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누린 응답 25(창6:13-21) 1/1/2023

1,2,3 RUTC 응답 24 : 노아가 누린 응답 25(창6:13-21) 1/1/2023

 

인류가 최악으로 타락한 네피림 시대에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과 그 가정으로 세상을 살렸다.

창4장이 가인 한 사람과 그를 통해 만들어진 가문 때문에 어떻게 세상이 타락하고 무너졌는가를 기록했다면, 창5장은 셋과 그 후손들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이 전달되고, 세상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창6장의 본문은 그 후대로 온 노아와 그 후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살리는 일을 했는지를 기록한 것이다.

노아가 어떤 영적인 사람이었냐는 것이다. 또 무엇을 위해 도전한 사람이었냐는 것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만든 방주는 지금도 과학자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 그것이 가능했는지 이해 못하고 놀랄 뿐이다. 응답 25의 첫 번째 모델이다. 노아가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나온 절대 능력과 절대 축복의 작품이었다. 그 축복을 노아가 붙잡았고, 누렸고, 도전했고,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상은 타락하고, 위기는 계속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결론은 그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1. 어떻게 그 역사가 가능할까?

1) 성도에게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 능력, 내 실력, 내 수준에 잡혀있는 한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모든 것이 갈수록 더 어려워 질 것이다.

하나님이 탄식할 만큼 어려운 시대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다(8절)

① 모든 성도가 붙잡을 정체성의 시작이다. 우리가 은혜로 택함을 받고,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엡1:3-5). 우리 행위를 본 것이 아니다. 은혜의 선물이라고 했다(엡2:8-9) 그 이유는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엡1:6).

시대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속에 택함 받은 자들이 있었고, 이 시대 우리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롬11:5)

② 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신 일군들이 전부 이 은혜 속에 있었고, 그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부 은혜의 산물이었다.

자기 열심으로 교회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세계를 살린 바울의 평생 고백이 이것이었다(고전15:10)

우리가 이 은혜를 놓치는 순간 결국 나, 나의 것이 나온다. 반대로 평생 이 은혜를 바라보고, 누리고, 고백하면 서 산다면 내가 아니다. 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것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25의 응답이다.

2) 이 노아를 향해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했다(9절)

하나님과 동행을 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사람의 관계도 함께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①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과 생각이 통하고, 그 분이 하고자 하는 미션, 비전, 결론이 통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뭐냐? 모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살리는 것이다(하나님의 아픈 마음, 탄식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뭐냐? 부족한 우리를 세워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 눈으로 사람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미션, 비전, 결론이 뭐냐? 이 땅이 전부 아니다. 분명히 심판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했다. 우리가 그 일에 쓰임 받을 전도자, 제자로 선 것이다.

노아의 홍수 심판은 그 예고편이다. 폭우가 쏟아진 후에 무지개가 뜨면 그것을 기억하라고 했다(창9:12-13)

②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과 비전이 통하니까 하나님은 뭘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씀으로 주신 것이다.

내게 말씀이 없고, 말씀이 안 들어온다는 말은 하나님과 멀어져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고, 말씀에 집중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노아는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따라간 것이다. 말씀을 성취하는 자로 쓰임을 받고, 거기서 나온 것이 방주다.

 

  1. 그렇다면 이 노아를 통해 만들어진 방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냥 그 시대의 최고의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 작품은 불신자도 만들 수 있다.

노아가 만든 방주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것이 행1:1, 3, 8의 세가지이다.

1) 그 속에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절대 해답이 담긴 것이다(행1:1).

① 결국 방주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이 방주를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잣나무를 사용하라고 한 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히13:8).

역청을 바르라는 것은 어떤 저주와 재난과 운명의 폭풍이 불어도 상관없다. 완전한 그리스도이다(요19:30).

문은 하나이다. 그리스도 한 분만 하나님께 가는 길이고 문이다. 유일한 해답되신 그리스도이다(요10:9, 14:6)

②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경제 축복을 받아야 하는 모든 이유가 이것이다(절대 이유).

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이다. 내 인생이 이 그리스도의 증거로 쓰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이유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삼상17:29). 25의 능력, 응답 나타날 수 밖에 없다.

2) 이 이유를 붙잡고 도전하는 노아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부어주신 것이다. 절대 배경과 능력이다(행1:3)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 보좌의 응답과 축복,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한한 능력과 힘이다. 그것이 25이다.

① 어떤 상황, 오해,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그 믿음을 붙잡아 주신 것이다.

베드로가 사단에게 속아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했다(눅22:32)

그가 육신이 약해 잠시 속았지만 결국 자기 같은 사람을 살리고, 마가 다락방 교회의 참 지도자로 선 것이다.

② 그가 하나님의 작품인 방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그 엄청난 방주를 어떻게 짓겠냐? 건강, 경제, 계산이 안 되는 축복을 주셨다. 미리 저축할 정도였다(21절).

교회가 필요한 일을 하고, 후대와 237 살리는 일을 위해 미리 모아둘 정도의 축복은 누려야 한다(대상29:1-9).

3) 방주는 결국 자신과 자신의 후대를 세계 살릴 증인으로 쓰시는 하나님의 절대 결론이었다(행1:8).

우리는 이제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모든 것을 증거가 되게 하실 이 절대 결론을 위해 도전해야 한다.

① 매순간 하나님의 시간표를 붙잡고, 하나님의 것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라.

문제 아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누리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증거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실패 아니다. 내 숨겨진 과거의 상처, 불신앙, 운명을 치유받고, 하나님이 쓰실 그릇을 만드는 시간이다.

방주에 위로 창문을 하나만 만들라고 하신 이유가 이것이다. 위, 보좌를 24로 바라보라는 것이다(골3:1)

② 그때 진정한 갈2:20이 체험되는 것이다.

더 이상 내 기준, 수준,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다.

그 믿음에서 나의 연약함, 흑암의 세상, 악한 사람, 모든 것을 초월하는 힘, 무한한 힘, 영적인 힘이 나온다.

 

결론-내 안에 만들어지는 방주가 나의 영적 시스템이다. 그런 나를 통해 나의 교회가, 나의 업이, 후대들이 당연히 세상 살릴 방주가 되고, 전무후무한 하나님 작품이 될 것이다. 그 응답이 새로 시작되는 새해가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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