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3) – 결론을 붙잡은 자의 믿음(신8:11-18) 12/4/2016

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3) – 결론을 붙잡은 자의 믿음(8:11-18) 12/4/2016

 

신자가 어려움을 당할 때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이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오지?”, 답이 없는 초신자 수준의 질문이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면 왜 날 어렵게 하지?”, 어떤 경우는 자기 욕심과 잘못으로 일을 만들어 놓고도 이런 수준의 질문을 한다. 조금 믿음이 있다는 사람은 주로 “언제까지 이런 문제가 계속 될거지?‘ 하는 질문을 한다.

큰 기업을 하는 아버지가 있다.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냥 물려주는 사람이 있고, 잘 준비시켜서 물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고생을 시키기도 한다. 요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냥 허락하는 축복이 아니다. 문제 속에서 우리를 훈련시켜서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400년 운명 같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가나안까지 데려 가실 때 광야를 통과시킨다.

그 위험하고, 뱀도 나타나고, 물도 부족한 그 땅을 왜 통과 시켰을까?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길을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허락하신 것인가? 어떤 답과 결론을 가져야 하는가?

그 답과 결론이 본문에 있는 것이다. 16절에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 그 복이 뭘까? 결론적 축복인 가나안 정복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살리는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그냥 먹고 사는 수준 아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도 가능했다. 세상과 운명에 짓눌린 나를 살리고, 세상에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교회를 살리고, 마침내 세상과 시대를 살리는 축복이다. 세계복음화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을 주기 위해 적어도 세가지 목표를 놓고 우리를 문제 속에서 훈련시키는 것이다.

1) 확인이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자기 백성을 모든 문제 사건에서 어떻게 책임지시는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① 분명히 이스라엘은 양의 피를 바르면서 영원히 해방 받은 것이다. 그 양의 피,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도 모든 문 제에서 해방 받은 것이다. 요19:30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약속한 것이다.

홍해가 가로막고, 광야를 만나도 상관없다.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가보라는 것이다(일심, 전심, 지속)

② 분명히 그 분이 인도하고 책임지시겠다는 것이다. 결론 붙잡은 믿음이다. 이것을 계속 체험하면 문제가 또 와도 상관이 없어진다. 그때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가 되고,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③ 반대로 이 체험들이 없으면 내 안에 오래된 상처와 체질로 인해 문제 올 때마다 속는다(자신, 세상, 마귀에게)

이스라엘이 광야 가면서 400년 노예 근성과 체질이 계속 나온 것이다. 문제 올 때마다 낙심, 불평, 원망한다.

주의 종과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뱀에게 물려 죽기도 하고, 치명적 고통을 당한다(민21:5-6).

그때라도 나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놋뱀의 원리”)

2) 증거다. 결국은 우리가 겪은 모든 문제가 증거가 되어 그거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가게 하는 것이다(행1:8).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워 떨고, 마음이 녹았다고 했다(수5:1, 수6:1)

이들이 어떻게 광야를 통과 했으며, 이들 앞에 홍해, 요단강이 어떻게 갈라졌는지 증거를 본 것이다.

하나님이 문제 속에서 세상이, 마귀가 볼 수 있는 그 증거를 주시겠다는 것이다(시23:5, 롬16:20)

3) 우리 인생의 참된 결론이다. 모든 영광을 그 분께 돌려 드리는 그릇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12-15절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모든 것이 번성하고, 풍부할 때에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많은 응답 받은 사람들, 중요하게 헌신한 사람들이 마지막 여기서 무너진다. 마귀 전략이다. 평생 세상 살릴 만큼 응답 받고, 귀하게 쓰임받고, 고전15:10의 바울의 고백이 각자의 고백되기를 바란다.

  1. 이제부터 우리가 체험해야 할 결론을 붙잡고, 계속 훈련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이것이 집중 훈련이다)

1) 각인 치유다. 핵심이 뭐냐? 내 생각을 바꾸고, 속지 마라는 것이다.

무엇에 속는가? 내 안에 잘못된 지식, 세상 기준, 상처의 경험들이다. 그것이 나를 믿음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오라”고 했다(막16:24)

내 생각, 계획, 기준을 부인하고, 하나님 뜻을 따라가는 자세를 훈련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모델이다(마25:39)

그 방법이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다. 신8:2에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말씀 따라 가는 것을 시험했다고 했다.

2) 뿌리 치유다. 말씀의 묵상과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쓴 뿌리를 바꾸어야 한다.

① 이것이 성령 충만의 비밀이다. 성령이 내 마음을 주장하고, 내 입술을 주장해야 한다. 행2장에 불과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하니 그 두려웠던 마음에 담대함이 생기고, 불평 원망의 입이 아닌 복음 전하는 입이 열린다.

② 시19:14에 다윗이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내 마음에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한다.

그것이 성령충만의 방법이고, 영성 훈련이다. 묵상은 되새긴다는 뜻이다. 문제와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되새기는 것이다.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의 길을 형통케 할 것이라고 했다(시1:2-3)

③ 거기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이 중요하다. 민14:20에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말씀을 포럼하는 것도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내 마음 깊은 곳 에서 나오는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나의 내면 속에 쓴 뿌리가 치유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3) 체질 치유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마7:14). 나의 선택이 반복되면서 체질이 만들어진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고 했다(딤후4:7). 그 달려간 길이 어떤 길일까? 전도자, 제자의 길이다.

① 나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 속에서도 나 혼자만이라도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매순간 내 믿음의 선택을 하는 만큼 내가 살아나고, 내 주변의 모두가 살아나는 것이다(창39:5, 에4:16).

다른 사람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라. 나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으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② 교회를 살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골1:24)

서로를 살리는 중심으로 가는 것이 교회 살리는 길이다. 그래서 부족하고 실패한 사람도 이해하고, 용서하고, 또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귀는 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발악을 할 것이라고 있다(계12:17).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방법은 서로 수군거리고, 시기하고, 비난하고, 갈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상처받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반대로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이다(엡4:3-4)

③ 이제 그 하나된 힘으로 시대와 세계를 살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이 시대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민족”, “땅끝까지” 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늘 내 가정, 내 교회, 내 민족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하나님 마음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이 시대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그 일을 감당할 시대적인 응답과 축복도 오는 것이다.

결론-세 종류의 신자가 있는 것 같다. 결론을 모르는 자, 결론은 아는 자, 결론을 붙잡고 믿음으로 그 결론의 축복을 누리는 자다. 결론을 붙잡은 믿음 회복하고, 그 축복과 응답의 주역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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