진 것이다(영적 생명, 영적 유전자). 불신자와 같이 세상에 살고, 때로 넘어지나 우리는 다른 생명,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닭장에서 길러진 독수리 새끼 비유)
2) 내가 누구냐?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다.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이다. 창조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 어 나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에서 해방시켰고, 성령으로 인치시고, 함께 하신 것이다.
내가 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할 때 하나님은 하늘의 배경으로 나를 붙잡고 계시고, 내가 가는 모든 현장 에 역사하는 흑암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렘넌트 7명처럼 노예로 가도 상관없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도 상관없고, 골리앗이 내 인생을 가로 막아도 상관없고, 불 속에 들어가도 상관없다(사41:10, 43:2)
내가 이 비밀을 모르고, 이것을 놓칠 때는 뭐를 해도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하고 살 수 밖에 없다. 나의 영혼 속에, 나의 생각 속에 복음을 각인 시켜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복음이 각인되면 다 치유 받을 수 있다.
- 이사야 40:31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것을 찾는 길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계12:14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다고 했다.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나 아무리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어도 그 날개를 움직일 힘이 없으면 짐이고, 부담일 뿐이다.
1) 여호와를 앙망할 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본 다. 사모한다. 집중한다”는 의미가 있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이런 시간을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사단은 어찌하 든지 이것을 가로막을 것이다(바쁘고, 지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그래서 지속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2) 문제가 오고, 어려움이 온 것은 그 분이 나의 오직이 되도록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①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모두 어려움, 문제, 고통을 통해 이 훈련을 한 것이다. 요셉이 그냥 노예로 팔려가고 억 울하게 감옥을 간 것이 아니다. 모세가 그냥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이 아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쫒겨 그냥 외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나와 사랑을 나누어보자는 것이다.
② 신32:10-12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키듯이 훈련하시고, 하나님이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그 유일한 하나님이 나의 오직이 되는 시간이다.
그 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시62:8),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라. 하나님이 준비한 나의 것(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 그 분의 계획, 그 분의 능력, 그 분의 달란트)가 보일 것이다.
- 이사야 62:10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현장을 찾는 길이다.
나를 증인으로 세워 세상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천명, 소명, 사명을 붙잡으라는 것이다.
1) 성문으로 나아가서 백성을 길을 예비하라고 했다. 우리는 이미 전도자의 대열 속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 가서도 모든 사람을 내가 살릴 대상으로 생각하라. 반드시 현장에는 갈급한 사람, 준비된 사람이 있다.
전도를 계획하고, 기획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다(사60:3)
2) 대로를 만들고 돌들을 제하라고 했다. 내 안에 큰 길을 만들라는 것이다. 돌들을 제하라는 말은 불신앙, 상처에 잡혀 있지 말라는 것이다. 빼내야 한다. 그것을 사단이 심어준 것이다. 나를 살려야 세상을 살린다.
사단은 나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다(욥42:5)
3) 만민을 위해 깃발을 들라고 했다. 깃발만 들면 하나님이 사람을 붙이시고, 문을 여시고, 일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와 내 민족, 내 언어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민족주의, 패권주의, 갈등과 전쟁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민족에 마음을 담고, 모든 나라에 마음을 담으면 그 일을 감당할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결론-이제 문제 앞에 속지 마라. 실패 안 하려고 애쓰지도 마라. 반대로 잘 하려고 애쓰지도 마라. 분명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비밀 붙잡고, 영적 써밋이 되는 길로 붙잡으라. 우리는 모든 것의 증인으로 서는 것이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이사야가 누린 영성의 축복과 세계복음화(사6:6-13) 8/6/2017 August 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6) -엘리야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왕하 2:6-11) 7/16/2017
렘넌트 7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영성의 축복에 관한 말씀을 나누어왔다.
오늘은 엘리사가 누렸고, 체험했고, 세상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았던 영성에 관한 말씀을 나누겠다. 영성은 간단히 말하면 구원받은 자에게만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나의 내면, 삶, 사역 속에서 누리는 축복이다. 지금 뉴에이지나 다른 종교 단체에서도 이 영성에 관한 말씀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뭐가 다른 것인가? 그것이 창3:5에서 나오는 영성이다. 깊이 집중하고, 명상을 하다보면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인 자가 누구인가? 지금도 사단은 계속 그 체험을 시키려고 애쓰고 있다(귀신 들리는 체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 영접한 순간 성령이 인치시고(엡1:12), 성령이 함께 하시고(고전3:16),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요14:16-18),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 수 있는 자가 된 것이다(행1:8)
문제는 이 성령과 어떻게 교통하며, 어떻게 집중하며, 그래서 그 축복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 살리는 자로 쓰임받느냐는 것이다. 그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영성훈련이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에도 이 소통의 훈련이 없어 갈등한다(각자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기대한다). 사단이 갈라놓는 짓을 하지만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집중하고, 서로 살리는 법을 모르기에 당한다. 엘리사를 통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의 영성을 훈련하고, 세상 살리는 일을 위해 쓰임받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겠다.
- 참된 영성은 위에서 주시는 축복이고, 위에서 주시는 권세를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1) 위에서 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라는 말이고, 권세는 구원받은 순간 이미 받은 것이다.
능력이 어디서 나오냐? 권세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에 대해 대표적인 두 말씀이 있다.
①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왕의 아들이 되면 어마어마한 권세가 부여된다. 왕세자라고 한다. 모든 왕의 기업을 누리고(롬8:17), 왕을 대신 하여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뭐겠는가? 세상 살리고, 제자 세우는 일이다(마28:18-19)
하나님 자녀의 일곱가지 권세는 어마어마한 것이다(성령동행권-행3:16, 성령인도권-요14:16-18, 성령역사권- 행1:8, 천사호위권-히1:14, 사단승리권-눅10:19, 천국시민권-빌3:10, 세상정복권-마28:18-19)
② 또하나 있다. 벧전2:9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왕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사단과는 싸워 이기는 것이다. 제사장은 살리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축복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가정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세상에 가서도 축복하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싸우는 일 일을 하고, 죽이는 일을 한다. 요셉은 살리고 축복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죽이고 저주하는 인생을 산 것이다. 다윗과 사울도 마찬가지다. 시기하고, 판단하고, 비난하고, 원수 갚으려고 하다가 망하는 것 이다. 내 자식부터 자꾸 축복하고, 말 한마디라도 살리는 말, 부족해도 자꾸 세워주는 체질되어야 한다.
육은 죽이는 것이지만 성령은 살리는 분이다(요6:63). 살리고, 세우고, 축복하는 일부터 하라. 내 영성이 자란다. 2) 뉴에이지와 각종 종교 단체에서 하는 명상이 무서운 이유가 뭐냐? 결국 귀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마귀와 그 따르는 귀신들은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왔다”고 했다(요10:10하)
마음을 비우고, 착하게 산다고 했는데, 그리스도 없는 그 자리에는 일곱 귀신이 들어간다고 했다(마12:44-15)
- 참된 영성은 거듭난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힘이다.
1) 그리스도 영접한 순간 우리의 내면에는 거듭난 새로운 자아가 있다(롬6:4). 그 새 자아가 얼마나 성장해 가느냐 에 달렸다. 자꾸 유혹을 받고, 상처를 받고, 육신과 세상을 따라가는 옛 자아도 같이 있다(엡4:22-24)
그 옛 자아 속에 각인, 뿌리, 체질되었던 것이 사라지고, 새 자아가 자라면서 거기에 새로운 각인, 뿌리, 체질이 만들어져야 한다. 인생 전체를 놓고 계속 훈련해 가야 한다(엡6:25-32). 도둑질을 중단한 것이 끝이 아니고, 그 손으로 일을 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재습관화, re-habituation)
그 훈련이 경건의 훈련(딤전4:8)인 동시에 영성 훈련이다.
가다가 넘어질 수 있다. 아플 수도 있다. 사람은 넘어지고 아프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2) 새로운 각인, 뿌리, 체질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섯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을 사용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힘을 얻어야 한다.
듣는 것(롬10:17), 말하는 것(롬10:10, 시19:14), 보는 것(인간은 보면서 배우고, 무엇을 보느냐에 달렸다),
생각하는 것(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각인되고, 뿌리를 내리고, 체질을 만든다. 우울한 생각, 부정적 생각, 육신 적 생각을 반복하면 그것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명상이 아니다. 시1:2, 말씀(언약)을 생각(묵상) 하며, 거기서 행복한 생각, 감사한 생각, 미래를 향한 언약적 생각-비전)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이 호흡이다(뇌에 산소가 공급될 때 깊은 각인이 된다. 암기 능력, 인지 능력도 최고로 활성화되고, 엄청 난 에너지도 나온다. 시150:6 호흡하면서 하나님께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 참된 영성은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힘이다.
1) 남을 이겨야 하고, 경쟁하고, 싸우고, 전쟁하는 자에게는 힘이 있으면 안 된다. 세상을 죽이는 자들이다.
전도와 선교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며, 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2) 엘리사와 렘넌트 7명이 그 일에 쓰임 받았다. 엘리사가 영성의 축복을 누리고 한 일, 대표적인 세가지가 있다.
① 빚을 지고 두 아들까지 종으로 가야 했던 가난한 과부를 축복한 일이다(왕하4장).
영성이 회복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경제력(지난 주의 사60:4)도 회복해서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으라.
② 문둥병을 숨기고 살던 아람의 장군 나아만을 살린 일이다(왕하5장). 엘리트일수록 더 외롭고, 힘들고, 숨은 영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지위, 명예, 성공 속에 감추어진 영적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영성이다.
③ 그렇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의 친구 나라가 되게 만들었다(왕하6장).
아람 군대가 쳐들어 올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군대의 눈을 멀게 하고, 사마리아성으로 들어오게 만들어 음식을 먹이고, 돌려 보낸 것이다. 대적하는 원수도, 핍박자도 살리는 것이 전도와 선교다.
나의 인생과 나의 자녀와 우리 교회가 전도와 선교 속에 있도록 기도하라. 당연히 영성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결론-엘리사가 이 영성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따르던 영적 지도자인 엘리야에게 기도 부탁한 것이 하나다.
“당신의 영감이 내게 갑절이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며 사는가? 이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6) -엘리야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왕하 2:6-11) 7/16/2017 July 1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5)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자(사60:1-7) 7/9/2017
이번에 시카고에서 열린 미주 산업인 대회와 대학 집회의 주제는 치유였다. 마지막 때에 모든 나라와 종교 단체들이 여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리스도 밖에는 답이 없다. 결국은 더 사람들을 고통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데, 정신 문제다. 본문 2절대로 어둠의 영에 잡혔다.
개인적으로도 정신 문제들이 심각하다. 중독에 빠지고, 우울증, 공황증, 환청에 시달리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 내에서 계속 일어나는 총격 사건들도 정신 문제에서 온다(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 정신 분열, 싸이코 패스)
의사들은 고치고 바꾸어 주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도 증상을 줄일 뿐 계속되는 정신 문제들을 못 고친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고 바꾸는 수준이 아니고, 살리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복음 가진 우리는 누구를 고치고 바꾸려고 하지 말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그 일에 부름 받았다
-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은 살리는 시작이다.
1) 엡2:1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다. 여기서 “살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영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로 지음 받았는데 그것이 죽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오셔서 그 분을 영접하는 순간 그 분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내가 그 분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된 것이다. 그것을 “거듭났다”(요3:5), “새생명을 가졌다”(롬6:4). “영생을 가졌다”(요5:24)라고 한다.
1절에 “빛이 내게 왔고, 하나님의 영광이 내게 임했다”고 했는데, 그 분이 함께 한 상태를 말한다(창1:27)
2)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내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이다. 내 영혼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도를 받으며, 그 분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영적인 생명을 가진 자가 된 것이다. 살아야 할 이유와 미션를 알고, 영적인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① 불신자가 가장 먼저 체험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육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인정받 고, 좋은 집, 행복한 생활을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가장 근본적인 해답을 얻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죽은 내 영혼 속에 다 른 영이 들어간다. 그것이 사단이다. 엡2:2-3에 보니 계속 세상 따라 다니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다니고, 육체의 욕심을 위해 살다가 어느날 허무해진다. 그러다 중독에 빠지고, 우울증, 정신문제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그 저주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영원한 심판을 맞는다. 불신자가 여기서 빠져 나오도록 도와야 한다(그것 을 영적 치유). 거기서 빠져 나오고, 새생명을 얻는 길을 말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다(딤전2:4)
② 그래서 중요한 것은 믿는 우리가 살아나야 한다. 분명히 구원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 자녀들이다.
그런데 이 타락하고 병든 세상 속에 살다보니까 너무 많은 상처와 잘못된 각인들이 내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영혼은 단번에 구원받는데, 내 마음과 생각 속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신학적으로 는 오염된 상태). 살아났는데, 마치 죽은 자 비슷하게, 불신자 비슷한 생각, 체질이 자꾸 나온다.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내 평생을 통해 나를 치유하시고, 그 능력으로 살도록 도우신다(성령의 축복)
- 그러면 어떻게 나를 살릴 것인가? 본문에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는 말 못한다. 이제는 살았고, 생명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일어나라는 것이다.
자꾸 여러 가지 문제, 사건, 현실에 묶여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상처 속에 주저 앉고, 낙심해 있는 것이다.
1) 분명한 결론부터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생명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끝냈다(요19:30)
① 문제 다시 와도 문제 아니다. 그 문제로 세상의 영적 문제, 영적 상태를 보라는 것이다.
거기서 온 세상에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어떻게 그 사람이 내게 이럴 수 있는가?” 타락한 세상 속에 있는 영적 문제이다. 날 속이려는 사단의 전략이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영적인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누구든 불쌍히 여기고, 전도할 수 있다.
② 내가 계속 복음 누리고, 복음 체질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 것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창3장 아래 인생 다 그럴 수 있다고 하고 살아야 한다.
율법의 눈으로 보면 다 지옥가고, 멸망해야 한다. 뭐가 옳고 그른 것인가를 따지지 마라. 사람이 옳으면 얼마나 옳은가? 마귀 다음으로 악한 것이 인간이다(렘17:9). 잘하고 잘못한거 따지지 마라. 잘해봐야 사람 하는 일이다 ③ 분명히 기다리면 모든 것이(아픔, 실패, 억울할 일) 합력해 선을 이루고(롬8:29), 증거가 된다(행1:8).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문제의 증인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전도 못하는 이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2) 계속 내가 힘을 얻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일어나고 싶어도 힘이 없으면 못 일어나는 것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가 힘을 얻는 최고의 시간이 언제인가?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마6:33)
① 예배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시간이다(시132:10).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사단은 어찌하든지 예배를 놓치게 한다. 이 예배의 흐름을 놓치면 힘 잃어버리고,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다.
② 반드시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말씀 붙잡는 것이 기도 중에 기도다(요15:7)
말씀은 생명의 기운이다(겔37:5-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영, 혼, 관절, 골수를 살린다고 했다(히4:12)
말씀은 하나님 위로요, 빛과 등불이고(시119:50, 105), 말씀을 이루기 위해 천사가 움직인다고 했다(시103:20)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평상시에 다섯가지로 말씀 붙잡으라(정리, 묵상, 암송, 녹취, 호흡 속에서)
3) “빛을 발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절대 미션이고, 성령이 강하게 역사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것이 전도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전도의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를 말해 주라는 것이다(자료로, 간증으로, 메시지로). 먼저 내가 살아난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축복과 응답이 있다.
① 3-4절이다. 열방과 열왕이 오고, 무리와 후대가 살아난다고 했다(전도 치유)
생명 살리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살린다. 하나님이 가정도 살리고, 자식도 살리고, 다 살리신다.
② 5절이다. 희색이 돌고 마음이 놀라는 데, 이유는 바다의 풍부와 열방의 재물이 오기 때문이다(경제 치유)
영혼 살리고, 사람 살리는 전도와 선교 중심으로 살면 당연히 오는 축복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과 기준에 맞으면 하나님은 다 주시겠다는 것이다.
③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집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했다(교회 치유). 교회 살리는 교회되어야 한다.
교회가 왜 갈등하냐? 죽어가고 문을 닫는가? 생명을 못 살리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그 안에서는 다 죽는다.
결론-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자로 구원 받았다. 이 한 주간, 그 축복의 증거들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5)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자(사60:1-7) 7/9/2017 July 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4) -오순절 언약의 축복 속에 있는 나(신16:9-12) 7/2/2017
모든 성도들의 든든한 기도 지원 속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의료 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한 대원도 큰 어려움 없이 하나가 되어서 어떤 선교보다도 더 큰 응답을 누리고 왔다. 모든 성도들에게 같은 축복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유월절에서 50일째가 되는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오순절).
오순절이 왜 중요한가? 이 때가 겨울에 심은 식물의 열매를 처음으로 거두는 시기라고 해서 초실절이라고도 한다(레23:9-14).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이후에 전 세계를 살리는 참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절기에 누릴 축복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성령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저주, 운명, 지옥 권세에서 해방 받고, 하늘에 속한 모든 축복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엡1:3-5). 이제 세상 사는 날 동안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된 축복을 실제적으로 누려야 한다. 그 축복을 실제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성령이시다(요14:16의 “보혜사”).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문제, 일에서 증거를 얻고, 세상 살리는 전도와 선교 속에 살다 간다(행1:8)
그런 면에서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오고, 함께 맥추절(오순절)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오순절 언약 속에 담긴 축복, 다른 말로 성령의 축복을 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
구원 받고도 자꾸 드러나는 상처, 무능, 갈등, 어려움이 상관 없어진다. 사단은 구원받은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각인, 습관, 체질로 남아 있는 상처, 무능, 갈등, 이 세가지로 공격하고 속일 것이다.
이 세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것 때문에 늘 낙심하고, 시험들고, 중요한 일들을 하기가 어렵다.
1) 상처다. 각자에게 상처가 있다. 개인의 상처가 있고, 가정의 상처가 있고, 민족적인 상처가 있다.
각자에게 숨은 상처가 있고, 가정과 가문에서 흘러 나오는 상처가 있고, 민족성에 관련된 상처가 분명히 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라고 한다. 없는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고, 이미 숨겨 있는 상처가 건드려진 것이다. 상처가 있으니 건드리면 아픈 것이다. 폭발한다(공격적 말과 행동, 퇴행, 도피).
이 상처가 사실은 오래 된 것이다. 그 숨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 누구냐? 내 안에 계신 성령이시다(사61:1) 2) 무능이다. 무능이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 일 하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어렵다.
원래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렸던 존재가 인간 이다. 이제는 동물의 울음 소리에도 벌벌 떠는 것이 인간이다(각종의 공포증)
그리스도로 구원 받고 나면 하나님이 부리는 천사가 우리를 섬기는 존재가 된다(히1:14, 마18:10). 하나님 자녀 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아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슥4:6).
그래서 “늘 나는 할 수 없다”하지 말고, 성령 충만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일을 꿈꾸고,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3) 갈등이다. 갈등 중에 갈등은 인간 관계의 갈등이다. 관계가 깨지는 것이다.
혼자서는 큰 일을 하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복음 가진 두 세 사람을 모아서 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마18:20). 행13:1에 안디옥 교회에 다민족 5명이 팀이 되었다. 다민족이 한 팀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엡4:3). 반대로 사단은 뱀의 혀가 갈라져 있듯이 계속 갈라낸다.
행16장 이후에 제자들이 팀을 만들어 갔을 때, 가는 곳마다 제자를 만나고, 거기서 계속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부부 생활도 팀이다. 교회 생활도 팀이다. 세상 살리는 전도 운동과 세계복음화도 팀이어야 가능하다.
- 이제 이 성령의 축복을 누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1) 내 안에서 구원에 대한 감사 회복하고, 24시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위해서 기도해보라.
① 일단 참된 감사부터 회복되어야 한다. 맥추절, 오순절 전부 감사의 절기다(그래서 맥추 감사 주일)
그래서 10절에 이때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언제냐?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때다. 반대로 사단이 역사하는 시간이 언제냐?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할 때다(민21:4-6).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끝냈고, 성령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꿀 것이기에 믿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② 그러면서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하나님이 이 문제를 왜 허락했을까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조금만 믿음의 묵상을 하면 된다. 나를 정말 치유하고, 갱신시켜 하나님이 쓰실만한 그릇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더 큰 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붙잡으라는 것이다(행16:6-10).
③ 혹시 몸이 아프고 지칠 때는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그 분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기도해보라(집중)
분명히 약할 때 강하게 하시고(고후12:10),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주실 것이다(사43:10).
2)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미션과 비전을 찾는 것이다. 그 때에 성령이 역사하신다.
①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는 맡겨진 일을 하는 것도 미션이다(당연성).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하려고 할 때 성령이 역사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필연성). 그것도 미션이다.
이 절기에 세상 기업이 없는 레위 사람들과 나그네, 고아, 과부들과 같이 즐거워하라는 것이 그 뜻이다(11절).
②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큰 꿈이 품어질 때가 있다. 그것이 비전이다.
요엘2:28에 성령이 임하면 노인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향한 꿈을 꾸고, 젊은이들이 비전을 보게 될 것 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큰 일이 내 안에, 내 기도에 담겨지는 것이다(절대성). 미션과 비전을 찾고, 그 일에 도 전하게 하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의 능력이다. 부족한 우리가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다.
3) 마침내 우리는 행1:8의 “땅끝”이라는 언약이 붙잡아진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이다.
① 주님이 땅끝이라고 할 때 세가지 의미가 있다. 거리의 기준이 있다(아프리카). 전도와 선교적 기준이 있다(가장 흑암이 가득한 저주와 재앙 지대). 시대적 기준이 있다(계18:1-4에 나오는 그 시대 강대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나라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하고 어려운 곳이다. 3단체가 움직이는 미국이 이 시대 그런 곳이다.
② 사단은 그 강대국을 장악하고, 엘리뜨들을 장악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가? 그 강대국에서 증거를 얻어 시대를 살릴 렘넌트들을 세우시는 것이다. 일곱 렘넌트들 이 전부 강대국에서 증거를 얻고, 쓰임받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렘넌트들은 렘넌트 중에 렘넌트들이다.
결론-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 것 붙잡고 모든 것 감사로 바꾸는 훈련을 하라. 체질이 되어야 한다. 나의 미션, 비전, 땅끝의 축복을 붙잡으라. 구원 받은 순간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4) -오순절 언약의 축복 속에 있는 나(신16:9-12) 7/2/2017 July 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3)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0-22) 6/18/2017
오늘은 우리 한마음 교회의 제8차 의료 단기 선교대원을 파송하는 주일이다. 15명의 대원이 열흘간의 일정으로 출발한다. 이번에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민족 목회자, 의료인, 중직자들이 함께 해서 더 의미가 있다.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선교인 줄 알고 간다. 주께서 앞서 천군 천사를 보내시고, 친히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뒤에서 기도로 지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같은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할 줄로 믿고 갈 것이다.
선교,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과 의무가 아니고,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놓쳐서는 안 될(그러면 너무 억울한) 최고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또 확인해야 한다. 가서만이 아니다. 돌아와서도 그 응답과 축복은 계속 될 것이다.
왜 인가? 우리를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으로 세우겠다”(행1:8)는 그리스도의 언약이 성취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무엇인가를 나누거나 도울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축복을 가진 사람의 증거이다.
미국에서는 흔한 진통제, 비타민 하나도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에 가는 것이다.
-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축복, 복음이다.
하나님이 직접 최고의 기쁜 소식이요(눅2:10), 최고의 선물이라고(엡2:8) 하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절대적이고, 영원한 답이 없지 않는가?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에도 병자를 고쳤다. 오병이어 기적으로 배고픈 자도 먹었다. 귀신들려 시달리는 자를 치유하기도 했다.
1) 그러나 결국 하고자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 질병이, 가난이, 영적문제가 결국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었기에 하나님이 자신이 오신 것이다. 그 그리스도만 전하면 된다.
① 언제 시작된 것인가? 첫 인생 아담이 타락하면서 시작된 원죄의 저주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아담의 후손이 되어 죄의 본성과 저주로 시작한 인생이다(롬3:10, 3:23). 그래서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셔서 십자가 피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롬8:1-2), 영원히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이 아니가(엡1:3-4)
② 인간이 죄를 지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배후에 사단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잡혀 착하게 살고 열 심히 사는 것에 상관없이 도적질 당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요10:10). 그 사단, 지금도 계속 일하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 정말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고통과 저주와 재앙이 끝이 없는지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저주의 영, 사단에게 잡힌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같은 말을 했다(요8:44).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으로 오셔서 부활하면서 사단의 머리를 박살낸 것이다(요일3:8)
③ 죄의 저주, 사단에서 빠져 나온 것이 전부 아니다. 내 인생의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불신자들은 이것을 운명이 라고 한다. 저주가 계속 되는 인생에, 마귀에게 속한 자 되어 짓눌리며 살던 인생에게 그 근본 운명을 바꾸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스도가 영원한 선지자로 오셔서 영원한 길이 되신 것이다(요14:6).
누구든지 그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요1:12). 내 인생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2) 이 미국 땅에서 만나는 모든 민족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유일한 답도 한가지이다. 오직 그리스도이다.
인생 모든 문제의 근원이 같기 때문에 해답도 같은 것이다.
① 그 그리스도 붙잡을 때만 개인과 가문과 한 민족과 나라 속에 흘러가는 저주가 끝나는 것이다. 숨어 역사하는 사단의 역사도 끝나는 것이다. 아니면 끝없는 영적 문제가 계속 될 것이다. 왜 영적 문제라고 하는가?
단순한 육신 문제 아니다. 환경 문제도 아니다. 마음이 약해서도 아니다. 영적인 존재(사단)가 개입되어 역사하 기 때문이다. 에이즈, 마약, 시달리는 환청, 정신문제,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대로 심각하다. ② 이 영적 문제를 해결하신 유일한 그리스도만을 말할 증인으로 우리가 가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 들과 그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겠는가? 문제에서 빠져 나오는 정도 아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인생 결론이다.
1) 21절에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① 사람들이 내 땅에 살면서 내 땅이 아닌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엄청난 자원들이 있는데, 사람 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자원들은 다 뺏긴 것이 아프리카의 역사다. 지금 강대국들이 또 그렇게 노리고 있다.
아프리카만의 얘기인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포로로, 속국으로 그렇게 산 것이다.
어느 민족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모든 인생이 이렇게 영적으로는 노예, 포로로, 속국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에게 하나님은 제2의 시작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꼭 전달해야 할 결론적 언약이 이것이다.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을 들어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프리카를 들어 쓰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교 주제가 “제2 아프리카 시대”이다.
왜 아프리카는 안 되는가? 반대로 왜 아프리카는 되는가? 왜 우리는, 나는 안 되는가? 반대로 왜 나는 되는가?
한가지 이유다. 하나님 약속이다. 인생 근본 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권세와 능력을 붙잡고 누리면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22절에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그 일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2) 누구를 통해 하는가? “내가 심고, 나의 손으로 만들어 나의 영광을 나타낼 자들이 있다”고 했다.
① 그들이 누구인가? 사6:14에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렘넌트”이다. 내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남겨 놓 으신 것이다. 그래 남은 자, 남을 자, 남길 자이다. 온 세상에 흩어진 자들 중에 찾겠다는 것이다(디아스포라)
탄자니아에도 이미 두 선교사님을 통해 이런 렘넌트들이 자라고 있다. RUTC 센터와 학교들이 있다. 그들과 한 시스템이 되어 일할 것이다. 제2 RUTC 시대를 위한 전문적인 특강도 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도 올 것이다.
②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본문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아는가? 하나님이 렘넌트 6명으로 하셨다. 대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냈다(다니엘과 세 친구, 에스더와 사촌오빠 모르드개)
3) 마지막 결론이 뭔가? “그 작은 자를 통하여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를 통하여 강국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일을 하나 우리가 가는 곳에 이 땅의 저주와 재앙을 막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분과 함께 그 왕국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계22:5)
결론-이번 선교가 가는 자들과 보내는 모든 성도들의 최고의 축복과 응답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믿는 자들에게 이 축복이 시작될 것이다. 특히 선교대원들은 막16:17-18의 약속을 꼭 붙잡고 가기를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3)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0-22) 6/18/2017 June 18,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