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붙잡은 나실인의 언약(삼상1:9-18)

고통 속에서 붙잡은 나실인의 언약(삼상1:9-18) 8/16/2026

 

사무엘서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이 고통이 가득했던 사사 시대를 끝내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왕의 나라를 어떻게 세우셨는지를 기록한 성경이다. 이 성경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여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대적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승리를 주실 왕 중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거기에 먼저 쓰임 받은 사람이 사무엘이다. 그래서 사무엘서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이 사무엘을 통해 하신 중요한 일들이 뭐냐? 일단 엘리 제사장을 마지막으로 사사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가 열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삼상10:25). 사울 왕도 사무엘이 세웠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시는 다윗 왕을 어린 시절에 기름을 붓고 축복하고 이끌어준 사람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을 통해서 사사 시대에 계속된 우상 숭배가 끝나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하는 미스바 운동이 시작된다.

한 시대의 중요한 인물들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다윗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쓰신 사람이 사무엘이라면 그 사무엘을 세우기 위해 쓰임 받은 사람이 가정에서는 ‘한나’라는 어머니였고, 성전에서는 ‘엘리’라는 제사장이었다.

이들이 대단한 무엇인가를 갖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셨다. 그 기준이 우리가 붙잡을 언약이다.

한나는 에브라임 지파의 엘가나라는 사람의 평범한 아내였다. 그것도 그 시대의 잘못된 관습에 따라 두 번째의 여인이 된 사람이다. 거기에 아이를 낳지 못한 이유로 첫 번째 부인에게 너무 심한 조롱과 괴롭힘을 당한 여인이다.

특히 매년 절기에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갈 때마다 그 괴롭힘을 당했다. 성전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여인을 통해 사무엘이라는 지도자가 일어난 것이다. 어찌했든 자식 낳아 하나님 축복을 받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내 인생이, 내 아픔이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절대 계획과 절대 축복을 붙잡아야 한다.

 

  1.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허락하시고, 왜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시는가?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이루시는 방법이다.

1) 성경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도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택하시고 구원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창3장에서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의로울 수가 없게 되었다(롬3:10, 3:23)

그 아담에게 역사한 사단은 지금도 모든 세상과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어둠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세상과 인생은 타락하고, 고통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2) 여기에 인생이 빠져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영세 전에 그리스도를 준비하신 것이다.

모든 역사와 사건 속에서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알려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 구약 성경이다.

그 그리스도가 마침내 이 땅에 오셨고, 세가지 하늘 권세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끝냈다(요19:30)

시대마다 이 축복을 먼저 깨닫고, 누리고, 자기 같은 사람을 살릴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그들이 전도자, 제자)

3) 그 방법과 기준이 뭐냐? 성경은 적어도 세가지를 말씀하신다.

① 하나님의 절대 계획과 절대 주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와 의논하신 것이 아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영세 전에 우리를 정하시고, 부르셨다고 했다(사43:1, 엡1:4).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다.

② 하나님의 절대 사랑과 절대 은혜이다(사43:4, 요3:16).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생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주셨던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존귀한 자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였다. 여기서 내 인생의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아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무너진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찾아야 한다.

③ 하나님의 절대 자비와 긍휼이다. 가장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먼저 택한 이유도 이것이었다(신7:7, 겔16:5-8)

우리를 택하신 이유도 이것이다(고전1:27). 그 속에서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긍휼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숨은 이유도 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스스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만 높이며 살기를 원하신 것이다.

마귀도 스스로 자랑하고 교만하다가 타락했고, 인생도 결국 여기서 무너진다(사14:13, 겔28:17, 딤전3:6).

 

  1. 하나님이 내게 그 주권과 사랑과 긍휼의 손을 내미실 때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어렵다고 다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상처로 잡고 끝나는 사람이 많다.

원망과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된다. 그래서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어려운 것이다.

1) 한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화가 날 때마다 울고 먹지도 않았다고 했다(7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성도는 여기에 머물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이 고통을 갚아주겠다고 뭔가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자기가 파서 죽는 함정과 올무가 된다.

2) 한나가 무엇을 선택했는가?

① 하나님 앞에 기도를 선택했다. 남들이 먹고 마시는 시간에 한나는 홀로 성전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9절).

하나님 안 믿는 불신자나 언약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도가 가장 무능하고 미련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천국 열쇠라고 했다(마16:19).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천사들을 통해 금 대접에 담겨 하늘 보좌로 올라간다고 했다(계8:3-4)

② 자기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왜 하나님이 내게, 내 가정에, 내 현장에 이런 문제를 허락하셨을까?

조금만 말씀을 붙잡고 묵상해도 답이 나오고, 조금만 하나님 뜻을 찾으려고 생각해도 역사 일어난다(기도 300%).

거기서 깨달은 것이 “나실인의 언약”이다. 이 어둠의 시대에 그 어둠을 끝낼 하나님이 쓰실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나실인의 언약을 붙잡은 기도가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작품들이 다 이렇게 만들어진다.

3) 문제 앞에서 우리가 붙잡을 분명한 결론 세가지가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과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모든 문제를 끝냈다.

그것이 맞다면 이제 구원받은 성도가 겪는 또다른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숨은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① 내 문제를 통해 세상의 문제를 보라는 것이다. 내가 할 당연한 것이 보인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진다(출3:8, 롬12:15-16).

② 거기에 누군가가 헌신해야 할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보인다.

하나님께 드려져 성전으로 보내지는 순간부터 그가 배울 것은 헌신이다. 사무엘이 어떻게 훈련받았는지 잘 안다.

③ 거기서 한 시대를 살리는 하나님의 일군, 제자, 써밋이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것이 보인다.

우리가 다민족 사역을 하고, 렘넌트 사역을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결론-내 자녀가 이렇게 사무엘처럼 쓰임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나가 어떤 아픔을 통과하며, 그 속에서 어떤 언약과 메시지를 잡았는지는 놓치고 산다.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서 이 언약과 메시지를 붙잡을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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