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5) –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마16:21-25) 12/18/2016

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5) –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16:21-25) 12/18/2016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어도 참 믿음 회복하면 오늘 밤에도 그것이 다 끝날 수 있다(왕하19:19-20의 히스기야)

2017년의 새해는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사43:18-20)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 이것이 어떤 의미이며, 왜 중요한가? 일단 믿음에 관한 기본적인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첫째로 교회 다니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한다. 전혀 믿음 없이도 교회 다닐 수 있다. 형식적 종교 생활이라고 한다.

둘째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는 긍정적 생각을 믿음으로 오해한다. 그것은 신념(ambition))이지 믿음이 아니다. 많은 교회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긍정적 사고를 가르친 목사, 교회들의 결과를 알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실 것이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세째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것을 믿음으로 오해한다. 그것은 내 욕심(greed)일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안 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룰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롬8:28).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을 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고(롬5:8), 내가 알지 못하는 최고의 것을 준비하셨고(렘33:3), 모든 불가능도 바꿀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슥4;6)

분명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길은 우리보다 높고, 그 분의 생각도 우리보다 높다는 사실이다(사55:9)

이것이 맞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이다. 한마디로 그 말은 자기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냥 나를 포기하려고 하면 못한다. 자존심 상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괴롭다. 그런데 하라는 것이다.

 

  1. “자기를 부인한다”, 무슨 말이며, 왜 이것이 믿음에 있어 중요한가?

뉴에이지나 모든 종교에서도 이것을 가르친다. 자기 욕심, 자기 기준 버리고, 자기를 비우라는 것이다.

그러다 특별한 능력도 체험한다. 그러나 마12:45에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일곱 귀신이 들어간다고 했다.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하고는 뭐가 다른가? 적어도 세가지 의미가 있다.

1) 본래의 나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본래의 것을 잃어 버리고, 틀린 것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① 원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이렇게 욕심과 거기서 오는 실패, 상처 속에 살도록 지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셨다(창1:16-28).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영성), 하나님 성품을 가지고 (인성), 하나님의 능력으로(창조성) 세상을 다스리며 살던 존재였다.

② 창3장의 사단에게 속아 범죄하고 이것이 다 무너진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 로 가는지를 모른다. 그러면서 자기가 필요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산다(우상-자기 욕심을 위해 만든 존재다)

자기 욕심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나하고 안 맞고, 내게 손해가 되면 전부 상처가 되고, 갈등이 된다. 엡2:2-3에 그렇게 사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고 했다. 그 속에서 인간은 계속 실패 고통을 겪으며 사단을 따라 가고 있다

2) 이 잃어버린 나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 분을 내 안에 모시는 상태이다(갈2:20).

내가 완전하고, 내 힘으로, 내 원하는대로 다 되면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원하지 않는 죄를 짓고, 실패 속에 빠진다. 그런 나를 위해 그리스도가 제사장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킨 것이다(롬8:1-2). 나도 모르는 어떤 힘이 나를 실패와 고통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것이 사단이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밟고, 승리를 약속한 것이다(요일3:8)

우리는 수많은 상처와 한계를 느끼며 산다. 그리스도가 선지자로 오셔서 나의 길이 되어주신 것이다(요14:6)

3) 이제 그 분이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면 된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그 분이 책임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① 이제는 주인 되신 그 분의 뜻을 묻고 그 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기도다(마6:33, 요일5:14).

그리고 내 소원, 내 계획, 내 능력 대신 주님의 소원, 주님의 계획,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와도 그때 내 인생에 가나 혼인 잔치 같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요2:1-11)

② 이때부터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Self-identity), 자부심(Self-richness), 자긍심(Self-pride)이다.

자존심,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은 자, 하나님 자녀, 성령의 사람이다(롬11:5의 남은 자, 남을 자)

자부심, 내가 하나님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 분의 생명과 권세와 능력이 내 안에 있다. 다 가진 자다(고후6:10)

자긍심,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을 사람이다. 내 현장과 시대를 살릴 사람이다(벧전2:9).

이 자존심, 자부심, 자긍심이 없으면 늘 환경, 현실, 사람에 끌려 다니고, 상처 받고, 고통당하며 사는 것이다.

 

  1. 이제 어떻게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참 나의 주인되는 참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1)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순간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것이다. 늘 잊지 마라.

롬6:4에 우리가 믿고 세례를 받을 때에 그의 죽으심과 합해 장사되었다고 했다.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것이다.

나는 죽었다. 죽은 자가 무슨 생각과 계획과 욕심과 싸움이 있는가? 그러면 아무 생각도 없이 살라는 말인가?

내 안에 함께 하신 그 분의 생각, 계획, 천명, 주권을 인정하며 살라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님의 것이다(내 생명도, 소유도, 자식도, 시간도)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롬14:8),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마6:10), 나는 자유하라(마11:28)

2) 사단은 내 생각, 감정, 체질 속에 남아 있는 잘못된 생각, 상처들을 건드려 속이려고 할 것이다. 영적 싸움하라.

가장 어려운 영적 싸움이 나와의 영적 싸움이다. 내가 죽으면 된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고전15:31)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다. 본문 25절에도 “누구든지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나를 위하 여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언약이 있다. 거기서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3) 나를 부인하고 죽고 싶어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 한다.

그 힘을 주시려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 성령의 역사를 술 취하는 것에 비유를 했다(엡5:18)

그 성령 충만의 방법이 뭔가? 그것이 3오늘이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내 기준을 바꾸라. 기도 속에서 성령 이 나를 주장하시도록 구하라. 매일 나 같은 사람 살리는 전도 생각하라. 이 세가지 지속하면 된다.

 

결론-나를 부인하고, 3오늘을 계속하고(지속) 깊이 할 때(집중) 오는 것이 뭐냐? 영적 써밋의 축복이다.

“써밋”이란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1등의 의미가 아니고, 나를 넘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축복이다. 나를 부인하고, 성령의 능력 속으로 들어간 결과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기능 써밋), 내 현장에서 사람 살리고, 축복의 흐름으로 바꾸는 자가 된다(문화 써밋). 이 축복 속에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Pulpit Message for Download Pulpit Message for Downloa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