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더라(룻2:1-4)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더라(룻2:1-4) 7/26/2026

 

인생에 있어 중요한 축복 중에 하나가 무엇일까? 만남이다. 가문을 통한 만남, 부모와 자녀와의 만남, 형제 사이의 만남이 있다. 스스로 선택한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해준 만남이라고 한다. 불신자들도 하늘이 정해준 만남이라고 한다.

그러면 부부의 만남,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나 친구와의 만남을 어떤가? 역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특히 전도 현장에서 복음을 받고 중요하게 쓰임 받을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집사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할 때 주의 사자가,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다고 했다(행9:26-29). 핍박자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이 쓰실 일군으로 서야 하는데,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고 했다(행9:15). 베드로가 로마의 장군인 고넬료을 만날 때도(행10:1-23), 바울이 루디아를 비롯한 제자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1. 구원받은 언약의 백성은 평생 이 축복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1) 하나님이 나를 영원한 언약 속에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실 때 이 축복이 같이 있는 것이다.

창12:1-3에 아브라함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한다”고 하신 말씀 속에 이 축복이 암시되어 있다. 영적으로 말하면 언약의 백성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이 허락한 만남이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들은 마귀가 준비한 만남이다. 가룟 유다도 그렇게 쓰임 받았다(요6:70)

2) 언약은 택하신 주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요 절대 사랑과 축복이기 때문이다.

① 완전했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나무라는 조건이 있었다(행위 언약).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언약을 깬 것이다(호6:7)

그 결과로 하나님의 계획을 다 놓치고 살고, 하나님의 사랑, 그 축복을 누릴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도 없고, 언약도 없는 백성이라고 한다(엡2:12). 이전에 우리가 그 속에 있었던 것이다,

② 하나님은 절대 계획 속에 자기의 형상대로 지은 아담과 하와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영원한 날을 위해 준비한 영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이 있었다(엡1:3-5). 그래서 새 언약을 준비하셨다.

우리가 모든 것을 회복하여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다. 그 분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히9:15). 이 그리스도의 언약을 ‘더 좋은 언약’(히8:6)이라고 했다. 그 분이 모든 것을 대속하시고, 은혜로 주셨기 때문이다.

③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자들을 뭐라고 부르는가?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맞다(요1:12)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백성과 가족이라고 했고(렙2:19), ‘언약의 자녀’라고 했다(행3:25, 갈4:28)

 

  1. 이 언약의 축복 속에 있는 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언약의 여정”이라고 한다.

1) 하나님이 허락하신 단 한번 사는 인생이다. 그래서 여정(Journey)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부족하고, 실패하고, 후회할 것 많은 인생이기에 언약을 붙잡고, 언약을 선택하고 살아야 한다(지난 주 강단).

① 예배를 통해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언약을 각인시켜야 한다. 나와 내 가문, 가정, 후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잡는 것이다. 나를 이 교회로 인도하신 약속을 잡는 것이다. 내가 사는 현장과 시대를 향한 약속을 잡는 것이다. ② 그리고 반드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라. 그래야 뿌리를 내린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시1:3)

③ 문제, 갈등, 위기 때에 언약을 선택하라. 그것이 계속되면 언약이, 복음이 내 인생의 체질이 된다. 모든 것 이긴다.

2) 이 언약이 각인, 뿌리, 체질이 될 때 오는 축복이 뭔가?

① 그때 참된 믿음이 오고, 우리가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에 하나님은 넘치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했다(엡3:20)

그 언약의 백성, 자녀, 종들의 말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사무엘이 누린 축복이다(삼상3:19)

룻이 먹고 살기 위해 이삭 줍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2절)

하나님은 이 언약을 잡은 룻의 생각하는 것에 넘치게 하신 것이다.

②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거기서 하나님의 준비된 만남이 시작된다.

단순히 이삭 줍는 사람들을 따라갔다(3절). 그냥 갔고, 우연히 간 곳이라고 해석을 했다(happened, turned out).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준비한 축복이 있었다. 본문을 통해 이번 주 붙잡을 언약이 이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언약이 있는 유대 베들레헴으로 왔고, 우연히 또는 필요한 일을 했는데,

그렇게 간 곳이 훗날 언약 가진 남편 ‘보아스’를 만나는 시작이 된다.

③ 이 보아스가 어떤 사람이냐? 이삭을 주으러 나온 가난하고, 나그네 된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사람이었다(4절).

추수 때에 이삭을 남겨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들이 먹게 하라는 것이 하나님 마음이라고 했다(레19:9-10)

보아스는 일부러 이삭을 더 남겨 놓고, 그들이 물이 필요하면 추수하는 일군들의 물도 같이 나누라고 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언약을 잡고, 기도로 모든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며 복음을 전하며 사는 인생이 그것이다.

우리가 ‘나그네’ 곧 다민족들을 더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장학 헌금을 하는 이유)

내가 거저 받은 은혜를 나누고 베풀고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예배자의 삶이다(그것을 ‘순례자의 여정“)

 

  1. 언약을 붙잡고, 언약을 선택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보상이다.

다른 무엇을 열심히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언약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만 따르려고 하는데 주시는 축복이다.

보아스를 만나게 되는 배경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하셨고, 하나님이 보상하시는 만남이다.

1) 모든 것을 잃고도 언약의 하나님과 그 백성들을 선택한 소문이 이미 유대 땅까지 전해졌다(11절).

그 소문을 보아스도 들었고, 자기 땅에서 이삭을 줍는 소녀가 바로 그 소녀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잡은 언약을 아시고, 우리가 선택한 언약이 헛되지 않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언약을 주시고, 성취하시고,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영원한 기업을 준비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시공간 초월,

전무후무한 축복, 모든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빛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2) 하나님이 보아스를 보내어 뭐라고 축복하시는가? 12절이다.

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언약을 세우시고, 깨닫게 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창17:7, 창32:28).

②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다’는 말은 그 여인의 유일한 믿음이고 유일한 선택이다. 오직을 붙잡은 것이다. 쉽게 붙잡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선택한 것이고, 생명까지 걸은 것이다(룻1:17).

③ 그런 너에게 “하나님이 온전한 상을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다.

여기 “온전한”(šĕlēmāh, 셀레마)이란 히브리어에서 “평강”, “번영”이란 “살롬”(shalom)이라는 단어와 “완전한”, “부족함이 없는”이란 뜻의 “살렘”(shalem)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우리가 누릴 평생의 축복이 이것이다.

이렇게 보아스가 축복한대로 룻의 삶에 성취되고, 그녀는 다윗의 조상이요, 그리스도와 우리의 영적 조상이 되었다

 

결론-우리가 언약을 붙잡은 사람이 맞다면 평생 이런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무엇도 우연이 없다. 언약 속에서 만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영원한 만남으로 붙잡으라. 우리의 작은 것도 영원한 축복의 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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