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6) –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히12:1-2) 12/25/2016

믿는 자의 모델이 되는 교회(46) –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12:1-2) 12/25/2016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동시에 성탄절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으로 인해 낙심도 하고, 상처도 받는다. 이 크리스마스가 우울하고 외로운 크리스마스가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세상에서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세상에 그런 믿음의 대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 세상에는 믿음의 대상이 없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고, 특히 창3장에서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결국 인간은 자기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한국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성경에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고 살라고 한 적이 없다. 환경, 현실, 나 자신도 바라보지 마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점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바라보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순간 실망과 상처가 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을 의심하며 살라는 말인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 아니고,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울 때는 그가 필요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라. 기대하고 요구하면 그것도 동기가 되고, 상처가 된다. 내가 돕는다고 완벽하게 도울 수도 없다. 그들이 결국 참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본문 2절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는 분이기 때문이시다.

 

  1. 왜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1) 그 분만 내 인생을 계획하시고, 창조하신 유일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①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도움을 받을 때는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나를 도울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변하지도 않아야 한다. 자기를 완전하게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요, 아들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골1:15-17)

②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메시야)를 기다려 놓고도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이유는 하나이다. 그 분 자신 이 하나님 아들이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이 이해가 안 된 것이다. 신성 모독죄다(요10:33).

그 분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면 내 문제를 해결할 내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나의 구주가 될 수가 없다.

③ 그러면 그 분이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뭔가? 성경은 두가지를 예언하셨다.

첫째는 처녀의 몸을 통해 오신다는 예언이다(창3:15, 사7:14).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갖느냐? 그래서 그 분은 하나님 아들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도 중요하지 않다. 그 마리아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도구일 뿐이다.

둘째는 그 분이 부활하신다는 것이다(시16:10, 행2:27, 롬1:4). 세상에 누구도 부활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가 창 조주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요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그 분만 내가 겪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근본 문제)를 해결 하셨기 때문이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과 선행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세가지 근본 문제에 빠진 것이다.

① 인간은 원죄의 본성을 가지고 죄의 종노릇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롬3:10, 롬6:17).

착하게 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 죄의 권세가 주장하는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오셔서 죽으심으로 내 죄(원죄의 저주)에서 나를 해방시키신 것이다(롬8:1-2)

그래서 이제는 죄의 종(slave)이 아닌 하나님 뜻을 이루는 의의 종(servant)이 된 것이다(롬6:18). 이제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 되었고, 세상의 유혹과 죄와 싸울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본문 1절에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던지라”는 것이다. 넘어졌어도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요일1:8).

②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죄의 종만이 아니라 사단에게 속한 자가 되었다(요8:44).

때로는 착하게 사는데도 여러 문제와 갈등이 계속 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을 도적질 하는 사단이다(요10:10)

이 사단을 깰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세상의 어떤 정치인도, 영웅도 안 된다. 오히려 더 무너진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셔서 죽음에서 부활하면서 뱀의 머리를 밟고 사단의 권세를 깬 것이다(요일3:8)

이제는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시다.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내 인생에 문제를 가져다 주고, 나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 사단의 권세에 싸울 수가 있는 것이다(눅10:19). 싸운 만큼 큰 믿음이 증거를 얻게 된다(계17:14).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제는 남을 위해서도(믿음이 약한 자, 가족, 성도) 영적 싸움을 해줄 수 있다(엡6:18).

③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다(엡2:1). 영원한 생명의 길을 잃은 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빠져 살고, 그래서 세상의 것을 얻어도 허무하고 외로운 것이다.

그리스도가 선지자로 오셔서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고, 새생명을 주신 것이다(요14:6).

우리는 길을 찾은 자이다. 허무한 것에 빠져 살 인생 아니다. 잠시 헤메다가도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다.

3) 내가 겪는 문제와 고통이 무엇인가? 이 그리스도가 나의 참 주인이 되게 하고, 그 분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도 환경, 현실, 사람 바라보는 순간 무조건 사단에게 속고, 결국 잠시라도 실패하는 길을 가게 된다.

그 환경이 좋아 보일수도 있다(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땅처럼). 현실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나처럼). 불신자가 오히려 힘이 있고, 잘 통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래서 신자가 실패한다.

 

  1. 내 평생의 시간표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훈련을 하라. 흔히 “신앙 생활을 한다”는 말이 이 말이다.

1) 매일 3오늘(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하나님과 통하는 세가지) 놓치지 마라.

말씀을 통해 생각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라. 나만의 기도 찾아서 계속 힘을 얻고,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라.

내 문제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내가 도울 사람을 찾아 이 그리스도를 전해보라. 오히려 내가 살아난다.

일심,전심,지속으로 해보라. 일심은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전심은 간절한 것이다. 지속은 계속 가는 것이다

2) 이 그리스도가 나의 오직이 되는 시간이 온다. 하나님이 잠시 어려움, 실패, 외로운 시간을 허락하시는 이유다. 이때가 그리스도로 충분하고, 그리스도로 행복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임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원하 시는 것은 하나다. “나 하고만 사랑을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전부 이 시간이 있었다. 다윗은 악신들린 사울에게 쫒겨 다니며(시62편), 베드로는 실패 속에서 이 시간을 체험했다(요21:15-17)

3) 그 분이 나의 오직일 때만 나의 하는 일이 유일성이 되고, 내 현장에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분이 축복하는 일이 된다. 누가 막을 수 있는가? 그 분이 내 삶의 현장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재 창조다.

그 비밀을 가지고, 우리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자로 살다 가는 것이다(세계복음화와 제자)

 

결론-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요 성탄절을 맞은 오늘,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는 참 믿음이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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