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 주일에 붙잡을 언약(슥9:9-12) 4/13/2025

종려 주일에 붙잡을 언약(슥9:9-12) 4/13/2025

 

이번 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며 죽어주신 것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이다. 이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주일)은 그리스도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고, 제자들과 백성들은 자기들의 옷을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기뻐한 날이라고 해서 “종려 주일”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단순히 겸손히 사는 삶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언약 세가지가 있다.

예수님 오시기 수백년 전에 이 축복을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약속하시고, 마침내 그 분이 오셔서 성취시킨 것이다.

언제 이 언약을 주신 것인가?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포로로 끌려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런 시간이었다.

거기에 붙잡혀 살지 말고, 이 언약을 붙잡고, 그 속에서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1.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언약이다(9절).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사랑이고, 소원이다(요3:16, 딤전2:4)

우리가 가장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축복이 이것이다. 그 축복을 깊이 누리기 위해 반드시 세가지 잡아야 한다.

1)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반드시 세상과 인생의 죄를 심판하신다는 말이 된다.

① 첫 인생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모든 인생이 죄와 사망과 심판 아래 놓이게 된 이유다(롬5:12)

그래서 우리 인생은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조금 더 악하게, 덜 악하게 사느냐의 차이다.

② 하나님이 성경 속에 율법을 주신 이유도 이것이다(롬3:20). 인생이 얼마나 악한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나님 앞에 숨기고 살 수 없다고 했다(눅12:2).

③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 있는가? 의로우신 재판장이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했다(시7:11, 잠20:22).

문제는 하나님이 이 공의로 판단하시면 세상과 인간 중에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없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의 고난은 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같이 나타난 사건이다.

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죄 없는 그 분으로 처절한 고난과 심판을 받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냥 허물을 용서받고, 그냥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의 백성으로 서게 된 것이 아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고(대속), 우리는 거기서 해방 받은 것이다(롬8:1-2)

② 아무 조건없이 허락한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절대 사랑이요(롬5:8), 영원한 은혜이다(엡2:8-9)

나의 악함과 죄인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 그 그리스도를 붙잡기만 하면 된다(사43;25).

그래서 어떤 실패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고, 그 은혜를 붙잡고,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이다.

3) 그것을 위해서 스스로 낮아지신 분이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다.

① 고난 주간은 그 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낮아지셨는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영광의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낮아지심의 시작이다(빌2:7)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수치와 고통을 당하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며 십자가에 죽으셨다(빌2:8)

나귀를 타시고 오신 이유도 그것이다. 그 언약을 잡은 백성들이 “호산나”(“나를 구원하소서”)를 외친 것이다.

② 그 수치와 고통으로 우리의 모든 원죄, 가문의 저주, 영원한 지옥 저주를 끝내신 것이다(요19:30).

우리의 영적 문제, 마음의 상처와 고통, 육신의 저주와 질병까지 끝내신 것이다(사53:5)

 

  1. 이 구원의 축복을 가진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신 일이 있다. 우리가 붙잡을 두 번째 언약이다(10절).

1)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병거와 전쟁하는 활들을 부수고, 그 위에 화평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① 그리스도가 하신 일의 두 번째가 이것이다(사9:6). 분열과 다툼과 전쟁 대신 화평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 분이 화목의 제물이 되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모든 사람이 화평하는 길을 여신 것이다(엡2:14).

② 허물와 죄를 따져야 하는 율법의 저주도 폐하시고, 자기 안에서 모두가 화평하게 하신다고 했다(엡2:15)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이 축복을 못 누리면 우리는 늘 따지고, 싸우고 살아야 한다.

2) 이 화평의 축복을 가진 우리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10절)

① 모든 이방 민족에게까지 이 화평의 축복을 전하라는 것이다(전도와 선교)

우리가 237, 오천종족을 살리는 비밀이 이 속에 있다. 이 복음으로 모든 영혼을 살리고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② 복음을 먼저 받은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할 일이 이것이다.

그 때에 평화의 왕이신 그 분의 통치가 바다에서 바다에 이르고,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곳이 눈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고, 우리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했다(계21:4, 22:5)).

  1. 세 번째 붙잡을 언약이 있다. 세상을 치유하고 살리는 참된 써밋의 언약이다.

너무 자기 기준과 욕심과 야망으로만 가득한 써밋들이 많아 이 땅이 더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참된 써밋의 모델이 되어 주신 것이다.

권위와 전쟁의 상징인 말을 타지 않으시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의 상징인 나귀를 타신 것이다(마20:28).

중요한 위치와 직분을 가진 사람일수록 섬김의 리더쉽을 훈련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의 힘을 얻고, 집중을 통해서 보좌의 축복을 누려야 섬기는 삶도 가능하다.

2) 연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 나귀에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타신 것이다.

① 보잘 것 없는 우리 인생 속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다(성도의 정체성).

구원받은 순간 나의 권세와 능력이 아닌 그 분이 권세와 능력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벧전2:9)

그 축복을 누리면서 이 험한 세상으로 가라는 것이다.

② 이 축복을 누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뛰어넘고, 누구라도 살릴 수 있다(참된 써밋)

반대로 이런 축복을 못 누리면 중요한 자리에 있을수록 스트레스로 눌리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결론-갈수록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들이 계속 될 수 있다. 그러나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인가?

우리가 붙잡은 피 언약으로 말미암아 모든 갇힌 자들이 해방되고, 잃어버린 것의 갑절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다(11절). 문제에 갇혀 있는가?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고, 그 분께로 나오라고 했다(12절).

종려 주일에 주시는 세가지 언약을 붙잡고, 이 고난 주간에 우리 인생의 참된 응답이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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