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 RUTC 응답 : 방주의 언약 속에 있는 사람들(창6:13-22) 3/29/2020

제1,2,3 RUTC 응답 : 방주의 언약 속에 있는 사람들(창6:13-22) 3/29/2020

 

마태24장은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시기 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 직접 말씀한 대표적 성경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거절하고, 대적하기까지 하고, 계속 자신과 육신과 세상에만 빠져 사는 인생들에게 하시는 경고의 말씀이다. 마태24:6-14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6절). 그러면서 기근으로 인한 재난, 전염병으로 인한 재난(KJV 성경), 지진의 재난들이 올 것이라고 했다(7절). 그러나 이것도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각오해야 할 것은 그런 재난 속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는 날들이 온다는 것이다(10절). 이때를 틈타 거짓 예언자들도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다(11절).

거기서 성도들에게 주신 두가지 말씀이 있다. 첫째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13절). 그냥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영적 승리를 누리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언약이다. 둘째는 이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뒤에야 끝이 올 것이라고 했다(14절).

이것은 전도자에게 주시는 언약이다. 복음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직 세상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본문에 세상을 향한 첫 번째 심판이었던 대홍수 심판에서 하나님이 주신 방주의 언약에 대해 나온다.

마태24:37-39을 다시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도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멸망하면서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재난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쓸 뿐이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은 그 수준으로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답을 찾아야 한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왜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까? 그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답이 거기 있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각자의 집이 가장 안전한 방주가 되었다. 세가지 사실만 분명하면 그곳이 어디든 우리가 있는 곳이 영적 방주가 될 것이고, 집에 있으면서도 내가 할 일이 보일 것이다(그것이 다락방).

 

  1.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는 것이다(14절)

“너를 위해 방주를 지으라”고 했다. 그 방주가 내가 사는 길, 구원이다. 구원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든 문제에서 해방 받고, 승리하고, 증거를 얻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1) 이 구원을 가장 잘 설명한 곳이 골1:13-14이다.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냐?

① 우리를 모든 문제 배후에 있는 흑암권세에서 건져내셨다고 했다(13절상). 절대 그냥 오는 문제 아니다. 영적인 것 보라. 나도 모르는 운명에 묶어 놓고, 계속 실패하게 하는 존재이다. 그 분이 왕으로 오셔서 하신 일이다.

② 우리를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다(13절하). 그 분이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이다.

③ 그 분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했다(14절).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모든 죄와 저주와 심판을 십자가에서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저주가 끝난 것이다. 그 분이 제사장으로 오셔서 하신 일이다.

2) 방주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가 완전한 구원자가 되신 것을 설명한 것이다.

①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했다. 이 나무의 특징이 뭐냐? 그렇게 홍수가 와서 여기저기에 부딪혀도 나무가 변하 거나, 깨지거나, 뒤틀리지 않는다.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겠냐?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원성이다.

② 나무로 칸을 만든 다음에 그 사이를 역청으로 메우라고 했다. 역청은 지금의 아스팔트 만드는 코울타르이다.

어떤 심판의 물도 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겠냐? 그리스도의 완전성이다.

③ 창을 하나 만드는 데 위에다 만들라고 했다. 밖에 어떤 심판의 홍수가 몰려와도 오직 위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다. 그 위에 있는 분이 누구인가? 골3:1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있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정말로 어디서든지 이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유일성, 재창조의 증거가 될 것이다

  1. 이 방주의 언약이 나의 언약이 되게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 사건,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1)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이 복음, 방주의 언약이 내 생각과 기준을 바꿀 만큼 집중하면 된다(각인)

누가 뭐래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이 복을 받을 자가 된 것이다(엡1:3).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다.

그것을 위해 나를 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만드셨다(엡1:4). 하나님의 절대 은혜이다. 그것 때문에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엡1:5) 하나님 주신 절대 신분이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순간 나는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이다(엡1:13). 하나님의 절대 보호이다.

반드시 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증인으로 서서, 세상 살리다 갈 사람이다. 하나님의 절대 축복이다.

이 그리스도의 언약이 계속 각인되게 만들기 위해 말씀을 듣고, 묵상하라는 것이다.

2) 이 복음, 방주의 언약이 내 깊은 곳을 치유할 만큼(숨겨진 상처, 쓴 뿌리) 진짜 기도해보라(뿌리).

문제 해결하고, 축복 달라고 기도할 것 없다. 쓴 뿌리, 숨겨진 상처들이 치유 받으면 당연히 오는 것이다.

매일 12시에 언약 기도문을 읽으면서 이 언약이 나의 언약이 되고, 나의 쓴 뿌리들을 치유해달라고 기도해보라.

3) 이 복음, 방주의 언약이 내 삶을 좌우할 만큼 신앙고백 올바로 하고 살라(체질)

거의 말로 다 쏟아낸다(염려하는 말, 부정적인 말, 불신앙하는 말, 남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등)

수많은 조롱을 받아가면서 평생 방주를 지으면서 단 한마디도 불신앙의 말을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은혜이다 (벧전3:10, 시19:14). 우리의 말이 나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교회와 세상을 살리는 말이 되기를 바란다.

 

  1. 이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절대 결론인 전도를 생각하면 된다.

벧후2:5에 노아를 이 하나님의 절대 결론을 전달한 한 사람의 “전도자”로 표현을 했다.

문제와 위기가 올 때, 이 하나님의 절대 결론을 잡아야 한다. 나를 증인으로, 전도자로 쓰겠다는 것이다(행1:8)

1)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기회를 준 것이다.

거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상관없다. 복음 전달하는 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고, 하나님의 시간표이다. 우리는 전달자의 역할만 하는 것이다(온라인으로 가능).

이럴 때 일수록 복음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고, 진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2) 노아의 전도의 열매는 그 가족들이었다(아내, 아들들, 며느리들까지).

집에서 모여 진짜 할 일이 이것이다. 모든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하나 되는 기회를 만들어보라.

 

결론- 우리는 방주의 언약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집이 영적 방주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또다른 응답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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