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24-34) 1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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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베드로가 처절한 실패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분을 사랑하고 섬긴 제자였다. 특히 마16:16-19에 최초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고백하고, 그 축복을 약속받은 사람이다. 그 축복이 어마어마했다. 반석이라고 했다. 이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했다. 우리도 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이 시대 같은 축복을 누릴 자로 살고 있다.
이런 베드로가 예수님이 고난을 받기 위해 붙잡혀 있는 시간에 치명적인 실패를 하고, 수치를 당한다.
한 어린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 저주, 맹세까지(마26:72-74) 한 것이다.
그런 베드로가 이 치명적인 실패와 부끄러운 시간을 딛고 일어나 훗날 세계를 살리는 전도자가 된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베드로전후서라는 성경도 기록하시고, 그는 로마의 네로 황제 핍박 때에 지난 주에 메시지에서 언급한 바울과 함께 순교를 당한다. 바울은 목이 잘려서 죽고, 이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전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첫째는 지난 주의 바울처럼 하나님은 꼭 이런 사람만을 쓰시나?
둘째는 베드로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까? 아셨다면 왜 실패하지 않도록 막아주고 도와주지 않았을까?
우리 각자의 아픔과 실패에 대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실패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을 모르면 있던 믿음도 무너져 버릴 수 있다. 그 답을 찾아야 한다.
- 하나님은 이 실패를 알고도 허락하신 것이다.
1)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고, 그 시간에도 함께 하셨다(시139:1-10)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실패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핑계대지는 말라고 했다(약1:13-14)
인간의 욕심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무너질 수 밖에 없도록 숨은 상처와 욕심을 건드려 유혹하는 사단도 있다.
2) 본문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실패를 안 정도가 아니다. 아시기 때문에 경고하셨다. 더 나아가 허락하셨다.
31절에 “사단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 베드로를 무너뜨려 보겠다고 청구했다”고 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여기서 신학적인 해석이 나온다. 인간과 세상에 있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거룩한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하신
작정(Decree)이 있다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7문).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없다(마10:29).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는 예정이라는 단어를 쓴다(엡1:5, 1:11)
3) 그 작정 속에 두가지의 작정(절대적 작정과 허용적 작정)이 있다.
절대적 작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준비한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작정이다(하나님의 창조, 보존, 통치).
허용적 작정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허락하시나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의 목적을 위해 쓰신다는 것이다.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도 허용적 작정이다. 본문의 베드로의 실패도 허용적 작정이다.
- 왜 허락하셨을까? 베드로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막아주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베드로가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롬8:28).
1) 적어도 세가지 기회를 주신 것이다.
① 그 시간에 내 숨겨진 욕심과 약점을 드러내 치유 받는 시간이 된 것이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제자의 길을 가지만 그것이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얻었지만 아직도 내 안에 죄에 오염된 상태(가정과 가문의 흐름, 성장 과정이나 과 거에 경험한 상처에서 나오는 트라우마, 경쟁의식, 열등감, 욕심, 이기주의 등). 베드로가 이 속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것이 우리에게 항상 사단의 통로가 되어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반복되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으로 더 성숙해가는 기회이다(약1:3-4, 벧전1:7).
결국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누군가의 실패를 보면서 비난 정죄하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보고(마7:3),
나의 허물과 수치를 보고 먼저 무릎을 꿇는 이유다. 성경에 모든 실패를 기록한 이유도 그것이다(고전10:12)
③ 그런 아픔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된다.
정말로 회개하고 부끄럽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 베드로가 통곡을 하며 운 이유다(눅22:62)
그 이후에 베드로는 자기 같은 사람을 살리다가 마지막 순교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간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 쓰임 받는 날을 위해 주님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했다(32절, 롬8:26)
2)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이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와 세가지 깊은 것을 붙잡게 하신다(요21:15-22).
①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하셨다. 그가 세 번을 부인한 것처럼 세 번을 반복하셨다.
이전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랑, 부끄럽기에 더 그 분만을 바라보는 깊은 사랑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② “가서 내 어린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셨다. 어린 양은 연약하고 넘어지기 잘하는 모든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양은 착한 존재가 아니고, 약하면서 미련하고, 고집스러운 존재의 상징이다. 넘어져도 스스로 못 일어난다.
③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네 팔을 벌려 남이 너를 데리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고집스럽고 자기 밖에 모르던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말씀하셨다고 했다(19절)
- 이 모든 것의 결론이 무엇인가? “돌이킨 후에는 네(너 같은) 형제를 굳게 하라”고 했다.
1) 나의 가정, 학업, 직장, 모든 현장에서 이 결론을 잡으라.
거기서 나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나보다 더아픈 사람, 더 부끄럽고 외로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와 우리의 아픔으로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무엇을 위해 생을 걸어야 하는 지에 집중하라.
2) 내가 누군가에게 억울한 소리를 듣고 당했다면 잠잠히 기다리라. 그들이 무너지는 날이 온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 “그 축복이 다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시35:11-13)
3) 내 욕심과 교만으로 실패했는가? 다윗처럼(삼하12:16), 본문의 베드로처럼 진실로 회개하고, 포기 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 그리고 나같은 사람을 살리는 진짜 전도를 하라
결론-우리에게 억울한 고난, 내 욕심과 허물로 인한 실패, 계속 찾아올 수 있다. 실패했는가? 실패한 사람들을 보는가? 그들이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참담하다. 아프고 눈물 나지만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바라보며, 더 큰 것을 바라보라. 항상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 특히 RU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더 큰 것을 바라보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후대에게 부끄러운 것을 남기고 갈 수는 없다. 반드시 이단 누명을 벗기고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 후대들 중에 복음 분명하고, 영성과 인격을 갖추고, 실력 있는 리더들이 나오고 있고, 계속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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