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 산에서 체험한 응답 25(창22:9-14) 1/22/2023

1,2,3 RUTC 응답 24 : 모리아 산에서 체험한 응답 25(창22:9-14) 1/22/2023

 

어떤 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이해가 안 되고, 충격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치명적인 실패를 할 때도 있다(고전10:10-11)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렇게 훈련시켜 100세에 아들을 주시고, 이제는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을까?

적어도 다섯가지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사건이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에 있어 마지막 훈련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모든 민족이 복을 받도록 쓰임받는 그릇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마지막 테스트를 하신 것이다(1절).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아무 조건이나 훈련이 필요없다(엡2:8-9). 그러나 하나님이 시대를 살릴 자로 축복하고 응답하실 때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 훈련에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고, 테스트가 있다(약1:3-4).

둘째는 그 때가 사실은 25 응답이 시작되는 시간표이다. 최악의 사건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최고 응답의 시간표였던 것이.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후에 전 가나안 민족에게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을 받는 자로 선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25의 축복이 영원의 축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셋째는 이 사건 이후에 모든 축복이 그 아들 이삭에게 계승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를 때는 “너로 말미암아”(창12:1-3)하고 했다. 이 사건 이후에 “네 씨가 크게 번성하고”, “네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고”, “네 씨로 천하만인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17-18절). 그 마지막에 “이는 네가 내 말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단이 앞으로 이삭이 누려야 하는 모든 축복을 위한 하나님과의 이면 계약이 된 것이다.

넷째는 이 사건은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이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시간이다. 아버지가 모리아 산에 가서 이삭을 묶고, 칼을 들어 치려고 할 때까지 묵묵히 순종한 사람이 그 아들 이삭이다. 이삭에게는 완전히 언약이 꽂이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이 확인되는 시간이었다. 훗날 이삭은 아버지가 누린 응답과 축복을 뛰어넘는다.

다섯 번째는 진짜 중요한 영적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이 훗날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예표가 된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여 우리를 구원하셨던 갈보리 사건이 바로 이 모리아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인생을 위해 아들을 희생 제물로 죽게 해야만 했던 하늘 아버지의 마음과 고통이 담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와 고통으로 무너지는 현장과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라는 것이다.

 

  1. 어떻게 이런 결단이 가능했을까? 하나님의 훈련이었다.

1)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은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알고 있었다(창12:1-3).

그냥 교회만 다니면 안 된다. 언약을 아는 성도와 모르는 성도는 그 삶의 결과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된다.

언약이 없기 때문에 인생의 비전도 없고, 결론도 모르고 산다. 억지로 만들어 살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가?

2) 언약을 아는 것이 전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이 각인, 뿌리, 체질이 되도록 계속 훈련을 시킨 것이다.

모든 문제, 사건, 실패까지도 이 언약을 각인 뿌리 체질되게 하는 훈련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용기를 얻으라.

똑같이 실패했으나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가 이것이고, 사울왕과 다윗의 차이가 이것이다. 한 사람은 자꾸 핑계를 대고 포기를 했지만 다른 사람은 부끄럽지만 회개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어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제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는가? 이 아들을 죽여도 다시 살릴 것을 믿었다고 했다(히11:19).

3) 여기서 나온 결단이다.

하나님 명령 앞에서 아내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무시한 것이 아니다. 말로 설명도 안 된다. 결국은 하나님 앞에 1:1로 서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직의 시간이고, 하나님과 나만의 이면계약을 만드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성도는 모든 문제와 고난의 결말과 결론을 알고 간다(약5:11).

  1. 이제 모든 문제 사건에서 그 안에, 그 배후에 하나님이 준비한 25의 응답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라(CVDIP)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준비한 것을 미리 알고, 불과 나무를 가져간 것이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는데, 양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한다(8절). 이것이 CVDIP이다. 미리 알고, 보고, 믿고, 구체적 그림을 그리고, 도전하는 것이다.

2) 그래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니 조상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히11:1-2) 했다. 우리가 언약 붙잡고 기도할 때만 그 믿음이 생기고, 미래가 보이고, 그림이 그려지고, 도전할 힘도 생긴다.

3, 9, 3의 기도를 24로 기도하며 보좌의 축복과 응답을 바라보라는 이유가 그것이다.

 

  1. 이제 믿음의 행동을 결단하고 도전하라.

1) 믿음은 단순히 알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믿고,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할 때 진짜 믿음이다.

그때 우리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이다(약2:21-22).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약2:26)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당연한 것,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요셉은 노예로 있을 때에, 다윗은 양을 지키면서).

2) 믿음의 행동이 시작될 때 응답 25의 역사도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칼로 치려는 그 순간에 “멈추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오고, “준비된 양”도 보였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길 때에 요단강이 갈라졌다(수3:15)

여리고성을 매일 새벽에 기도로 돌다가 마지막에 승리의 나팔을 불고 함께 외칠 때에 성이 무너졌다(수6:16)

3) 믿음의 결단을 하고, 기도가 시작될 때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신다.

다니엘이 다가 올 어려운 시대를 보며 기도를 결심한 그 날부터 하나님의 응답은 시작되었다고 했다(단10:12)

언약을 붙잡고 기도만 시작해도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고, 응답 25는 시작되는 것이다(계8:3).

그래서 윌리엄 캐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사단은 우리에게 나 자신과 환경과 현실을 보게 하면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론-끝없는 문제와 갈등과 위기가 계속되는 시대 속에 사는 인생이다. 때로는 너무 이해 할 수 없고, 억울한 일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좌에서 주시는 응답 25의 축복을 준비하셨다.

우리가 누릴 응답과 축복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무후무하고, 후대에 계승되고, 영원한 것이다.

그 축복과 응답을 위한 모든 훈련과 테스트에서 승리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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