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창37:1-11) 3/5/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37:1-11) 3/5/2017

 

나의 자녀관이라는 말을 안 쓰고 후대관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후대”라는 말은 뒤를 잇는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고, 우리가 누린 이 복음의 축복을 다시 전달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 관한 말씀을 계속 나누는 이유가 뭐냐?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모든 잘못된 세계관으로 각인, 뿌리, 체질된 것을 바꾸라는 것이다. 모든 기준과 수준이 하나님이 아닌 나. 육신, 세상이다. 내 기준과 수준을 못 뛰어 넘는다. 영적인 축복은 다 놓치고 육신에 매여 산다. 결국 세상에 짓눌려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와 후대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이다(창3장).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기준대로 하려고 한다. 자식이 부모 수준을 못 넘어간다. 육신 기준이다(창6장). 내 몸에서 난 자식이어야 하고, 누구 피가 섞였냐에 묶여 산다. 그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예수 피가 섞여야 영원한 관계다. 마지막 때는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미워하고, 불순종할 것이라고 했다. 세상 기준이다(창11장),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게 만드냐가 기준이다. 그래서 좋은 학교 나와야 하고, 좋은 직장, 성공한 자리에 가놓고, 어느날 우울증, 성격 장애, 영적 문제에 빠진다(창1:2)

  1. 성도에게 있어 참된 자녀는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자녀가 있다.

1) 내 태의 열매를 통해 나온 자녀다.

① 분명히 시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다. 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기업이고 상급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자르고 헤메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선물 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믿음이 전달되어야 자녀가 더 잘 한다.

②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수준으로 키우면 안 된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기준, 하나님 수준, 하나님 목표로 키워야 한다. 눅2:52의 예수님이 성장이 모델이다. “그 키가 자라면서(육신적 건강), 지혜도 자라 고(인격적 성장),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영적 성숙),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았다(인간관계의 성숙)”고 했다.

2) 내가 현장에서 전도를 통해 살린 영적 자녀이다.

①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죽이신 이유이다. 현장에 영적 고아로 헤메는 자들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자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천국 가서 만나야 할 영원한 자녀들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전도해서 양육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유모가 자식을 살피듯이”(살전2:7), “아비가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듯이”(살전2:11) 한다고 고백했다.

내가 전도한 영혼들, 그들이 어릴수록 좋다. 내가 영혼 속에 담아 키우는 영적인 자녀들이다. 얼마나 있는가?

3) 나의 렘넌트 자녀, 곧 제자이다.

① 주일학교에서 교사를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렘넌트 자녀이고, 그리스도 제자로 자라가도록 도와야 한다.

교사를 안 해도 교회 안에서, 현장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렘넌트 자녀들이 있다. 나를 통해서 자라가는 그 렘넌트 제자들이 성도에게는 하나님 앞에 가서 누릴 영원한 면류관이고 상급이다(빌4:1).

② 실제로 이렇게 영적인 자녀의 모습으로 세워진 렘넌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모세가 세운 여호수아와 갈렙, 자식처럼 키운 렘넌트 제자들이었다. 바울은 디모데, 디도를 향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같은 믿음 안에 있는 나의 참 아들”(딛1:4)이라고 불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해 “아버지”라고 불렀고(왕하2:12), 엘리가 키운 사무엘, 사무엘이 기름부어 평생 기도로 지원한 다윗, 전부 렘넌트였고, 영적 자녀로 키운 것이다. 이런 렘넌트 자녀들을 키우는 것은 절대 축복이다.

 

  1.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자녀, 참 후대를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그들에게 반드시 심어 주어야 할 언약이다. 일단 각인부터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그것이 나온다.

본문의 요셉처럼 사실은 적어도 17세, 18세 이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다(2절). 17세의 요셉이라고 밝힌 이유다.

사실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다. 그때는 어떻게 할까? 뒤에서 생각하겠다.

세상 가서 어떤 일을 당해도 승리할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쓰실 축복과 응답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고, 택함 받은 렘넌트, 그루터기들이다(사6:13, 롬11:5)

하나님이 은혜로 택한 자, 끝까지 망할 수 없고, 하나님이 붙드실 것이다(빌1:6). 본문의 요셉을 포함해 렘넌트 7명이 이것을 체험했다. 노예로 필려 가고, 살인자로 도망 다니고, 사울왕에게 쫒겨 다녔지만 그 결론을 안다.

② 그들은 “남은 자”다(사10:21, 습2:7).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온 세상이 타락하고 저주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손에 붙잡혀 남을 자고, 남는 자고, 남길 자(자기 같은 사람 살릴 자)다.

③ 그들은 “흩어지는 자”이다(행1:8, 행11:19). 결국 남들이 못 가는 땅끝(재앙지대, 사각지대, 황금어장)으로 가고, 온 세상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 갈 사람들이다. 성경에 흩어진 자들이 왜 흩어졌는가 보라.

우리가 이 시대 로마 같은 미국에 와서 나그네처럼 인생을 사는 이유이다. 전도와 선교, 이거 심어주어야 한다. 2) 그들의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보여주고,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완전한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고 실패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부족한 내가 그래서 더 하나님 바라보고,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델이 되어주는 것이다.

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무엇을 보여주었겠는가? 많은 실패를 했지만 늘 제단 쌓고(하나님 바라보고 예 배에 승리한 사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창22장의 모리아 산 사건이 결론)

② 본문의 요셉이 17세에 형들에게 팔려가서 세상에서 승리했던 이유도 결국 아버지 야곱을 통해 본 것이다.

많은 실패를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로 바뀌는 성숙과 치유와 성화의 모델이다.

3) 우리 후대들의 참된 발판과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다.

세상적 권력의 배경, 경제적인 배경, 다 좋은 것이다. 진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① 기도 배경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한 하늘의 힘과 배경이 역사하는 것이다.

11절에 요셉이 꿈 얘기를 했을 때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으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

② 무엇을 마음에 두고 사는가?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기도 제목으로 붙잡았다”는 것이다.

상처가 아닌 감사를 담고, 거기에 말씀을 담고, 그것을 잠시라도 묵상하고 집중하는 것이 참된 기도다. 평안과 용기가 생긴다. 치유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내 기도와 말씀과 내 상황이 정확하게 맞고 균형이 잡힌다.

훗날 요셉을 만날 때 “나는 믿었다”고 고백한다(창45:28). 그 시간까지 야곱은 믿음의 기도로 승리한 것이다.

 

결론-하나님이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기준 속에서 후대를 살리고, 참된 세계복음화의 축복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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