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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 RUTC 시대 : 여호와이레의 축복(창22:1-14) 6/3/2018
“여호와이레”의 축복, 많이 들은 말이다. 바벨탑 시대에 자기 가문의 저주를 막았던 한 사람 아브라함이 마지막 결론으로 누린 축복이 이것이다. 아브라함이 한 시대의 증인으로, 전도자로, 믿음의 조상으로 쓰임받을 사람이기에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이 “여호와이레”의 결론을 내면서 모든 훈련은 끝이 난 것이다.
지금 불신자보다 기독교인이 더 문제다. 기도 응답 받는 교인이 없고, 전도할 수 있는 증인들이 없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웃고, 교회는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우리가 중요한 결론을 내기를 원하신다.
- 그리스도를 알고, 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야 할 우리는 적어도 세가지의 결론을 꼭 가지고 살아야 한다.
1) 분명히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 운명, 저주를 끝냈다는 것이다(요19:30).
이 결론을 못 내면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계속 속는 정도가 아니다. 속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문제 올 때마다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다가 스스로 무너진다(벧전5:6-9). 그 정도가 아니다. 나중에는 진 짜 영적 문제가 온다. 욥이 사단에게 그렇데 당하고 고난과 고통을 당한 것이다(욥3:25-26)
2) 어떤 문제가 다시 와도 그리스도의 언약 붙잡은 자의 삶은 세상을 살릴 증거가 될 것이다(행1:8)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부족하고, 실수하고, 그래서 어려움이 왔어도 반드 시 모든 것을 증거로 바꾸셔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증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 사건에서 그 증거의 언약을 붙잡고 평생 전도와 선교 속에 살면 된다. 그것이 성도의 결론이다.
3) 우리를 증인으로 쓰셔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결론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여호와이레의 축복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지만 이 결론을 붙잡지 못할 때 중요한 시간에 환경, 현실 따라 자기 기준, 능력, 방법으로 하다가 많은 일 당했다(창12장에 애 굽에 내려가서, 창13장에 롯과의 관계에서, 창16장에 이스마엘을 낳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포기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훈련시키셨다. 왜냐? 아브라함이 언약을 붙잡고, 언약의 대열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말 언약을 붙잡고, 언약의 대열 속에 있다면 끝까지 훈련시키고 체험하게 하실 것이다.
- 일단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처음부터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이었다는 것부터 붙잡으라
1) 창1:27에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모든 축복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창2장의 에덴동산)
심지어는 영적 세계에서 먼저 타락했던 사단이 아담에게서 이 축복을 빼앗아 갈 것을 알고 선악과나무까지 준 비해놓으셨다. 인간이 욕심으로 인해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고 이 축복을 뺏긴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렇다고 인간을 저주 속에 두지 않으셨다.
타락하자마자 주신 언약이 있다. 창3:15과 창3:21에 여인의 후손이 오면 사단의 머리를 깨고, 양의 피로 우리가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고,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구약 성경은 이 그리스도가 오 실 것이고, 신약은 이 그리스도가 약속대로 오셔서 모든 길을 여시고 모든 축복을 준비해주셨다는 것이다.
저주 끝났다. 문제 다시 와도 상관없다. 모든 것이 세상을 살리기 위해 응답과 축복으로 가는 길이다.
- 이제부터 이 여호와이레의 언약을 붙잡고 적어도 세가지 현장에서 이 축복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1) 예배 현장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응답과 축복을 누리는 최고의 현장이 예배드릴 때이다.
그래서 예배 드릴 때마다 왕 앞에 나가 왕의 축복을 받을 생각을 하고 나가야 한다(시95:1-3)
① 예배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축복을 다 누려야 한다. 얼마나 많은 문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가?
예배에서 해답을 얻고, 예배에서 모든 것을 이길 힘을 얻고, 특히 말씀에서 모든 축복을 다 찾아내야 한다.
아브라함이 가장 잘한 것 중에 하나가 예배이다. 어디를 가든지 언약 붙잡고 제단부터 쌓았다. 중요한 응답을 받기 전에, 중요한 응답을 받고나서 예배를 드리며 모든 축복을 누린 것이다(창12:7,8, 13:4, 13:18, 창21:33)
② 예배에 모든 것을 걸으라.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라. 모든 것 위에 우선 순위를 정해놓고 가야 한다.
예배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한 주간은 죽는 줄 알아야 한다. 저주요 재앙이다.
사업 바쁘다고, 여행 중이라고, 공부한다고 예배 놓치고 뒤로 하는 순간 완전히 사단 통로되는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할 때도 예배를 가지고 했다(2절). 아들의 생명을 걸고 번제를 드리게 한 것이다.
2) 내 삶의 현장이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여호와이레의 축복으로 체험해야 한다.
① 정말로 그리스도를 알고 창12:1-3의 아브라함 같은 언약을 잡았다면 우리가 필요한 것 먼저 아시고 채우신다.
엡3:20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넘치게 하신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넘치게 하신다는 것이다.
② 우리가 먹고 사는 것 고민하고, 거기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다가 갈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마6:25-32). 부족한 내가 사람 살리고, 세상 살리다 가겠다는 결론내면 된다(마6:33)
많은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여기에 묶여서 아무 것도 못한다. 중요한 훈련, 축복을 다 놓치고 산다.
③ 특히 모든 현장, 만남 속에는 전도할 사람 준비되어 있다. 특히 제자 준비되어 있다(마28:18-20)
진짜 전도, 선교 중심으로 살아보라. 모든 것을 넘치게 하실 것이다. 그 이유가 아니면 넘치게 하실 이유 없다.
3)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 현장이다. 세상 살아가면서 문제, 위기 온다. 상관없어야 한다.
우리의 실수와 부족함으로 올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깊이 치유하고자 하시는 테스트도 있다.
정말 그때 문제와 위기 속에도 하나님이 중요한 응답과 축복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확신가지고 가야 한다.
① 우리가 언약 붙잡고 믿음 회복하면 모든 것이 축복의 문이다(계3:8).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냥 우리에게 문제, 위기,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율법에 붙잡혀 하나님이 치신다고 속는 사 람도 있다. 회개할 거 있으면 회개하고, 갱신하고 새로 하면 된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 은 저주와 고생이 아니고 평강이고 희망이고 미래이다(렘애3:33, 렘29:11-13, 롬8:28)
② 하나님이 우리가 참된 믿음을 회복하고 증인으로 서도록 문제와 위기의 시간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내게 최고의 것만 허락하신다”는 절대 믿음과 절대 순종의 자세로 서도록 훈련하라. 하나님이 양을 준비해놓고 테스트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죽은 아들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고 했다(히11:19)
결론-복음 안에 있는 내 인생은 하나님이 쓰셔야 하는 너무 소중한 인생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 나의 현장 찾아내라. 여호와이레의 결론 붙잡고 시대 살릴 참 축복의 증인들로 서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여호와이레의 축복(창22:1-14) 6/3/2018 June 3, 2018
제1,2,3 RUTC 시대 : 바벨탑의 저주를 막을 한 사람(창12:1-5) 5/27/2018
지난 주에 우리는 시대마다 강대국에서 일어나는 바벨탑의 저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시대 미국에서 살게 하셨는지 그 이유와 결론과 축복을 붙잡았다. 이 시대 초강대국 미국이 바벨탑의 저주를 온 세상에 퍼트리는 나라가 되느냐 아니면 전 세계 살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나라가 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오늘 다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나 한 사람 만이라도 바로 서라. 일단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이 한가지가 다르다. “나 한 사람만이라도”의 중심을 가지고 산다. “나 한 사람이라도 바로 살아야겠다”.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 한 사람만이라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겠다”, “나 한 사람만이라도 깨어서 기도하겠다”, 이들이 파수꾼이요, 전도자요, 제자이다.
-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시대마다 바벨탑의 저주를 만드는 강대국에 그 한 사람을 찾으시고, 쓰셨다는 것이다.
성경에 일곱 강대국에서 쓰임받은 사람들이 다 한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팀을 이룬 것이다.
실제로 일곱 강대국이 우상을 퍼트려 온 세상에 영적 문제와 저주를 만들 때에 쓰신 인물들을 보라.
애굽에서 요셉과 모세 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인 것이다. 블레셋 시대에는 사무엘, 다윗 한 사람이다.
아람이 이스라엘에 고통을 줄 때는 엘리야, 엘리사 한 사람으로 한 것이다. 앗수르 시대에는 히스기야와 이사야 같은 한 사람을, 바벨론에서는 다니엘을, 페르시아에서는 에스더를, 로마에서는 바울 같은 인물을 세운 것이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그 바벨탑의 저주가 처음으로 시작된 강대국, 갈대아우르 땅에서 부름 받은 것이다.
- 여기서 왜 한 사람이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많은 사람은 안 되는가? 많으면 좋다.
문제는 항상 다수가 하나님의 뜻과는 틀린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 한 사람만으로도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1)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세상처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탄식을 알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며, 하 나님과 통하는 한 사람만으로도 세상을 살리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의 능력이다(사60:22)
약한 자, 지혜없는 자, 배경없는 자들을 쓴 이유가 그것이다(고전1:26-29) 사람들이 하나님 능력을 보아야 한다
2) 그것이 우리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다.
나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속지 마라. 나는 힘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도와주는 자도 없기에 안 된다고 생각하 기에 속는 것이다. 혼자 아니다. 그 분이 함께 하신 것이다. 내가 능력도 배경도 없기에 그 분이 되어 주시겠다 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없고, 너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사6:13의 거룩한 씨). 3)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한 사람이 그냥 한 사람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을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는 증인으로, 복음을 위해 생명 건 제자 로 훈련시켜 쓰시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많은 사람이 나서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비밀이다.
전쟁에서도 중요한 일에는 많은 사람을 안 보낸다. 한 사람이 백을 대신하고 천을 대신 할 사람으로 훈련시켜 조용히 가서 하는 것이다. 그들이 제자다(막3:13-15). 이번에 전도자의 집중 훈련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문제 있는가? 문제 아니다. 훈련이다. 나를 들어 쓰시기 위해 하나님 방법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 나 혼자만이라도 세가지 제대로 훈련하라.
1) 나 혼자만이라도 오직 그리스도로 결론내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언약을 잡으라.
① 본문에 아브라함을 불러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다.
그 가나안이 그리스도의 언약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그리스도를 붙잡기만 했는데, 어떤 약속을 주셨는가?
복의 근원으로 삼아 창대하게 하고 큰 민족으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나와 내 가문을 향한 축복의 언약이다.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는 것이다. 완전 승리의 언약이다.
너로 인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전도와 선교의 언약, 세계복음화의 언약이다.
②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왜 나를 이렇게 축복하셔야 하냐?
그냥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처절히 고난을 당함으로 모든 죄, 저주, 운명, 사단, 지 옥 심판을 끝낸 것이다. 어떤 문제 있는가? 문제 아니다. 축복이다. 이거 체험하는 것이 갈보리 체험이다.
2) 나 혼자만이라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믿음으로 끝내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붙잡으라.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다. 우리의 행위와 노력과 열심보다 어려운 것이 이것이다.
아브라함을 왜 기뻐하셨냐? 믿었기 때문이다(롬4:3).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으면 자랑할 것이 있는 데,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믿었는가? 아무도 도와 줄 수 있는 자가 없기에 믿었고(사51: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고(롬4:18), 자식의 생명을 놓고 믿었다(히11:19)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왕하19:14-19), 죽을 병에 걸렸을 때(왕하20:5) 믿을 때에 끝났다.
② 우리 안에 계속 되는 영적 문제들이 언제 끝나냐? 믿을 때이다(벧전5:8-9, 찬송 “주 믿는 사람 일어나”)
그 믿음이 언제 생기겠는가? 내 안에 말씀이 각인되고 있을 때이다. 내 믿음의 근거이다. 내가 기도 속에서 영 적인 힘을 얻을 때이다(막9:29). 나 같은 사람 살리는 일을 할 때이다(막16:17-18). 이것이 3오늘이다.
3) 나 혼자 만이라도 오직 성령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라. 하나님의 절대 결론을 붙잡는 것이다.
① 아브라함이 언약을 알고, 믿은 정도가 아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행위가 나온 것이다.
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말씀을 따라 그 땅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5절에는 마침내 가 나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순종에서부터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② 하나님의 절대 결론은 나를 세상 살릴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이다.
특히 전도와 선교에서는 절대 순종이다. 성령이 이끄는 대로 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내 현실, 내 기준, 내 원하는 것에 안 맞아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순종하겠다고 할 때만 성령이 일하 시고, 세상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마26:39). 그들이 참 전도자, 참 제자이다.
결론-나 혼자만이라도 절대 언약을 붙잡은 절대 믿음과 절대 순종으로 이 시대 미국 땅에서 바벨탑의 저주를 막는 참 전도자로, 증인으로, 제자로 쓰임받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바벨탑의 저주를 막을 한 사람(창12:1-5) 5/27/2018 May 27, 2018
제1,2,3 RUTC 시대 : 바벨탑의 저주를 막을 사람들(창11:1-9) 5/20/2018
지난 주까지 우리는 네피림 시대의 저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방주를 지었던 노아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후대와 미래를 살린 증인으로, 전도자로 쓰임 받은 사람이었다.
오늘부터 사단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저주인 바벨탑의 저주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누릴 축복과 응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불신자에게 바벨탑은 저주다. 그러나 신자에게는, 전도자에게는 축복의 기회다.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그랬다. 문제가 오면 오히려 문제 속에 들어가 전부 축복으로 누린 것이다. 갈등이 있는가?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이 있는가? 감당하기 어려운 응답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그 답을 다시 내기를 바란다.
- 본문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저주가 무엇인가? 성경은 무엇 때문에 이 바벨탑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까?
단순히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다가 하나님의 저주로 인간의 언어가 달라지고 온 세상에 흩 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 아니다. 본문 3-4에 보면 적어도 세가지 중요한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1) 3절에 “그들이 벽돌을 만들어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의 발전이고, 그것은 문명의 발전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문제였다. 문명이 발전하면 뭔가가 편리해지기는 하는데 그것이 항상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영적 타락을 만들어냈다.
2) 진짜 문제는 4절에 있다. “성(도시)과 대(높은 타워)를 세워서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거기에 우리의 이 름을 내자”는 것이었다. 하늘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하나님이다. 그 말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의 이름을 놓자는 것이다. 누가 개입한 사건일까? 창3:5, 창6:4에 등장했던 사단이다.
3) 이때 만들어진 것이 역사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강대국(제국)이라고 불리우는 메소포타미아 제국이다.
① 대단한 나라였다. 이때 벌써 세계 지도가 만들어지고, 기하학, 천문학을 연구하고, 하무라비 법전이라고 하는 인 류 최초의 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것이 있는 데 우상숭배하는 신전들이었다. 그것이 바벨탑이다.
사단은 인간이 하나님 없이 세상을 발전시키게 하면서 세상 속에 엄청난 영적 문제를 심게 만든 것이다.
②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것이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끝없는 스트레스, 우울증, 정신문제, 귀신을 보고 시 달리는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내 가족과 이웃 속에서 많이 만날 것이다. 어떤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 계18:1-3에 가보면 이 바벨탑의 저주는 마지막 주님 오시기 전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요한이 환상 중에 본 “큰 성 바벨론”이 창11장의 바벨탑에서 시작해서 계속되는 강대국의 역사를 말한 것이다.
그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불리우는 강대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냐?
1)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이 될 곳이라고 했다(계18:2)
강대국이 되려면 둘 중의 하나다. 정말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전쟁을 하거나 이민을 통해서 각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그들이 들어올 때 무엇을 가지고 오겠는가? 그들의 우상이다(고전10:20).
이 시대 강대국 미국에 온 세상 우상이 다 들어와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영적 문제를 만드는 본부가 여기이다.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자리다. 영적싸움에 당하든지, 승리하고 정복하는 자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다.
2) 그들은 말 그대로 큰 성이다. 세계의 최고들이 모여서 인본주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써밋들의 90%가 미국에 모여 있다. 그들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없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복음을 우습게 알고, 교회를 우습게 알고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을 대적하고, 그들을 살릴만한 복음가진 영적 써밋들을 세워야 한다.
이 땅이 “써밋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자리이다. 왜 공부하고, 왜 전문인의 자리로 들어가는 도전을 해야 하냐?
이유있는 도전을 해야 한다.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비웃을 때 분노를 한 것이다(영적 분노).
다윗이 열심히 해서 골리앗을 이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유를 가진 다윗을 축복하신 것이다.
3) 사단이 강대국을 통해 모든 나라와 왕들을 움직이고, 세상을 영적인 저주로 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계18:3)
이 시대의 초강대국 미국이 전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문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자리이다.
이 세가지 전쟁에 그리스도만을 거부하는 유대인 단체, 프리메이슨, 뉴에이지가 앞장 서고 있다.
지금 이 시대 강대국 미국은 어떤 곳인가?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쓰시는 나라인가? 아니면 이 마지막 때의 바벨탑의 저주를 온 세상에 전해주는 나라인가?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달렸다.
-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대 강대국 미국에 살게 하신 이유와 그 축복을 찾아내야 한다.
1) 하나님이 결국 바벨탑을 무너지게 하고, 그들을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셨다(그 흩어진 자들이 “디아스포라”)
성경에 7개의 강대국의 역사가 나온다(이집트, 블레셋, 아람,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이 강대국에서 뽑아 내든지, 그 강대국으로 들어가게 하든지 해서 세운 사람들이 그 시대의 렘넌트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씨”, “남은 자”, “디아스포라”, “영적 써밋”, “전도 제자”의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다.
2) 우리를 왜 이 시대의 강대국 미국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왜 “디아스포라”로 미국으로 오게 하셨을까?
이 시대 강대국 미국이 이 시대 바벨탑이 되는 것을 막으라고 미국 살릴 전도자, 파수꾼, 증인으로 부른 것이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이유를 거기서 찾으라(영적 분노를 가진 자).
내가 공부하고 일하고 전문인으로 서야 하는 이유를 거기서 찾으라(축복 받을 이유를 가진 자).
내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거기서 찾으라(영적 힘을 가진 자)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을 살릴 완전한 해답과 결론을 주셨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할 모든 죄, 저주, 운명, 지옥, 사단의 권세를 끝냈다(요19:30). 절대적인 해답이다.
사단의 권세를 꺽고, 모든 사람을 축복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벧전2:9). 절대적인 축복이다.
반드시 모든 것(일, 학업, 아픔, 눈물까지)이 증거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행1:8). 절대적인 결론이다.
이제 우리를 이 땅에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 자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마28:18-20). 절대적인 비전이다.
결론-이 시대의 바벨탑의 저주를 막을 자로 나를 미국으로 보내셨다. 어떤 문제, 갈등, 상처, 실패에도 속지마라. 문제도, 갈등도, 상처도, 실패도 아니다. 나를 절대적인 해답, 축복, 결론, 비전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이다. 절대로 남의 말 하지 말고,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하지 마라. 오히려 힘을 주고, 축복하라(시35:13).
묵묵히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힘을 얻어 오늘을 승리하라. 그것이 3오늘이다. 하나님은 정확히 나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모든 것이 증거가 되게 하실 것이다.
제1,2,3 RUTC 시대 : 바벨탑의 저주를 막을 사람들(창11:1-9) 5/20/2018 May 20,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아는 자(창6:17-22) 5/13/2018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가 가지고 있었던 것 세 번째다. 22절에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다 행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표현을 쓴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을 다 이룬 자”가 되는 것이다.
부족하고 늘 실패하는 우리가 허락된 짧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축복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참 성공자의 인생을 산 것이다.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부 이 축복을 누리고 간 것이다(창18:17의 아브라함, 행13:22의 다윗)
우리는 어떻게 이런 축복을 누리며 살다 갈 수 있을까? 오늘까지 3주간의 말씀을 잘 생각하고 묵상해보면 답이 나온다. 오늘은 그 세 번째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아는 자”이다.
- 정말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뭘까? 단순히 모자르고, 실패하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는 것을 직접 표현한 것들이 있다. 불신앙(민14:23), 우상 숭배(출20:4-5), 교만(약 4:6)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일에 가장 앞장 서는 자가 누구냐? 그가 마귀다.
1) 일단 창세기에 세가지 일을 했고, 지금도 그 저주는 계속되고 있다.
① 창3장, 첫 인생 아담을 무너뜨려 모든 인생과 세상이 저주에 빠지게 한 것이다(롬5:12).
② 창6장, 네피림 시대를 만들어 하나님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③ 네피림 다음 시대가 온다. 창11장의 바벨탑의 시대이다. 창11:4에 가보면 중요한 말이 있다. “성을 쌓아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고, 거기에 우리의 이름을 내자”는 것이다. 인간의 힘을 모아 하늘에 닿는 성을 만들겠 다는 것이다. 최고의 성을 세울 만큼 엘리뜨들이다. 문제는 그 자리가 우상 숭배하고, 귀신 섬기는 자리였다.
20세기에 와서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팀들이 다시 제2 바벨탑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엘리뜨들 을 키우고, 거짓된 영적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만들어서, 세상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① 이 바벨탑 운동을 실패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 시대에도 계속되는 그 바벨탑 운동을 막아 교회를 살리 고, 후대를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릴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 가진 전도자요, 그 복 음에 생명 건 제자요, 어려서부터 이것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렘넌트다.
② 하나님이 노아를 불러 네피림 시대를 이기고, 바벨탑 시대를 막을 미래를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방주의 축복이다. 지난 주에는 방주 속에 담긴 세가지 영적인 축복에 대한 말씀을 나눈 것이다.
방주는 구원의 비밀이다. 누구든지 그 방주 안에만 들어가면 모든 저주는 끝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방주는 성령의 축복이다. 노아가 무슨 능력으로 방주를 짓는가? 하나님이 모든 것(믿음, 건강, 경제)을 부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주 안으로 택한 자들이 들어오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의 비밀이다.
- 하나님이 방주를 통해서 우리가 실제로 누려야 할 축복을 알려 주셨다. 이 축복의 주역으로 서라는 것이다.
1) 방주는 곧 교회의 축복이었다(창6:14)
우리는 교회를 살리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고, 이후에 모든 민족,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① 아무리 밖에 폭풍우가 불고, 저주가 가득해도 나를 보호해줄 교회가 있으면 사는 것이다.
교회가 나를 보호해 줄 만한 힘이 없다. 밥 먹여주고, 돈 대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영적 저주를 막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세가지 권세와 능력을 선포하는 한 영적 저주가 끝나는 것이다. 운명, 저주에 묶인 자들, 중 독, 우울증, 정신문제에 묶인 자들이 다 살아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겪고 있다.
② 이 축복을 위해서 아무리 부족해도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내야 한다(엡4:3).
성령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언제 성령이 역사하는가? 말씀 붙잡을 때다. 말씀의 같은 흐름을 탈 때 성 령이 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붙잡은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천사를 움직이신다고 했다(시103:20)
기도는 성령이 일하시게 하는 시간이다(사62:7). 늘 내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다 지치고 실패하고 무너진다.
③ 이 비밀을 가진 성도들이 모이는 이 성전, 어떤 의미가 되겠는가? 노아가 그런 방주를 지은 것이다.
교회와 성전을 위해 작은 헌신을 해도 기념비적인 헌신을 해라. 후대를 살려야 하는 교회이다.
2) 방주는 후대를 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축복이었다(창6:18)
노아가 방주를 지음으로 그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이 다 살고, 미래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① 우리 후대를 살리는 운동, 그것이 RUTC 운동이다. 그 일을 위해 나를 축복하고 쓰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약하고, 가진 것도 없는 작은 자다. 하나님은 그 작은 자를 통해 하시겠다는 것이다(사60:22).
언약 잡으면 성령이 역사하시고,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응답 받게 되어 있다.
② 내 집도 렘넌트 키우는 RUTC가 되도록 기도하라. 가족 전체가 그렇게 쓰임 받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그 아내와 자식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그 아내는 말없이 노아의 영적 리더십을 믿고 도운 것이다. 가정의 영적 제사장으로서, 아버지로서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자녀들을 도왔고, 그 자녀들이 선 것이다. 그런 아내가 되고, 그런 자녀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렘넌트들은 기억하라. 내 부모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 부족한 것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나를 키운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더 큰 그릇으로 준비되고, 렘넌트 시대를 준비하라. 3) 방주는 모든 만물을 살리는 축복이었다(창6:20)
① 모든 직장인, 산업인들은 내가 있는 자리(내 직장, 회사, 정부)를 살리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모든 식구들과 소유물까지 복을 받았다고 했다(창39:5). 작은 일, 맡은 일에 충성하라.
단순한 경제적인 축복만이 아니다. 나 한 사람의 파수꾼 같은 헌신과 기도로 영적인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요셉처럼 높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인정하고 높일 것이다(창41:38)
② 그러면서 우리는 OMC(Oneness Mission Club)의 축복에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받은 기능과 경제 축복으로 237개국 살릴 복음 엘리트 렘넌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내가 받은 축복으로 장학 재단도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은 노아가 만물을 살릴 수 있는 양식을 위해 저축까지 하게 하셨다(21절)
결론-한 사람의 평신도 산업인 노아가 평생 방주의 언약을 붙잡고 영적인 축복, 실제적인 축복을 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이 그 시대 교회를 살리고, 후대를 살리며, 만물과 세상을 살린 것이다. 우리 개인과 가정이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준비하고, 헌신하고, 쓰임 받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아는 자(창6:17-22) 5/13/2018 May 13,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깊은 것을 누리는 자(창6:8-17) 5/6/2018
지난 주에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가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로 “하나님의 탄식을 아는 자”라는 말씀을 나누었다.
오늘은 그 두 번째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누리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다.
성경에 하나님이 “탄식했다”, “슬퍼했다”, 이런 표현은 많지 않다. 노아 시대에 두 번을 반복해서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창6:6-7). 이유는 한가지다. 단순히 사람들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과 후대와 온 땅에 네피림이라는 영적인 저주와 흐름이 덮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당하기 때문이다
“네피림”,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전혀 영적인 사실을 모르고 볼 때는 그냥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2절), 육신 중심으로(3절), 성공 중심으로(4절) 살다가 타락하고 망한 것이다. 성경은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영적인 저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네피림은 “위에서 떨어진 자”라는 뜻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계12:9에 “위 곧 하늘로부터 쫒겨난 자”, 사단과 그의 따르는 악한 영들을 암시하는 것이다. 원래 천사들이었다. 교만하여 타락한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쫒겨난 것이다. 그가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 이 시대에도 적어도 세가지 일에 집중을 하고 있다.
이 사단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전히 지옥 심판으로 가기까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발 악(격렬한 분노)을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계12:12).
1) 이들이 세상을 장악했다. 세가지 유혹의 함정을 만들어서 장악한 것이다.
창3:5에 아담을 유혹하면서 “네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뉴에이지가 이것을 하고 있다.
마4:8-9에 감히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내게 경배하면 세상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한 것이다. 자꾸 세상의 소유의 욕구와 성공의 욕심을 자극하며 유혹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기셨다(10절). 지금 성도들에게 그 사단의 유혹을 이길 말씀이 없다. 그래서 렘넌트 때부터 말씀이 각인, 뿌리, 체질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3:9에 사단도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3단체다.
2) 이들이 교회를 장악했다. 교회를 단순한 종교 단체로 만들어 아무 힘이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교회는 그냥 마음에 위로 받으러 가는 것이다. 세상에 가도 그런 위로는 받을 수 있다.
극단적인 율법, 신비주의, 세속주의, 교권주의에 빠져 서로 비난하고 정죄하고 싸우는 일에 몰두해 있다.
외형에 치중해서 최고의 예배당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는 빈 건물로 버려지고 있다. 유럽교회, 미국교회가 같다.
이 사단의 계획과 권세를 이길만한 그리스도 비밀을 선포하고, 영적인 힘을 얻는 교회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3) 마지막 중요한 것이 이들이 후대를 장악했다. 그래서 시대가 갈수록 더 악해져 가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우울증, 정신문제에 시달리고, 게임, 폭력, 성적 타락, 마약에 쉽게 빠져 중독되고 있다.
영화, 음악들을 사용해서 이 고통을 더 부추기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 인기의 자리로도 간다. 네피림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라”(눅23:28)고 했다.
- 하나님은 이때 너를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14절).
나를 위해서 방주를 지었는데 거기서 내 가정과 후대가 살고, 그 이후에 렘넌트가 남고, 미래가 준비된 것이다.
“방주”, 시대마다 네피림이 계속되지만 하나님이 주신 답이다. 하나님이 진짜 알게 하시기를 원한 것이 있다.
1) 누구든지 방주 안으로만 들어가면 산다. 그리스도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너를 위해 방주를 지으라”는 말은 내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축복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방주를 짓는 재료, 방법, 구조, 전부 하나님이 말씀해주셨다(14-16절). 전부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① 잣나무로 지으라고 했다. 물 속에 담겨 있어도 나무가 틀어지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다(히13:8)
② 그 틈새를 역청으로 안팍을 칠하라고 했다. 절대로 물이 새어 들어갈 수 없다. 완전하신 그리스도다(히12:2)
③ 구조는 3층으로 하는데, 방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다. 성 삼위 하나님과 유일한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요10:9)고 했다.
④ 창문은 위에만 있다. 늘 위엣 것만 바라보라는 것이다(골3:1-4).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절망, 두려움에 속는다.
이 방주를 100년 가까운 세월 속에 지었다. 우리로 말하면 평생을 걸쳐 그리스도로 각인 뿌리 체질되게 만들라 는 것이다. 내 평생의 삶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누리는 삶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2) 방주를 짓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하나님 능력, 성령 충만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① 네피림의 저주가 가득한 세상이다. 얼마나 많은 흑암 세력의 유혹과 불신앙과 방해와 핍박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다. 성령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깊은 것이 깨달아진다(고전2:10). 그 분의 마음, 탄식, 계획, 그 분의 인도, 능력으로 채워진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고 했다(벧전5:8-9). 무조건 영적 힘이 있어야 한다.
② 그때 그 방주를 짓기 위해 필요한 건강과 경제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24시,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데,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이다(사40:31, 마6:33).
절대로 불신자는 알 수 없는, 겨우 종교 생활하는 신자들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축복과 절대 능력이다.
열심히 살지 마라. 내 능력으로 애쓰지 마라. 결국 무너진다.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을 누리면서 하라.
3) 방주를 지으면서 노아 한 사람이 그 시대의 전도자(의의 전파자)로 세워진 것이다(벧후2:5).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 중에 소원이다. 교회 안에 모든 성도가 중요하나 그리스도의 깊은 것을 구하고, 누리고, 헌신하는 한 사람의 제자가 중요하다. 그 가는 길에 후대, 미래, 하나님은 모든 문을 여시는 것이다(계3:8).
① 아무리 실패했어도 상관없다. 모세처럼, 베드로처럼 실패해도 상관없고, 바울처럼 핍박자로 살았던 사람도 상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고 마귀 보란 듯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제자다.
② 작은 일을 해도 생명을 걸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 걸 이유과 가치를 찾은 것이다. 제자다.
결론-네피림의 저주와 흐름이 가득한 시대에 성경은 노아를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8절)
우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나의 관심은 무엇인가? 나는 무슨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은혜로 인하여 나 자신부터 오직 그리스도로 행복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로 충분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이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은혜로 교회 살리고, 후대 살리고, 세상 살릴 자들로 서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깊은 것을 누리는 자(창6:8-17) 5/6/2018 May 6,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탄식을 아는 자(창6:1-10) 4/29/2018
제21차 세계 산업인대회의 주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이었다. 창5장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계보가 있다. 아담의 두 아들 중에 아벨의 뒤를 이은 셋의 가문이다. 그 속에 대표적인 인물이 노아이다.
본문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말씀 하신다. 의인이다, 완전한 자다, 이것보다 더 축복된 말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이다. 나의 인생 길을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끝나는 것이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이다. 어떤 것도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했을까? 산업인 메시지에서 나온 세가지를 정리해보겠다.
그 첫 번째로 노아는 “하나님의 탄식(아픈 마음)을 아는 자”이었다는 것이다.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계획을 안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노아가 사람들의 오해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방주를 만들 수 있었던 용기와 힘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그 방주를 지어 자신, 자기 가족과 후대, 미래의 세상, 다 살린 것이다.
-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탄식하시는가?
여러 가지 개인과 가정 문제로 아퍼하는 사람들은 나의 아픔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보라.
1)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던 인생이 마귀의 유혹으로 저주와 고통에 빠진 것 때문이다.
① 하나님의 축복을 최고로 누리던 상태와 장소가 에덴 동산이다. 모든 축복이 다 있었던 곳이었다(창2장).
에덴동산에서 네 개의 강이 흘러 온 세상이 번성했고,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있어 영원한 행복을 누렸던 곳이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그 에덴 동산에서 인생과 함께 한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왜 선악과를 만들었냐고 한다. 먼저 타락한 마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주의를 준 것이다.
② 그런데 인간의 불신앙과 욕심으로 인해 사단에게 속고, 하나님을 떠나, 그 에덴동산의 축복을 잃어버린 것이다.
고통과 고생이 시작되고, 마지막에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라는 저주도 시작되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저주가 무엇이었는가?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창3:17-18). 죽도록 고생했는데, 가시덤불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인생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이 고통이고, 고생이고, 늘 가시에 찔리고 빈손 인생이다.
2) 더 하나님이 탄식하는 것은 이 인생의 불행과 저주를 사단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저주 속에 빠진 인생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거짓 답을 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를 그렇게 속였고(창3:5), 지금도 계속 속이고 인생을 도적질하고 있는 것이다(요10:10)
② 그러면서 사단은 완전히 세상을 장악한 것이다(요14:30).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엡6:12)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를 싹 장악한 것이다. 성경에 7개의 강대국들이 등장한다. 세계를 지배하면서 계속 영적 문제를 만들어냈다.
③ 특히 흑암의 흐름이 경제를 장악한 것이다. 타락 경제, 우상 경제, 흑암 경제로 흐름을 바꾸어 버렸다.
세상의 돈들이 다 이 흐름으로 간다. 지금은 4차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컨트롤하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숨은 영적인 힘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그 시작이 노아가 살던 네피림 시대였다(4-5절)
사람들이 고통과 저주 속에 있으면서 이 영적 흐름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탄식이다.
- 시대마다 이 일이 계속되고 있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택하여 답을 주신다.
흑암이 발악하고 세상이 타락해서 문제가 계속되는 것 같지만 답을 가진 우리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단의 역사를 깨고 저주의 땅을 살릴 권세를 주신 것이다.
① 신33:29에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두가지 의미가 있다.
이미 우리는 사단의 머리를 밟으신 그리스도(창3:15)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참된 축복). 사단이 세상의 높은 곳을 장악해도 우리는 그들의 높은 곳을 밟고 거기에 묶인 자들을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참된 성공)
② 내가 가진 영적인 권세와 능력을 알고, 사단이 장악한 저주의 땅을 살리는 도전을 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과 대기업과 지성인들이 못한다. 그들은 영적인 사실을 모른다. 우리만 할 수 있다. 그것이 기회다.
요셉이 이 영적인 사실을 알고 누릴 때 노예로 살면서도 보디발의 집, 애굽 왕궁, 전 세계를 살린 것이다.
2)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정확한 흐름(시간표)을 알고 거기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이다.
① 정확한 시간표에 구원 받았고, 정확한 시간표에 나를 인도해서, 그 자리에 증인으로 쓰시겠다는 것이다.
지금 혹시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명히 치유하고, 증인으로 세우는 시간표가 있다.
② 그 타락한 시대에 정확한 시간표를 따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가정을 부르신 것이다. 그것이 은혜이다(8절)
일단 노아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믿음과 헌신의 결단을 했을 때 전 가족(후대)이 같이 쓰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한 가정에 하나님의 흐름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③ 그 노아와 가족들을 사용해서 방주를 짓게 하신 것이다.
노아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밖에 없는 정확한 포인트를 잡은 것이다.
진짜 축복받는 사람은 정확한 시간표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말없이 헌신한다.
3)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과 동행하는 자에게 미래를 보게 하시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신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응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를 보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너 자신을 위해 방주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래를 준비시킨 것이다.
사단은 자꾸 현실만 보게 만든다. 거기서 좌절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고, 영적 문제에 걸린다.
① 방주를 통해서 먼저는 노아가 “오실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것이다.
아무리 타락하고 실패했어도 방주 안에만 들어가면 산다. 그 방주가 곧 “그리스도의 언약”이다.
방주(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순간 저주와 심판이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미래, 영원히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다. 반드시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 언약을 놓치지 마라는 것이다.
② 홍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고 망하지만 노아는 그때 확실하게 후대를 살리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조롱과 핍박도 받고, 경제 어려움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 살 릴 언약을 붙잡고 헌신하는 전도자가 누릴 축복은 분명히 따로 있다. 백배의 축복이다(막10:29-30).
그래서 당장 어렵다고 편한 길을 가지 말고, 묵묵히 언약 잡은 자의 길을 걸어가라.
결론-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노아처럼 부르신 것이다. 저주 가득한 이 땅에서 반드시 증거를 얻을 것이기에 그릇 준비하라. 문제를 문제로 보지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짜 응답과 축복을 받을 기회다. 24시 영적 흐름 놓치지 말라. 작은 헌신을 해도 하나님이 준비한 미래를 생각하며 하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탄식을 아는 자(창6:1-10) 4/29/2018 April 29, 2018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성령의 역사 누림(행2:42-47) 4/22/2018
부활 이후 주님이 하신 세번째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면서 약속하신 것을 성령을 통해 이루신 것이다. 절대로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시겠다고 했다(요14:16-18). 그래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도우시고 세상 살릴 자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 중에 축복이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열매가 나오는 것도 축복이다.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는 것도 축복이다. 그러나 진짜 축복은 내 기준과 수준을 넘어 내 인생 속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 내가 살고, 교회가 살고, 후대가 살고, 세상 살리는 일이 계속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전체는 그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다.
- 어떤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냐?
1) 제자들 자신들 안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이다.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실패한 사람들이었냐? 3년을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다녀놓고도 예수님이 고난을 받을 때는 다 도망갔다. 현실 앞에서 영적 문제에 당한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① 그들에게 불과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한 것이다(2-3절) 불은 태우는 것이다. 바람은 소멸시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까 그 상처, 거기서 오는 염려, 낙심, 두려움, 절망,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구원 받아놓고도 오래된 상처, 습관, 체질 남아있다. 그것이 자꾸 영적 문제로 나온다. 성령이 치유하셔야 한다.
② 성령의 역사로 나의 내면이 치유되면서 복음 전하는 입이 열리기를 시작했다(4절).
그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외국어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는 전도할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기고, 그 입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③ 그 결과로 15개국에서 온 다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한다(9-11절)
전에는 그냥 보던 사람들인데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까 그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열린 것이다.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설명해주었는데, 15개국의 다민족 살리는 선교의 문이 열린 것이다.
④ 이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시작한 것이다(16-21절).
우리가 지금도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그것을 언약으로 붙잡는 이유가 그것이다(살전2:13)
말씀이 성취되고, 말씀을 붙잡은대로 성령의 역사가 내 삶 속에 일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3천 제자이다(41절). 그들이 모여 계속 말씀 잡고 기도하는데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누 려야 할 참된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2) 본문에 적어도 다섯가지 축복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을 본다(42-47절).
① 성도들이 모여 말씀 붙잡고 말씀 포럼하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하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포럼 시스템이다. ② 핍박 속에서 경제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도울 정도로 경제 축복도 회복되는 경제 시스템이다.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선교사, 목회자를 지원하고, 후대를 지원할 정도로 경제 축복을 받은 것이다.
③ 각자의 집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지교회 시스템으로 세워진다.
초대교회는 성전이 따로 필요 없었고, 모든 집이 미션 홈이고, 교회이고, 후대 세우는 RUTC 였던 것이다.
④ 거기에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모이는 전도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구원받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⑤ 그들은 결국 로마와 세계를 살리는 제자 시스템으로 세워지게 된다. 연약하기 짝이 없던 그들이 세상을 살리는 전도 제자로 세워졌다. 이것이 마가다락방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축복을 계속 누리는 것이 다락방 운동이다.
- 그렇다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이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누린 것인가?
1) 행1:4에 절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은 단순히 지역과 장소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시는 영이 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언약이 각인 뿌리 체질되도록 그 언약에 집중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문제를 끝내셨다(요19:30). 어떤 언약을 잡아야 하는가?
해방의 언약이다(롬8:1-2). 무엇에도 묶여 살 인생 아니다. 상처에도 붙잡히지 마라. 승리의 언약이다(롬16:20). 그리스도의 권세 붙잡고 조금만 영적 싸움하면 내 인생을 속이는 사단은 무너지게 되어있다(눅10:19).
임마누엘의 언약이다(마1:21-23). 어떤 경우도 혼자 아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고 했다. 증인의 언약이다. (행1:8) 성령의 능력으로 반드시 모든 것이 증거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계속 성령충만 누리고 있으면 된다. 마지막이 세계복음화의 언약이다(마28:18-20).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모든 것을 축복하신다는 것이다. .
② 사단이 어느 정도 이 언약을 놓치게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을 설명한 것이 네 종류 밭의 비유이다(막4:1-20)
여기서 네 종류의 밭은 우리의 마음이고, 그 위에 뿌려지는 씨는 말씀이라고 했다. 그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자는 마귀라고 했다. 우리가 계속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2) 이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갈 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① 반드시 나의 기도를 찾아내야 한다.
특히 지난 주 메시지처럼 내 마음의 묵상과 입술의 말이 기도가 되도록 만들라. 마음에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이 그대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자꾸 감사를 찾아내고,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의 고백을 하라(골4:2).
②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기도를 지속하지 못하게 한다. 세상 일에 바뻐서 기도할 틈도 없을 수 있다.
문제 앞에서 낙심해서 기도를 중단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다가 빨리 안 되니까 기도를 중단한다. 기도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누림이고, 그 분의 언약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그 축복을 누리는데, 어느날 성령의 역사로 문제도 사라지고 축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제자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 10일을 집중했는데, 그 역사가 일어났다. 이 참된 기도 집중의 축복을 체험해보라.
3)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oneness)가 되고자 할 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다.
①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모습이다(엡4:4-6).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축복이다.
그래서 마가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말씀을 포럼하고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성경의 모든 역사들이 그랬다(피언약을 붙잡고 하나 될 때 출애굽, 요단강과 여리고가 무너질 때, 미스바에서)
② 사단은 이 축복을 막기 위해 모든 관계(가족 관계, 교우관계, 친구 관계) 갈라내는 것이다. 이제는 속지마라.
결론-우리 인생에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축복”을 누려야 한다. 언약 잡은 믿음 회복하고, 참된 기도 회복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축복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평생에 성령의 역사가 계속 되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성령의 역사 누림(행2:42-47) 4/22/2018 April 22, 2018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하나님의 나라 집중(행1:3-8) 4/15/2018
부활 이후 주님이 하신 일 두 번째, 우리가 계속 체험하고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나누겠다.
얼마나 중요하면 3절에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40일을 집중해서 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했다고 했다.
지금 세상 나라에 사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왜 중요하냐? 적어도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땅에서 승리하는 비밀이다. 우리가 구원받고 당장 천국가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 땅에 살아야 한다. 문제, 고통, 흑암의 역사가 계속 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배경과 능력을 누리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둘째는 세상 살리는 비밀이다. 하나님 나라의 배경과 능력을 누리면서 하나님 나라에 함께 가야 할 택한 백성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살리고, 치유하고, 세상 살릴 제자로 세우고 오라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다.
셋째는 미래를 누리는 비밀이다.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가기 위해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우리의 미래, 그 날까지 계속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성령으로 이끄신다는 것이다.
-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기 전에 참고할 것이 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처음 하신 일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완전한 사랑, 절대적인 사 랑)을 깨닫고 체험하는 일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치유다. 지난 주에 생각한 말씀이다.
오늘 말씀은 그 제자들이 치유 받으면서 누려야 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다. 능력(힘)이 있어야 승리하고, 세상 살리고, 미래가 보이고 확신이 온다. 다음 주는 성령의 역사, 제자가 누려야 할 참된 축복의 비밀이다.
2) 문제는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도 깊이 체험하지 못한 자가 하나님의 능력을 먼저 체험하고, 축복을 체험한다면 그것은 가짜다. 더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끝이 이상해진다(이단은 ‘끝이 다르다’는 말)
① 제자들이 잠시 마귀에게 속아 실패를 했어도 다시 회복하고, 주를 위해 생명을 걸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문제, 아픔, 실패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 깊은 사랑, 완전한 사랑을 체험한 것이다. 그 뒤에 체험한 능력, 성령의 역사, 다 자기 것이 아니다. 끝까지 지속하며, 세상 살리다 간 것이다.
② 반대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 따라 다니다 능력도 체험하고, 성령의 역사도 나타나는데, 나중에는 다 도망갔다. 문제가 해결되고, 역사가 일어나고, 그런 것부터 기대하지 마라. 나중에는 다 도망가고, 더 실패한다.
- 그러면 예수님이 40일간 집중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1) 하나님이 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계획과 능력으로 직접 다스리시는 상태이다. 눅17:21에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고 네 안에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사랑과 계획과 능력으로 나를 다 스리고 있는 상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성령이 다스리시는 것이다.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떤 문제도 그 사랑 을 깨고, 그 계획을 가로막고, 그 능력을 이길 수가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살아보라는 것이다.
왜 인생이 어렵냐? 실패하냐? 상처와 한계와 욕심 가득한 내가 나를 다스리고, 마귀가 나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2)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나타나는 상태 세가지이다.
① 나의 내면 속에 나타나는 능력이다(롬14:17). 먹고 마시는 육신의 것, 세상의 것에 잡혀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없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상관없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숨겨진 축 복이 깨달아지고,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 주시는 기쁨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거 체험하지 못하면 사는 것이 지옥(하나님 나라의 반대)이 된다. 목회는 더하다. 고통과 인내일 뿐이다.
② 나의 입의 말에 나타나는 능력이다(고전4:20)
다윗이 그 고백을 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합니다”(시19:14)
사무엘이 자랄 때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니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삼상3:18)
가정에서 내가 하는 말이, 직장에서 내가 하는 말이, 교회에서 내가 하는 말이 이렇게 되면 끝나는 것이다.
내 입의 말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성취시키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다.
③ 내가 있는 현장에 흑암 세력들이 무너지는 능력이다(마12:28)
절대로 그냥 일어나는 문제들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있다(요14:30, 엡6:12, 요8:44)
처음부터 영적인 세계에서 “흑암, 혼돈, 공허”를 만든 타락한 영들이다(창1:2)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고, 내 안에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흑암 세력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 하는 일은 아무리 보잘 것 없이 보여도 하나님이 쓰시는 세계복음화의 문이 되고(계3:8), 증거가 되는 것이다(행1:8).
3)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누리는가?
분명한 것은 구원 받은 우리 안에는 우리를 다스리고 인도하고 역사하기 위해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전3:16)
① 우리가 말씀 붙잡을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겔37장에 마른 뼈들에게 말씀이 들어갈 때 생기가 들어가고 군대로 일어났다고 했다. 살전2:13에 하나님의 말 씀을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믿을 때에 역사한다고 했다. 요15:7에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에 구하는 모든 것 을 응답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성령이 역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의미이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훈련 되어야 한다(각인, 뿌리, 체질을 바꾸는 시작과 끝)
특히 내 안에 복음의 말씀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다. ② 복음의 말씀을 붙잡고, 내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도록 기도하라.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 받았다(롬8:1-2)-나를 축복하는 제사장이시다.
분명히 우리는 승리자의 축복을 누릴 사람이다(요일3:8, 롬16:20)-사단의 머리를 박살 낸 나의 왕이시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는다고 했다(요14:16-18)-나의 길 되신 선지자이시다.
모든 상처, 불평, 원망의 생각과 말을 중단하도록 기도하라. 모든 불신앙, 부정적인 말을 버리라(벧전3:10).
그대신 모든 것이 감사로, 믿음으로 바꾸어지도록 기도하라(빌4:16-17).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③ 나의 현장에서 나의 평생에 이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미션,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도록 기도하라(마6:33)
“하나님, 내 아픔도, 눈물도 전부 간증이 되어 사람 살리다 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다 가게 하옵소서”
전도자의 내일과 미래, 하나님이 완벽하게 책임지신다(막10:29-30). 그러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결론-매일, 모든 장소, 모든 문제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집중해보라. 그 분이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리셔서 거기서 승리하고,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이 준비한 완전한 미래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하나님의 나라 집중(행1:3-8) 4/15/2018 April 15, 2018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8) 4/8/2018
부활하신 주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있다. 그 분께서 세상을 살리기 위해 택하신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조용히 그 제자들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 같으면 부활하시고 온 세상에 보란 듯이 알리는 일을 했을 것이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은 교권주의자들, 로마의 권세자들 앞에서 부활절 특별 행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주님은 조용히 제자들을 찾아 가셨다.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이 찾아간 제자들은 그냥 제자들이 아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을 때 무서워서, 절망해서 다 도망간 사람들이다. 특히 베드로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보는 앞에서 자기는 그 분을 모른다고 부인, 저주, 맹세까지 했다. 그렇게 해놓고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제자들이 옛날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으러 간다. 3절에 보면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은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이 시대 남은 자 렘넌트요, 세상 살릴 전도자로 쓰임 받을 자로 부름 받은 것을 알지만 막상 현실과 문제 앞에서는 다른 삶을 산다. 때로는 불안, 염려, 낙심, 원망 속에 살고, 심해지면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보려고 애쓴다. 애를 쓰는데, 되는 것은 없고 거의 불신자 수준으로 사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신 것이다.
주님은 어떻게 이들을 치유하시는가? 결국 이들이 마가 다락방의 주역이 되고,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로마를 비롯해서 전 세계를 살리는 참 제자로 쓰임 받게 된다. 오늘 그 축복이 내게도 새로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이다.
1) 정말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사람은 외롭지도 않고, 어떤 경우도 포기하지 않는다.
① 어릴 때는 부모를 통해서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내가 안전하다는 것(Security)과 내가 중요하다는 자기 존중감 이(self-significance)이 자리를 잡는다. 성장해서는 다른 사람들(친구, 배우자등)을 통해 이것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창3장에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각자가 상처투성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기준, 자기 욕심으로 산다. 결국 인간은 서로 상처를 주다가 영적 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다(사61:1)
어떻게 치유하시는가?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이셨다(롬5:8, 요일4:10)
그 십자가의 피로 나는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이다(골1:13, 엡1:3-5)
③ 구원 받아 놓고도 불신앙에 빠지고, 갈등이 오고, 사단에게 속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러 가지 환경, 현실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불신자 상태로 오래 살고, 복음 없는 종교 생활에 오래 빠져 있었 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들어가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못 깨닫고 산 것이다.
2) 예수님이 부활해서 이 실패하고 무너진 제자들을 또 찾아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임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이다(빌1:6)
밤새 빈 그물을 던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봐라” 하신다.
6절에 그 말씀을 따라 했을 때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② 아무리 절망의 시간이라도 우리가 말씀 붙잡고, 믿음 회복하면 반드시 나를 사랑하는 그 분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매일 말씀 붙잡고, 거기서 기도 제목을 찾고, 말씀 따라 가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요15:7).
-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을 반복해 질문을 하신다.
여기 “이 사람들”이 누구를 의미할까? 그리고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1) 이제는 세상의 것 잠시 내려놓고 그리스도 사랑의 깊이, 높이, 넓이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엡3:18-19)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며 손을 내미시는 그 사랑을 이제는 내가 나의 결단과 신앙 고백 속에 붙잡는 것이다.
그때에 나의 숨은 상처들이 치유된다. 그 숨은 상처를 건드리며 나를 속여 왔던 흑암 세력도 그때 무너진다.
그 분의 사랑과 능력으로 채워지면 흑암 세력이 역사할 공간이 없다. 그것이 성령충만이다(엡5:18).
2)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반복해서 고백하게 만든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전도자의 삶 21가지 집중 포인트이 뭐냐? 21가지를 줄이면 7가지이고, 그것을 하나로 줄이면 이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① 갈보리의 사랑에 집중하고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② 내 생각과 감정, 무의식, 잠재 의식에까지 각인 뿌리 체질이 되게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③ 내가 가진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 분만이 나의 오직이 되면 반드시 유일성, 재창조의 능력 나타난다.
④ 이제는 세상의 욕심과 즐거움 좀 내려놓고 주님께 내 마음이 일심, 전심, 지속이 되게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⑤ 평상시에, 어려울수록, 영원까지 바라보며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24시, 25시, 영원이다.
⑥ 내가 해야 할 당연한 것부터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축복으로 바뀐다.
⑦ 이 그리스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세상 살리는 것이 나의 천명, 소명, 사명이다.
어려운가? 해결되지 않는 영적 문제가 있는가? 나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으로 깊이 들어가고 감사해보라.
-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집중하고, 그것을 체험할 때 깨달아지는 것이 미션이다. “가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나중에는 생명도 걸게 된다(18절). 훗날 제자들은 다 복음 때문에 순교하는 인생을 살다 갔다.
미션은 주님을 더 사랑하는 방법이다(“구주를 생각만 해도”의 작시자 버나드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인간은 받기만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줌으로서 받은 것이 커지고, 더 행복해지는 존재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가 가서 먹여야 할 “어린 양”들은 누구일까?
1) 운명, 저주, 흑암에 묶여 고통을 당하는 불신자들이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구원하실 “어린 양”들이 있다.
그들을 찾아내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능력이 나타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나의 전도와 선교)
2)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 여전히 상처 속에 헤메는 어린 양들이 있다.
마25:40에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다(나의 치유 사역 미션).
3)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렘넌트들이 그 속에 있다.
기도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고, 그 기도와 헌신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나의 렘넌트 미션)
결론-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길 원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질문 속에 담긴 치유의 언약을 붙잡고, 참된 치유과 새로운 축복이 시작되기를 축복한다
제1,2,3 RUTC 시대 : 부활이후-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8) 4/8/2018 April 8,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축복 속에 있는 나(고전15:50-58) 4/1/2018
그리스도가 인생의 모든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부활절이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절대 축복 속에 있는 나”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 축복을 회복시키고, 계속 누리게 하는 능력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왜 “회복”(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쓰는가?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창조되었고, 그 축복을 누리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것이 창1:26-28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창1:26),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으로 창조하셨다(창1:27),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고 했다(창1:28)
하나님의 축복 속에 창조되고, 시작되었던 인생,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본능이 있다. 원래 “축복”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축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중국인들이 새해에 福이라는 글자를 써서 거꾸로 거는 이유)
이 하나님의 축복을 최고로 누린 상태가 성경의 언제인가? 창2장의 에덴 동산이다. 이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축복을 잃어버린 시간이 언제인가? 그것이 창3장의 타락이다. 창3장,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사건이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인간이 마귀에게 속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불순종하는 죄에 빠진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 무너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뭘 잃어버리게 되는가? 그 분께로 오는 축복이다.
원래 히브리어의 “축복”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다. 그 분을 경배한다”는 뜻이다. 그때 주시는 축복이다 이 단어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아는가? 영어의 "Blessing"의 어원이 “With Blood"라는 단어가 합쳐서 나온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 그 아들의 피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죄의 저주, 사단에게 묶였던 저주, 영원한 지옥 저주가 끝난 것이다. 저주가 끝났다면 이제 회복해야 할 것이 뭔가? “하나님의 축복”이다(창12:2, 갈3:14).
본문 50절에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유업(기업, 축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시작된 우리가 누릴 세가지 축복을 놓치지 마라.
-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진 자의 축복이다(새 생명의 축복).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누릴 생명이 함께 한 것이다.
1)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영적 DNA)이 담겨진 것이다(요일5:11-12). 다른 DNA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것을 누릴 수 있는, 더 나아가서는 하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DNA이다. 그래서 육의 생명만을 가지고, 육의 것에만 빠져 사는 불신자와는 근본이 다른 자가 된 것이다.
2) 어느날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도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육신도 부활해서 새로운 몸을 입는다(51-54절).
그 몸은 주님을 얼굴로 대하여 볼 수 있는 영적인 몸이다. 더 이상 병들고 썩을 몸이 아닌 거룩한 몸이다.
3) 우리는 세상 사는 날 동안에도 어떤 환경, 현실에서도 혼자 아니다. 그 분이 내 안에 함께 하신 것이다.
요14:16-18에 절대로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성령으로 함께 해서 도우시는 것이다(보혜사).
우리가 정말 이 사실을 누린다면 외롭고 두려울 이유도 없고, 내가 하는 모든 일, 현장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축복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모든 하는 일이 축복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늘 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비밀을 놓치고 산다. 그거 놓치지 말라고 3오늘, 정시기도, 무시기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삶을 누릴 축복이다(새 생활의 축복).
1) 우리에게 지나온 과거 속에, 불신자로 살면서, 많은 상처들이 있다. 거기서 나온 잘못된 습관, 체질들이 있다.
그것 때문에 자꾸 실패하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한 축복을 놓치게 하는 사단의 통로(엡4:27, 엡6:11)가 되기도 한다. 거기서 우울증, 공황장애, 각종 정신문제도 온다.
2) 이제는 스스로 포기하고 살지 마라.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망의 권세도 우리를 이길 수 없고, 어떤 율법도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할 수 없다(55-56절)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선언했다.
늘 새로 시작하는 뜻을 세우고 결단하라. 하나님 사람이 결단하면 성령이 도우신다. 성경에 뜻을 세우고 결단한 사람들의 승리의 증거들이 있다(창14장에 소돔왕의 재물을 거절한 아브라함의 결단, 창35장에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결단, 단1장에 우상의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다니엘의 결단, 에4장에 죽기를 각오한 에스더의 결단)
3) 다만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사40:30-31).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계속 힘을 주시고, 내가 그 힘을 키워 가기를(성숙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힘을 키 워가는 시간이 영적 성장, 영성 훈련이다. 계속 훈련하는 방법이 살전5:16-18이다.
힘을 얻을 때마다 내가 속는 부분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영적 싸움하라. 그러면서 힘이 더 자란다. 제대로 힘을 키우고 있으면 나중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내가 힘이 있는 것을 마귀가 먼저 아는 것이다(벧전5:8)
예배하는 이 시간, 최고의 힘을 얻는 시간으로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할 때 최고의 힘을 얻도록 기도하라.
-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는 자의 축복이다(새 헌신의 축복).
1) 온통 흑암이 가득한 땅이 되어 버렸다(사60:2). 우리가 힘이 없고, 우리가 사명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온 세상이, 교회 속에서까지 완전히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요14:30).
다 나름대로 잘한다고 하는데, 영적인 힘이 없으니 자기도 모르게 마귀 심부름하며 산다. 그렇게 살 수는 없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이다(행1:8)
내 아픔도, 문제도, 고통도, 실패도 나 같은 사람 살리고, 세상 살리는 증거로 주실 결론 놓치지 마라.
거기서 나 같은 사람 살리는 천명 깨달으라. 실패하는 베드로에게 이것을 주셨다(눅22:32)
3) 천명 깨닫고 하는 우리의 작은 헌신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58절)
헌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 나를 드리고 쓰임 받는 것이다. 축복 중에 축복이다.
롬16장의 일군들, 대단한 일만 한 것이 아니다(보호자, 동역자, 식주인, 수고하는 자, 친척, 사랑하는 자 등)
우리가 누릴 축복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다. 우리의 후대에게 전달해주고, 영원히 누릴 상급과 축복이다.
결론-주님의 부활은 나를 이미 새롭게 만든 것이다. 새 생명, 새 생활, 새 헌신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축복 속에 있는 나(고전15:50-58) 4/1/2018 April 1,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나(롬5:5-8) 3/25/201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고 죽으신 의미를 기념하는 고난 주간이다. 고난 주간에 꼭 붙잡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한가지 있다.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절대 사랑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십자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설명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요10:14-15에 “나는 선한 목자라”하시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다. 요15:13에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 이 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나를 확인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적어도 세가지 이유가 있다.
1) 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 나에 대한 자존감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든 정신문제(우울증, 공황장애, 성격장애, 분노와 폭력, 싸이코패스, 정신분열)의 시작 이 이것이다(자존감 결핍). 늘 외로웠고, 사랑 받지 못하고, 불공평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이다(애정 결핍)
어린 시절에 이 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뭔가 방황을 하고, 집착을 하고, 공격적 행동 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중독에도 빠진다. 구원 받고도 이 부분에 대한 답이 없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사단의 통로가 되어 상처를 받고, 불신앙에 빠지고, 영적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2) 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문제에서 승리할 수 있다.
본문 5절에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부음 바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롬8:35-35에 바울은 이렇게 외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
3) 내가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체험될 때 이 사랑을 세상 속에 나누고 전할 수 있는 참된 전도자로 제자로 쓰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 저주, 맹세까지 한 베드로를 치유하실 때도 이 질문을 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고, 주님이 베드로를 여전히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돌려서 확인시 켜 준 것이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전도자로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했던 바울도 같은 고백을 했다(고후5:14-15)
이 고난 주간에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역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어떻게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을까?
1)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다.
① 이번 고난 주간이 기회다. 평생 묵상하고 체험해야 할 것이지만 이번 주간만이라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렇게 고통당하면서까지 보여주신 나를 향한 그 사랑을 내 안에 담는 것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성경학자들은 그때 주님은 지옥의 고통까지 경험하셨고,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께도 버림받는 고통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당할 저주와 고통을 그 분이 당하신 것이다.
② 우리가 고난 주간에 성찬식을 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포도주와 떡을 대하면서 먼저 그 분이 피를 흘리고 몸을 찢어서 보여주신 우리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붙잡는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이 사랑하신 나, 그 분이 생명을 바쳐서 주신 나의 것, 그 주님의 사랑으로 가서 살려야 할 세상에 대한 천명을 붙잡는 것이다.
2) 3오늘을 통해서 평상시 매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다.
말씀에서 늘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이다. 이거 체험 안 되면 천명, 소명, 사명, 전부 의무가 되고, 부담이 되는 것이다.
기도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시간이다,
전도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3)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을 당할 때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다.
그리스도 안에서 문제는 다 끝난 것이다(요19:30). 그러면 왜 또 문제가 오는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
“잠시라도 나하고만 사랑을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 축복을 체험한 것이다
요셉이(창39:5), 다윗이(시62:2), 엘리야가(왕상19:12), 바울이(고후5:14-15), 그 하나님의 오직을 체험한다.
그 오직의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바꾸어 세상을 살리는 유일성의 축복, 재창조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 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나의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1)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부터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라.
① 가족끼리도 함부로 말하고, 상처 준 것들이 많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들은 그들에게 어두운 정서와 성 격을 만들고, 평생 사단의 통로가 되게 한다. 권위적이고, 율법적이고, 히스테리적이고, 무관심하고, 과잉보호했 던 모든 것들이 평생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② 잘못한 것이 깨달아지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라. 용서가 필요하면 용서를 구하라. 못다한 사랑의 표현 이제라 도 진심으로 많이 하라. 표현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편지로도 할 수 있고, 비언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2) 성도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도 주님은 죽어주신 것이다.
특히 교회 안의 렘넌트들, 다음 시대를 살릴 하나님의 미래요, 주님이 핏값주고 세우신 교회의 미래다.
바울이 주로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이유가 이것이다. 유대인들은 네 자식, 내 자식이 없다. 우리 모두의 자식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자녀들이다. 포로로 끌려가도 회당부터 세우고, 모든 것을 쏟은 것이다.
주일학교에 있는 렘넌트들, 유학생 렘넌트들, 다민족 렘넌트들, 방황하고 갈등하는 렘넌트들, 찾아서 도와주라.
3) 전도도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야 한다. 영혼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고전13장에 바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의 능이 있어 모든 비밀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 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은사 중에 은사이고, 여기서 참 전도가 나오는 것이다.
결론-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나, 이 고난 주간에 다시 붙잡고 모든 상처 치유 받고,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사랑 속에 있는 나(롬5:5-8) 3/25/2018 March 25, 2018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능력 속에 있는 나(출3:5-12) 3/18/2018
지난 주에 이어 하나님 사람이 반드시 세상에서 누려야 할 세가지, 하나님의 절대 계획, 절대 능력, 절대 축복 중에서 두번째 절대 능력에 관해 나누겠다. 하나님의 절대 능력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첫째는 창1:27-28의 회복을 위해서이다. 처음부터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하나님이 주신 능력(영성, 창조성, 인성)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가 세상과 죄에 종노릇하고 영적 거지같이 살기를 원하신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축복을 회복시켜주려고 그리스도를 약속했는데, 이스라엘이 못 깨달으니까 계속 노예, 포로, 속국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성도들이 지금 세상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세상 모든 인생이 이 본래의 축복을 회복하도록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먼저 구원받은 우리를 쓰기를 원하신 것이다(전도, 선교).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뭘 보기를 원하냐? 우리를 통해 하나님 능력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행1:8).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흑암과 저주와 운명에 묶인 사람들을 치유하고 살리겠는가?
겔37장에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마른 뼈들의 환상을 보여주며 “이 뼈들이 살겠냐?”고 물으실 때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다. 맞는 답이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 절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본문은 모세가 그 절대 능력을 깨닫는 시간이다. 태어날 때 모세는 불행한 아이였다, 민족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강가에 버려졌다. 이 버려진 아이가 애굽 공주의 눈에 띄어 애굽의 왕자로 컸다. 최고의 엘리뜨로 성장한 것이다. 많은 엘리뜨 속에 이런 숨겨진 불행과 숨겨진 상처들이 있다.
행7:23에 보면 어느날 이 모세가 자기 민족을 돌볼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 계획도 깨닫고, 절대 사명도 깨달았다. 한가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절대 능력이었다. 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찾아와서 이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 “내가 내려왔다”고 했다(복음의 능력).
만가지를 가지고 있어도 이 한가지를 깨닫지 못하면 세상을 덮은 운명, 저주, 사단의 세력 못 이기고, 단 한 사람도 살려낼 수 없다. 만가지가 없어도 이 한가지를 깨닫고 체험하면 모든 것 다할 수 있고, 세상 살릴 수 있다.
- 그 능력을 한마디로 하나님의 절대 능력, 다른 말로 영적 써밋의 축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해 구원받은 순간 크게 세가지의 축복이 시작된다. 그것이 절대 능력이다.
1)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다(요14:6)
그 생명 안에 하나님의 DNA가 심겨진 것이다. 앞에서 말씀했던 창1:27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거기서 하나님의 창조적능력이 나타난다. 그들을 “거룩한 씨”라고 했다(사6:13)
어린 시절부터 이것이 각인 되어야 한다. “너는 근본이 다른 자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다”
2) 이것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요1:12에 우리의 신분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반드시 권세에는 능력이 같이 따라 오는 것이다. 하나님 자녀의 신분은 곧 우리가 누릴 축복이요 능력이다.
3) 더 나아가서 벧전2:9에는 우리를 향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세 권세(왕권, 제사장권, 선지자권)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가서 모든 족속 살리라는 것이다(마28:18)
왕권, 흑암 권세를 싸워 승리하는 것이다(눅10:19, 롬16:20). 제사장권,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다(특히 자식)
선지자권, 하나님 만나는 길을 말해주고, 그들이 어떤 하나님의 축복된 미래를 살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 권세에서 나오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세에게 이것을 체험하라는 것이다(12절). 믿고 이 권세를 사용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마16:19)
(때로는 그 순간, 때로는 시간을 두고, 때로는 내가 죽고 난 뒤 후대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다)
- 이 하나님의 절대 능력, 영적 써밋의 축복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바쁠 때일수록, 중요한 일을 할 때 일수록, 현장에서 어떤 일 만날지 모르니 이 축복부터 누려야 한다.
1) 이것을 매일 누려야 하기 때문에 “3오늘”이라고 한다(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이 세가지가 왜 중요한가?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 창조의 역사를 이룬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하나님 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요15:7).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히4:12).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 를 응답하시며 세상을 이끌고 계신다(계8:4).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살리는 전도자 중심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계신다(마24:14).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약속하셨고, 증인으로 설 수 밖에 없는 증거를 주신다는 것이다(행1:8)
3오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그 모든 일과 인생 속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2) 이 평상시 축복을 누리면서 모든 문제 사건에서 반드시 두가지 영적 사실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당하는 갈등, 문제, 고통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있다. 절대 그냥 오는 것 아니다(엡6:11-12, 벧전5:8-9)
그러나 그 사단은 절대 성령의 역사를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약할수록, 중요한 일을 할 때 일수록, 성령충만을 구하고(엡5:18), 그리스도의 권세로 흑암을 꺽으라는 것이다. 반드시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 이다. 직장에서도, 교회에서, 가정에서, 자녀를 위해서도 이 영적 기도로 모두를 살려야 한다.
- 이제 그 능력으로 우리의 생애 동안 세상 살리는 자로 서는 것이다.
1) 내가 문제와 갈등 속에서 힘들고 아펐던 만큼 나 같은 사람을 체휼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을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empthy)하시는 대제사장”이라고 했다(히4:15). 참 지도자, 참 전도자가 가져야 할 능력이다(빌2:7-8). 자기를 비워 스스로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이다. 모세가 겪었던 40년의 아픔의 의미이다.
7절에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다”고 했다. 왜 지금 이 말을 모세에게 하는가?
모세가 자기 아픔의 40년으로 이스라엘의 400년 아픔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시간표였던 것이다.
2) 무엇인가를 하고도 내가 한 것이 아님을 고백할 수 있는 능력이다(고전15:10). 겸손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미련하고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이유도 이것이다(고전1:26-31). 우리에게 아픔을 허락하신 것도 자 랑할 것이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절대 능력 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간이다(고후12:9).
3) 할 수 있으면 더 양보하고 낮아지라. 하나님은 양보할수록 더 채우시고, 낮출수록 더 높이실 것이다(약4:6)
하나님 절대 능력을 체험하는 자만 아는 비밀이다. 이것이 없으면 누군가를 치유하고 살리는 것은 불가능이다.
결론-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 능력을 가진 자다. 모든 문제 사건에서, 평상시에 이 하나님의 절대 능력, 영적 써밋의 축복을 누리고, 체험하고, 세상 살리는 제자로 서기를 축원한다.
제1,2,3 RUTC 시대 - 하나님의 절대 능력 속에 있는 나(출3:5-12) 3/18/2018 March 1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