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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0) -모세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출3:1-5) 5/21/2017
모세의 성장 과정과 인생을 보면 너무 드라마틱하다. 렘넌트들이 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어도 흥행이 된다.
태어날 때 모세는 강가에 버려진 인생이었다. 목욕하던 애굽 공주의 눈에 띄어 공주의 양자가 되어 최고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40세에 완전히 무너진다. 한순간에 살인자,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서 양을 치며 평생을 산다.
그의 나이 80세, 모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온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호렙산 체험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던 그 시간에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이다. 나이 80세로 모세는 끝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시작이었던 것이다.
우리 평생에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이 이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고, 거기서 참된 영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세가 어떤 체험을 했는가? 양을 이끌고 다니다가 호렙산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이상한 광경을 본 것이다. 가시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를 않았다. 그것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가는데, 거기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모세를 부르면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 산이 어떤 곳인데 거룩한 곳이라고 했을까? 사실은 늘 다니던 산이었다. 첫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어디서 만났는지 중요하다. 그 곳이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다. 둘째는 여기서 자기 같은 사람들을 살리고, 한 시대를 살리라는 사명을 깨닫게 된다. 그 축복 깨달은 자리가 나의 호렙산이다. 셋째는 훗날에 이스라엘이 여기서 율법을 받고, 나라가 세워진다. 출19:5-6에 하나님이 이 호렙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열국 중에서 나의 소유가 되겠고, 모든 민족을 살리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에 어떤 아픔, 실패, 어려움 속에 있었든지 상관없다. 나 한 사람만이라도 그리스도를 제대로 깨닫고 체험한다면 나 사는 정도 아니다. 한 가문, 한 국가, 한 시대를 살리는 것이다. 이들을 전도자, 제자라고 한다.
- 모세가 어떻게 호렙산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했을까? 중요한 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1) 하나님이 이 모세를 찾아오신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신 것이다.
“내가 내려와서”(8절), 이것을 복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이 찾아오신 것이다.
①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하나님이 누군지 모른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된 것이다(엡2:1). 그러면서 악하게 산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길이 되어주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요14:6). 선지자적 권세라고 한다.
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다.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했다(고전3:16)
② 하나님 없는 인생, 내 마음, 계획, 욕심대로 살았다. 나도 모르는 죄와 저주를 쌓고 산 것이다. 그 죄를 용서하 시고, 그 저주에서 빠져 나오라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롬8:1-2). 제사장적 권세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느날 내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날이 깨달아져야 한다(찬405장을 지은 노예 상인 Newton)
③ 착하게 열심히만 살면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모세처럼 영적 문제에 당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다고 싸움을 말리다가 살인이 된 것이다. 사단이 역사하면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서 빠져 나오라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면서 사단의 머리를 짓밟은 것이다(창3:15, 요일3:8). 왕의 권세라고 한다.
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체험하고, 세상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천명이다.
2) 내가 깨닫고 체험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같은 사람 살리라고 나를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9절). 이것 깨닫는 것이 소명이다.
①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내 주변에 있는 나 같은 사람 살리기 위해 나를 불렀고, 나를 쓰시겠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 중에 나를 먼저 불러 구원하신 이유다. 문제와 고통과 실패를 허락하신 이유도 이것이다.
② “이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고통을 보았다”고 했다(9절). 왜 이제인가? 그것이 모세가 준비되는 시간표이다. 모세가 40년간의 자기 아픔을 통과하면서 이제 400년간의 이스라엘의 아픔을 보는 눈이 열린 것이다.
가서 너 같은 사람 살리라는 것이다. 부끄러운 실패를 했어도 이 소명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축복이 된다.
못 깨달으면 계속 실패하고, 악한 일에 쓰임 받다가 끝난다. 구원은 받으나 부끄러운 구원처럼 된다(고전3:15) 3)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무슨 힘으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거 깨닫는 것이 사명이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이것이 답이다. 내가 할 일도 보여주시고, 감당할 힘도 그 분이 주신다. ① 실패한 제자들에게 부활한 주님이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도 이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마28:18-20). 권세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간 것이다.
② 모세도 마찬가지다. 늙은 몸과 그 몸을 의지해야 할 지팡이 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으로 끝났다.
가는 곳마다 그 분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400년 운명과 저주 속에 있던 이스라엘이 해방 받은 것이다.
이것이 전도이다. 나를 통해 운명과 저주와 영적문제에 빠졌던 인생들이 해방 받고 살아나는 것이다.
- 우리가 지속적으로 체험하고, 해야 할 훈련이 있다.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실 것이다(영성 훈련)
1) 내가 만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누리는 훈련이다. 내 영성 회복을 위해 꼭 해야 한다(그것이 3오늘)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던 자”라고 했다. 야곱도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했다(창32:30).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우리를 계속 만나주신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 없다(계1:3). 필요하면 매일 한 구절씩 써보고, 암송해보라. 그때 내 각인도 바뀐다.
기도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시간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충만을 위해 기도하라. 쓴 뿌리도 바뀐다.
전도는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해야 하는 시간이다. 우리 힘으로 누구의 인생을 바꾸겠는가?
전도의 마음을 담고,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 계획하고 기도하기만 해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행1:8)
2) 사명을 위해 발걸음을 옮길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애굽왕을 만나라고 했다. 처음에 모세는 갈 수가 없었다. 자존심 상하고, 두 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간 것이다. 지팡이만 들고 갔는데, 거기 서 모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을 훈련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시고, 필요로 하는 일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다. 순종도 훈련이다(평상시에 나를 버리고 순종하는 훈련이 그래서 중요하다)
3)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도 오직 그리스도만 선포하는 훈련을 하라. 우리의 입의 말이 열매가 되고, 증거이다.
모세에게 애굽왕에게 “희생 제사”만 말하라고 했다. 한 때 같이 자란 애굽 왕인데,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쓸데없는 세상 얘기, 남 얘기, 육신 얘기에 쩌들어 있다. 성령을 근심케 하고 사단에게 틈을 주는 것이다(엡4:29-30). 반대로 성령을 기쁘게 하고,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는 영적 상태, 이것이 영성이다.
결론-모세처럼 늙어도 상관없고, 실패했어도 상관없다. 참된 영성을 회복하며 시대를 살리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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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20) -모세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출3:1-5) 5/21/2017 May 21,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9) -요셉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창41:38-43) 5/14/2017
요셉에 관한 많은 말씀을 들어왔다. 오늘은 요셉의 약점을 생각해보면서 그것을 영성이라는 축복과 연결해 보겠다.
요셉을 볼 때 “대단하다”,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보면 잘못 본 것이다. 그의 성장 과정을 보면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지만 “참 많이 모자르다”, 이런 느낌이 가는 사람이다.
일단 요셉은 어린 시절에 친 엄마를 잃었다.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이다. 적어도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아이들이 부모와의 애정 관계(Attachment)가 형성되지 않으면 평생 애정 결핍(외로움)을 느끼고 산다고 한다.
다행스럽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것이 또 틀린 사랑이었다(“편애”). 10명의 형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늦게 얻은 아들이고 친엄마가 없다고 해서 특별한 사랑을 한 것이다. 요셉만 채색옷을 입히고,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운 것이다. 이렇게 자라면 주로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격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고 한다.
창37:2에 보면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했다고 했다. 누가 내 허물을 자꾸 말하고 수군거리면 관계가 깨지고, 미워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꿈을 꾸고는 이것을 자랑 삼아 말할 정도였다. 형들이 더 미워했다고 했다.
결국 그 결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의 요셉의 인격이나 삶을 보면 “참 괜찮은 아이다”, “앞으로 큰 인물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요셉이 13년 뒤에 하나님의 절대축복 속에 이집트 제국의 왕으로부터 총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무슨 생각이 들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참 멋있고 위대하다”. 상처투성이의 그런 요셉도 이렇게 축복하고 쓰신다면 ”나도 가능하구나“, ”내 모자른 자식도 가능하구나“, 답이 나와야 한다.
- 주목할 것은 왕이 요셉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다. 요셉이 가졌던 지혜다. 이것이 요셉이 통해 보는 영성이다.
요셉이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 앞으로 나라에 일어날 문제에 대해 지혜로운 답을 준 것이다.
그 지혜를 들으면서 “이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자를 어떻게 얻겠냐?”고 했다. 불신자 왕조차 요셉의 지혜가 그의 공부나 인생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요셉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답이라고 했다(창41:16)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문제에 대한 답)를 주신다. 지식(이해력)과 명철(판단력)을 함께 주신다고 했다(잠2:6). 내 자신에게나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을 때 꼭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내 말 한마디와 내가 하는 작은 일도 지혜 가 있으면 나도 살리고, 남도 돕는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2) 그런데 그 지혜와 지식과 명철이 어디서 오냐? 골2:2-3에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세상을 사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위의 것이다.
문제와 사건 속에 숨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눈을 의미하는 것이다.
① 불신자든 신자든 영적인 문제가 오면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도 결정적인 순간에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실패의 길을 간다. 불신자가 성공하는 것 같다 마지막 순간에 무너지는 이유도 그것이다. 사단이 하는 짓이다.
②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해방 받았다(롬8:1-2)는 말은 엄청난 말이다. 이제는 나를 찾아야 한다.
더 이상 사단에 운명처럼 끌려 다니는 인생이 아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엡1:13),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이다. 성령이 우리와 동행하고(고전3:16), 성령이 인도하고(요14:16-18),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사람이다(행1:8)
요셉처럼 부족해서 노예로 팔려가는 것 같고, 억울하게 감옥 가는 것 같아도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위해 성령이 동행했고, 성령이 인도하셨고, 성령이 역사하는 삶을 산 것이다.
3) 엡1:17-19에 성도가 꼭 기도로 체험해야 할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침된 지혜요 영성 훈련의 기본 세가지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다(17절).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둘째는 그 분 안에서 성도가 누릴 축복의 풍성함을 아는 지혜다(18절). 하나님 자녀의 특권 7가지가 그것이다.
못 깨닫고 산다. 깨닫기는 했는데, 문제 오면 내 상처, 육신, 세상 기준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단에게 속는다.
셋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지혜다(19절).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무능력도 없고, 불가능도 없다(슥4:6).
나의 말 한마디, 작은 계획, 작은 일에도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혜 가진 자의 영성이다.
- 이 영성을 훈련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다.
1) 부모를 통해 시작된 영적 교육이다.
① 창37:2에 요셉이 문제가 시작되고 가정을 떠날 때 그의 나이가 17세라고 했다. 왜 이 때의 나이를 밝혔을까?
17세 이전에 요셉은 그의 부모(특히 아버지)를 통해 영성의 시작인 하나님을 알고, 언약을 배운 것이다.
② 그의 아버지 야곱도 많은 욕심과 상처 속에서 성장했던 사람이다. 그 속에서 평생 속이고 속는 인생을 살았다.
그 야곱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다. 창32장의 얍복강에서의 체험이다. 밤새 홀로 남아서 눈물로 기도 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지고, 이름이 바뀐다(이스라엘). 호12:4에 하나님이 거기서 야곱을 만나 주셨다고 했다.
부모와 교사들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후대를 위한 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③ 이런 야곱이 요셉을 위해 평생을 기도한 것이다. 남들이 다 끝났다고, 죽었다고 하는 그 시간에도 믿음을 가지 고 기도한 것이다(창45:28). 모든 렘넌트는 나에게 이 기도의 배경이 있다는 사실부터 감사해야 한다.
2) 요셉이 17세 이후에 세상으로 가서 체험한 영적 축복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으로 간 시간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어 세상을 향해 가는 시간과 같다.
수많은 문제와 억울한 일들, 가슴 아프고, 외로운 시간이 있을 수 있다. 문제 아니다. 언약이 성취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하나님이 “나의 오직”이 되는 시간이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① 요셉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창39:2, 3, 21). 당연한 것이다.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반드시 말씀과 기도 속에서 그 분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확인하라(3오늘).
②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요셉과 관계된 모든 것을 축복하셨고(창39:5),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했다(창39:23)
내가 축복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내가 하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이 진짜 축복을 받는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치유하고,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이다.
3) 하나님의 시간표이다(전3:11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고”). 하나님은 요셉도 정확하게 시간표대로 이끄셨다.
하나님이 시간표 속에서 꼭 하고자 하시는 일이 뭘까? 우리가 전도자로 세워지는 시간표이다(마24:14).
요셉이 노예로 있을 때는 보디발에게, 감옥에 있을 때는 간수에게, 본문은 왕에게 하나님을 말하는 시간표였다 모든 것을 전도로 풀어 보라. 거기에 내가 살릴 사람이 있고, 그때 세상 살릴 내 영성이 자란다.
결론-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모든 지혜의 영성이 모든 부모와 렘넌트들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9) -요셉의 영성과 세계복음화(창41:38-43) 5/14/2017 May 14,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8) -나의 영성회복과 세계복음화(행1:6-8) 5/7/2017
“나의 영성 회복과 세계복음화”이다. “영성”이란 말은 어려운 말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의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든 인간이 이 축복을 누리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창1:27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창조성)도 들어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영성이다. 창2:7에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흙으로 우리의 육신을 먼저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고 했다.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말을 신학적으로 다양하게 해석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 안에 당신의 영을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 이 영성이 왜 중요할까?
1) 그것이 모든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다. 인간을 흔히 만물의 영장(뛰어난 존재)라고 한다.
① 모든 동물에게도 나름대로 생존하는 지혜가 있고, 감정과 지혜도 있고, 심지어는 자식을 낳아 생명도 건다.
동물에게 딱 한가지가 없다. 영성이 없다. 그래서 동물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영원한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생각한다(전3:11) 그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뭐냐?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으로부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와 능력과 지혜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영성이다.
② 지금 이것을 찾아주겠다고 나온 것이 세상의 각종 종교 단체이고, 특히 뉴에이지 운동이다.
인간은 조금만 자기 내면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영원한 세계와 교통을 하면서 엄청난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명상 운동”, “기 운동” 같은 것이다. 엄청난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이들은 세 상을 바꿀만한 일들을 하고 있다(혁신). 지금 전 세계 엘리뜨들은 여기에 빠져 있다.
2)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영성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귀신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① 인간이 귀신의 능력을 받아서도 잠시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 감히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세상 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했다(마4:8-9). 사람들이 점술인을 찾아가고, 각종 종교에 헌신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② 문제는 고전10:20에 보면 그렇게 해서 얻는 헌신과 능력은 전부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당장에는 문제 를 해결하고, 성공하는 것 같지만 갈수록 그 개인과 가정, 가문 속에는 엄청난 실패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특히 불치병, 우울증, 정신문제, 귀신들림의 사건들이 심각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찾아오는 것이 자살이다.
3) 처음부터 사단은 인간의 참된 영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창3장, 6장, 11장 사건이다.
① 창3장 사건이 뭐냐?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그 자리에 앉아 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 뭐냐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나”이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상처와 한 계를 가지고 있다. 갈등, 다툼, 염려, 불안, 낙심, 절망, 여기서 오는 것이다. 그것이 마귀의 속임수였다(창3:5)
② 창6장 사건이 뭐냐? 영성을 잃어버린 채 육신의 기준만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역시 사단의 유혹이었다.
창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외모만을 보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이 네피림(“거인”) 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얼마나 인간이 타락을 했냐? 그래서 찾아온 것이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이다.
지금도 세상은 육신적으로는 편해졌는데,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악해지고 타락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육신에 잡히면 연약한 육신 때문에 늘 실패한다(마26:41). 영성은 그것도 능가한다(사40:31, 고후12:10).
③ 창11장 사건은 뭔가? 인간의 힘으로 최고의 탑을 쌓아서 거기에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이름을 놓자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성공을 위해 몸부림해서 최고의 자리에 갔는데, 어느날 바벨탑 무너지듯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 바벨탑이 사실은 귀신을 섬기는 자리였다. 시대마다 그 바벨탑 운동이 있었고, 이 시대에는 프리메이슨이다.
- 우리에게 참된 영성은 무엇일까? 오늘은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말씀만 생각하도록 하겠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된 영성을 회복하라고 그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이다(참 제사장, 참 왕, 참 선지자).
① 그 분이 먼저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와 실패와 운명을 해방시키신 것이다(롬8:1-2)
부활하면서 우리를 하나님 떠나서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에 빠져 실패하게 만드는 사단의 권세를 박살 낸 것이다(요일3:8).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서 그 분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신 것이다(요14:6) 이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할 때에 그 분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하신 것이다. 이것이 영성 회복의 시작이다.
② 내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신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시는가?
나를 성전으로 삼으시고(고전3:16), 내 길을 인도하며(요14:16-18), 내 삶에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이다(행1:8)
이미 성령은 내 안에 함께 하신 것이다. 그 분이 나를 다스리고, 그 분의 능력과 지혜와 힘으로 채워지는 시간 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만의 시간이고, 집중의 시간이고, 기도다. 하나님을 1:1로 확인하고 체험하는 시간이다.
2) 영성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누려야 할 최고의 축복이다.
① 그것은 나이도 상관없다. 어린 나이에도 상관없고, 늙은 나이에도 상관없다. 렘넌트 7명 중에 요셉, 다윗, 사무 엘 같은 사람은 어린 나이에 영성을 체험했고, 모세, 엘리사, 이사야, 바울은 나이가 들어서 체험한 사람들이다.
② 영성을 가진 사람은 작은 일을 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된다.
영성이 있다고 해서 꼭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일을 대단한 일로 만드는 것이다. 작은 자인 우리를 통해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룬다고 했다(사60;22). 한 알의 작은 밀알, 작은 겨자씨를 통해서 시대를 바꾸는 일도 하시고, 작은 자에게 한 그 일도 내게 하는 일이 된다고 했다(마25:45)
3) 참된 영성은 적어도 세가지가 바뀌는 것이다. 그때 내 현장에 나를 속이는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는 것이다.
① 내 생각의 기준(Standard)이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기준,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뜻의 기준으로 보니 뭐든지 문제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마26:39)
② 내 인생의 수준(Level)이 육신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의 수준(Level)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삶의 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된 순간 우리가 하늘 배경을 누리는 수준이 된 것이다.
③ 내 삶의 표준(Base)이 세상 중심에서 성령의 능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표준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왕따 안 당하고, 겨우 문제 해결이 나의 표준이다(6절). 세상에서의 내 모습 으로는 그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것이다(8절). 그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을 축복하시는 것이다.
결론-우리는 성령의 사람이다(엡1:13). 그 분이 주시는 참된 능력, 영성을 회복하고 참 증인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8) -나의 영성회복과 세계복음화(행1:6-8) 5/7/2017 May 7,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7) -나의 종말관과 세계복음화(계1:4-8) 4/30/2017
종말관은 모든 것의 끝에 대한 생각이다. 8절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을 때 환상 중에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은 영어 알파벳의 A와 Z처럼 헬라어의 시작과 끝 글자이다.
세상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창3장 이후 인생도 태어난 날이 있기 때문에 죽는 날도 있다. 세상도 창조된 날이 있었던 것과 같이 끝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작과 끝을 주장하는 분이 누구냐?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고,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실 분이라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로마 정부에 의해 최악의 고난과 핍박을 받던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문제와 고통의 답을 거기서 찾으라는 것이다. 적어도 세가지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영원히 해방시킨 축복부터 누리라는 것이다(5절)
이것이 왜 중요한가? 우리가 예수 믿고 해방 받았다는 말은 이전에는 뭔가에 묶여 있었다는 말이다.
1) 뭐에 묶여 있었던 것인가? 그것이 창3장에서 시작된 저주다.
첫 인생 아담으로 인해 모든 인생이 원죄의 저주, 사단의 저주, 영원한 저주(지옥)에 묶인 삶을 살게된 것이다. 지금은 문제가 없는가? 인생을 사는 것이 고통이다. 착하게 열심히 살면 되는가? 사단은 도적과 같다고 했기 때 문에 그것에 상관이 없다(요10:10). 지옥 같은 세상을 살다가 어느날 진짜 영원한 지옥으로 가야 한다.
2)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보내신 분이 그리스도다.
①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생명)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이다(5절하). 이제는 무엇도 나를 묶을 수 없다.
그래서 이제 실패, 저주, 운명, 지옥은 구원받은 성도와는 관계없는 단어가 된 것이다. 이제는 속지 마라.
② 그 정도 아니다. 다시 문제가 와도 그 모든 것은 증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5절 상에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셨다”라고 했다. 부활은 승리의 증거이다.
그리스도가 먼저 증인이 되셨고, 이제는 우리가 다시 그 증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고전15:55-58, 요일4:4)
- 그 승리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천명, 소명, 사명을 위해 쓰임받는 축복이다(6절)
하나님이 꼭 하고자 하시는 그 일에(천명), 그 시간에(소명), 그 장소에서(사명) 나를 증인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신 것이다.
1) “우리를 나라로 삼으셨다”는 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왕으로 계신다는 뜻이다.
①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한 시민이냐?” 중요하다. 내가 천국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 고 있지만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다. 하늘의 배경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천국 나라의 백성이다(눅17:21)
세상의 어떤 문제도,초대교회를 짓밟으려고 한 로마의 권세도 하나님 백성을 망하게 할 수 없었다(롬8:30-39)
역사를 통해 로마가 어떻게 초대교회를 핍박했는지 안다. 그 로마가 300년 만에 망하고 기독교 국가가 된다.
② 하늘 보좌의 권세와 능력, 우리가 계속 집중하고 누려야 하는 축복이 이것이다.
골3:1-4에 위에 것을 바라보라고 한 것이 그 말이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우리 생 명이 그 분 안에 숨겨져 있다. 그 분이 영광 중에 오시는 날 우리도 함께 할 것이다. 이 권세와 능력을 믿고 갈 때 내가 있는 곳에 사단의 권세가 깨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마12:28)
2)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말은 우리가 세상을 치유하고 세상을 살릴 자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자의 삶이다. 다 양보하고, 사람을 살리는 중심으로 살아보라. 누구를 봐도 비난하고, 원수로 삼지 말라, 악한 자도 본인이 아니다. 사단에 잡혀 있는 것이다. 사실은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어야 한다.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한다고 했다(시109:17). 원수라도 그들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온다고 했다(시35:13). 전도자가 누릴 축복이다.
- 마지막 누릴 축복이 뭐냐?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신다고 했다(7절). 세가지 종말의 축복을 붙잡으라.
1) 모든 문제의 끝(종말)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끝(결론)이 있다.
① 문제가 올 때 하나님의 올바른 결론을 붙잡고, 진짜 끝을 기다려야 한다.
틀린 결론을 잡고, 단순히 문제만 해결되기를 기다리니 낙심, 두려움, 원망, 절망이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②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광야 40년을 통과시키셨는가? 신8:16이 결론이다.
왜 욥에게 사단의 역사를 허락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겪게 하셨는가? 욥42:5, 10이 결론이다.
세상에서 온갖 문제를 다 당해도 이 하나님의 진짜 끝(결론)을 붙잡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2)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이 세상에서의 끝도 온다.
그러나 그 죽음도 우리에게는 끝이 아니다. 부활하여 다시는 눈물도, 고통도, 사망도 없는 시간을 맞을 것이라 고 했다. 그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것도 있다고 했다. 계22:12의 상급이다. 가장 귀한 상급이 무엇일까?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 지키고, 그 그리스도로 생명 살리고 간 전도자들과 그 동역자들이 누릴 상급이다(단12:3)
3) 어느날 세상의 끝도 온다. 끝없이 타락하는 세상, 끝이 와야 된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다(계20:16)
① 불신자가 죄가 많아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신자보다 더 인격적인 사람 많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지은 죄를 해결할 길을 열어주었는데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지은 죄 가지고 망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옥은 마귀와 그 따르는 귀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마25:41). 인생이 하나님 못 만나면 자기도 모 르게 마귀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마지막 때에 그 마귀는 성도와 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각종의 재난과 핍박으 로 고통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계시록의 예언이다. 불신자가 거기에 함께 하고 같이 가는 것이다(시1:1).
② 왜 전도가 중요하냐? 그 지옥 저주에 들어갈 인생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짜 소원이다(딤전2:4). 가서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더 이상 마귀 따라가지 마라고 말해 주라는 것이다. 복음 못 들은 사람은 억울해진다. 나중에 핑계도 댈 거라고 했다(롬1:20).
그래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후에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한 것이다(마24:14)
결론-우리는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오직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 것이다. 이 축복 붙잡고, 마지막 때에 승리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7) -나의 종말관과 세계복음화(계1:4-8) 4/30/2017 April 30,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6) -부활 이후, 천명 소명 사명(행1:1-8) 4/23/2017
지난 주간에 부활 주간을 지켰다. 부활 주간은 끝났지만 부활의 축복은 끝난 것이 아니다. 부활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이고, 영원한 시작이다. 정말 그리스도가 죽음의 저주를 이기시고, 그 능력으로 우리 가운에 함께 하신 것이 맞다면 낙심, 절망, 실패, 저주, 외로움, 이런 단어들은 이제 우리 단어가 아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치유하고, 바꾸고,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문제와 실패 속에서 이 축복의 증인으로 살다 가야 한다.
그 축복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세가지 단어가 있다. 천명, 소명, 사명이라는 단어다.
천명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이시고 부활하게 해야만 했던 이유다. 하나님이 꼭 하고자 했던 일이다. 소명은 그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사명은 내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이다. 지난 주에 실버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노인 학교”가 아니다.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늙어가면서 할 일도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성도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살던 내가 하나님 기준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결국 세 기준이 버려지게 되어 있다. 살아보니 내 기준대로 된 것이 없다. 육신은 결국 늙고 병들어간다. 세상은 속고 속이는 세상이다.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서 영적으로도 성숙해가고, 천국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천국 그냥 가는 것이 아니다. 준비 되어서 가야 한다(성화)
하나님은 천국 가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고, 준비되어 가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 의지와 힘으로 나를 치유하고 바꿀 수 있는가? 창3장에서 시작된 원죄의 본성 가지고 있다. 마귀 우글거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단 1분 뒤의 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그리스도다. 이 그리스도을 내가 먼저 누리고, 세상에 말해주고 가는 것이 우리의 천명이다.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먼저 부르시고, 내가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겠다는 것이다(소명). 구체적으로 내가 할 일을 보여주시고, 정말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사명). 부활 이후 그리스도께서 주신 마지막 메시지인 본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겠다.
- 나의 천명이다. 하나님이 꼭 하셔야만 했던 일을 깨닫는 것이 천명이다.
왜 하나님은 꼭 아들을 보내 처절하게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셨는가? 그것 깨닫는 것이 천명의 시작이다
1) 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는(갈보리 체험) 세가지 방법이 있다.
①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그 당시 데오빌로라는 총독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행1:1). 그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거기서 계속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② 다른 사람과 세상의 문제를 보면서 정말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너무 타락해가고(원죄의 결과), 다른 한쪽으로는 착하게 열심히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다(사단)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다(길을 잃어버린 것).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아, 이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낼 수 밖에 없었구나”라고 깨달아져야 한다.
③ 십자가(갈보리)를 체험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 있다. 내 문제를 통해 깨닫는 것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 문제, 아픔, 실패, 외로움, 저주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붙잡으라..
예수님 제자들이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언제 체험했는가? 그 이후에 생명을 걸고 세계로 간 것이다. 3년을 따라 다녀놓고, 다 도망간 것이다. 얼마나 부끄럽고 힘든 시간인가? 그러나 그때 주님이 찾아오셨다.
낙심해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찾아오시고(눅24:13-34), 끝가지 의심하고 있던 도마에게도 찾아오시고 (요20:24-29), 주님을 부인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나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도 찾아오셨다(요21:1-23)
2) 내 아픔, 고통, 눈물, 실패, 왜 허락하시는가? 분명히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었다. 영적인 눈도 떠야 한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 고통, 눈물 때문에 그리스도가 죽으셨고, 새로운 시작 을 하라고 부활하셨다. 그 그리스도가 나의 “오직”이 될 때 나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천명)
- 나의 소명이다. 소명은 “찾아오셔서 부른다”라는 뜻이다.
1) 우리 인생에 세 번의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고 한다. 나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로 쓰시기 위해서이다.
①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다(롬8:30). 구원받은 순간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눅17:21)
그러나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가 없다(롬3:23, 엡2:1). 하나님이 불러주신 특별 은혜다(특히 유아세례자)
②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를 쓰시기 위한 부르심이다(벧전2:9).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까? 하나님의 시간표이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에 불렀고(삼상3:10), 요셉이나 다윗은 청소년기에 불렀고(삼상16:12-13), 모세는 80세의 나이에 불렀다(출3:1-12). 상황도 다르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로 많은 증거를 주시면서 불렀고, 모세는 도 망자로, 바울은 핍박자로 살던 시간에 부르셨다(행9:15)
③ 마지막은 영원한 천국을 향한 부르심이다(딤후4:6). 그 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이다.
2)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간 집중하면서 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것이다(행1:3). 믿고 기도하면 된다.
성령이 나를 다스리도록 기도하라. 천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이다(롬14:17)
내가 있는 자리(가정, 직장, 지역)에 문제가 있는가? 흑암을 결박하고 하나님 나라 임하도록 기도하라(마12:28)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 받았고, 지금 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라고 했다(마6:33)
- 나의 사명이다. 분명히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행1:8)
1) 성경의 렘넌트가 자기 실력과 인격과 열심의 증인이 된 것이 아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꿈꾸고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다윗도 실패했다(밧세바 사건). 그런데 하나님이 시대적인 증인으로 쓰셨다.
오직 나를 나 되게 하시는 이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내 안에 함께 하신 그리스도다.
2) 그들이 처음부터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노예 일을 잘 하고, 아버지 심부름하며 양을 친 것이다.
당연한 일을 하면 된다고 하나 사실은 당연한 일도 마음대로 안 된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나의 오늘이 성령이 역사할 수 밖에 없는 영적 시스템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3 오늘).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거기서 언약을 찾고, 그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고, 나의 전도를 계획하는 것이다.
3) 그 위에 성령이 역사하니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는 것이다. 영적 써밋이라고 한다(창41:38)
작은 일, 당연한 일, 그냥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일이 된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그 일에, 그 시간에, 그 장소에 내가 쓰임 받는 것이다. 그것을 사명자 인생이라고 한다.
결론-부활은 분명히 내 인생 모든 문제를 끝낸 완전한 구원의 증거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그 일에,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나를 쓰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천명, 소명, 사명이다. 그 믿음 회복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6) -부활 이후, 천명 소명 사명(행1:1-8) 4/23/2017 April 23,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5) -내게도 찾아오신 부활의 그리스도(고전15:1-8) 4/16/2017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동시에 최고의 날이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고, 실제로 최고의 날이 되어야 하는가?
첫째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그 분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참 구원자라는 증거를 보인 것이다.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사는가? 그래서 그 분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증거다(롬1:4)
하나님의 아들로 인생이 해결할 수 없는 세가지 근본 저주를 끝낸 것이다(원죄 저주, 사단의 저주, 영원한 저주).
둘째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죄, 저주, 사단, 지옥 문제만 해결하신 것이 아니다.
부활하여 모든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거기서 영원한 생명, 권세, 능력 다 누려야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영원히 나와 함께 해줄 대상이 없다(부모도, 자식도, 부부도, 친구도)
창3장 이후에 인간은 다 자기 중심, 물질 중심, 세상 중심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떠난다.
아무리 불신자가 안 믿는다고 해도 부활은 역사적인 증거다. 오랜 세월 성경에 예언된 대로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증인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증거가 뭐냐? 8절에 “부활하신 그 분이 내게도 찾아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한다든가, 남을 도울 때 간증을 할 때가 있다. 그때 실수하는 것들이 있다.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냈던 간증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자기가 나온다. 내가 어렵고 고생스런 시간이었지만 참고 노력했더니 이런 좋은 날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영적으로도 사실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 복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안 되니까 그 분이 오셨다.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문제를 끝내시고 내게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신 것이다. 그것을 누리라는 것이다(갈2:20).
“구원 받았다”는 것은 내게도 그 분이 찾아오신 것이다(계3:20). 부활하신 그 분이 내게도 찾아오셨고, 그 분이 내 인생 모든 문제 사건에서 함께 해서 내 인생을 축복하고 쓰시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부활하여 지금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못 누리도록 속이는 존재가 있다. 사단이다. 계속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문제를 가져다 속인다.
오늘 예배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그리스도로 붙잡고 그것을 끝내야 한다.
- 그리스도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나의 모든 과거 문제를 끝낸 것이다.
오늘, 지금 이 시간 이전의 것은 전부 과거다. 신자가 계속 사단에게 발목 잡히는 것은 과거 문제다.
억울했던 것, 슬펐던 것, 실패했던 것, 부끄러웠던 것, 전부 죄의식으로 남고, 분노로 남고, 상처로 남아 있다.
나는 그래도 잊고 살려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 했는데, 사단이 비슷한 일을 가져와 그것을 건드린다.
1) 내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갈보리의 그리스도가 각인되면 그 과거 문제가 정말 끝나는 것이다(갈보리 체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고난을 당하셨는가? 따귀를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옷 벗김을 당하고, 물과 피를 남김없이 쏟으신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의 십자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죄가 없는 것이다. 아프고,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운 기억과 상처가 있는가? 바로 그 문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을 깊이 묵상해보라.
그 분의 사랑이 깨달아질 것이다. 그 분이 주시는 용기와 위로가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갈보리 체험이다.
2) 왜 그리스도가 부활했냐? 이제는 과거에서 빠져나와 매순간, 매일, 365일, 평생,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것이다.
내 힘으로 새로 시작하려고 하면 안 된다. 또 넘어지고, 또 속고, 그러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내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신의 생명,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나와 함께 하신 것이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이다(고후5:17). 운명 저주에서 빠져나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가진 것이다(요1:12)
이제는 내 안에 함께 한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모든 과거의 일까지 증거로 만드시겠다는 것이다(행1:8)
- 나의 현재 문제가 무엇인가? 지금, 오늘, 나의 현재 속에 이 그리스도가 부활의 능력으로 함께 하신 것이다.
지금, 오늘, 나의 현재가 고난이요, 아픔이요, 가난이요, 육신의 질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붙잡으라.
1) 나의 약한 그때가 그리스도의 강함을 체험하고, 그 능력이 내게 머무는 시간이다(고후12:9의 바울의 고백)
그 증거를 가지고 우리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재창조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령의 렘넌트 7명이, 로마를 정복한 마가 다락방의 성도들아, 예수님의 제자들과 본문의 바울이 강한 자들이 아니었다. 노예였다. 핍박을 받았다. 약하고 두려워 떨던 사람들이었다(고전2:3). 그 시간에 하나님이 부활의 능 력, 창조의 능력으로 함께 한 것이다. 스스로 강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강해지는 것이다.
2) 이 사실이 정말 깨달아지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고난도 누려지고, 아픔도 누려지고, 외로움도 누려지는 것이다.
그때가 그리스도를 최고로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회복할 때만 우리를 속이려고 역사하던 흑암의 역사도 떠나는 것이다. 마귀가 속일 수 있는 틈을 안 주니 바쁜 마귀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벧전5:8)
- 나의 미래 문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미래를 완벽하게 준비하셨다는 것을 붙잡으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지금의 고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와 결론을 말해주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사람은 부활 속에 있는 그 미래와 결론을 붙잡고 가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다시 와도 상관없다. 3일만 지나면 부활의 축복이 오는 것이다. 그 3일이 하나님의 시간표이다.
분명히 모든 문제는 끝났고(요19:30),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룰 것이다(롬8:29)
나는 일분 뒤의 일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이다(엡3:20)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에 증거를 주시고, 증인으로 세워 세상 살리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행1:8)
2) 불신앙만 버리고, 내 동기와 계산만 버리라. 결국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뭐가 불신앙인가? 자꾸 염려하고,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그것이 발전하면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욥3:25)
그러다가 원망과 절망과 다툼이 나오고, 결국 그것이 또 사단에게 속는 영적 문제가 된다(민21:6).
왜 내 동기와 내 계산을 버리라고 하냐? 내 계산과 수준으로 하면 우리는 세계복음화 못한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응답은 밥 먹고 사는 수준 아니다. 100년의 응답이다(창26:12, 막10:30). 더 나아가 천년의 응답이다(사60:22).
만일에 이 땅에서 응답이 없다면 영원한 응답과 면류관이 기다리는 것이다(딤후4:8)
결론-축복 중에 축복, 응답 중의 응답이 뭐냐? 치유 중에 치유, 증거 중에 증거가 뭐냐? 부활하여 지금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지금 함께 하신 것이다. 거기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가 끝나야 한다.
문제, 고통이 있는가? 살아계신 부활의 그리스도를 체험하면서 세상 살릴 참 증인으로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5) -내게도 찾아오신 부활의 그리스도(고전15:1-8) 4/16/2017 April 1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4)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마21:1-9) 4/9/2017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이다. 이 첫날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Palm Tree)를 흔들고 기뻐했다고 해서 종려 주일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을 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이유는 그 분이 “그 옛날 다윗의 영광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왕”이라고 믿었다는 뜻이다.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가 맞다.
문제는 그렇게 오시는 왕이 왜 하필이면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오는가?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왕이라고 하면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처럼은 못해도 이 수준은 너무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오늘 종려주일에 꼭 붙잡아야 할 메시지고, 우리가 평생 반드시 누려야 할 축복이다.
- 말씀의 성취였다.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오시고, 무슨 일을 하실지 이미 말씀을 통해 주셨던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이 있는가? 말씀 붙잡고, 묵상하면서 거기서 그리스도를 체험해라(요5:39)
1) 시대마다 개인마다 문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답을 주셨고,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셨다.
①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고, 모든 뼈가 어그러지는 고통을 당했다고 했다.
그 속에서 나를 건지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시를 썼다(시22:1-22) 거기서 다윗은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것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 죽으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예언이 된다.
② 욥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이 죽음의 자리에서 건지실 것을 믿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욥19:25-26).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훗날 그것이 그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예언이 된다.
③ 본문도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족속에게 짓밟힌 시간에 스가랴라는 선지자가 아픈 가슴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대적과 싸울 군대도 말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기를 이스라엘을 구원 할 참 왕이 오시는데, 말이 없어서 나귀를 타고 온다. 너무 초라해 보이는데, 그 분을 통해 전 세계 모든 민족 에게 평화가 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귀 타신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슥9:9-10)
2) 그래서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아니 평생에 걸쳐 어느 정도 말씀을 잡아야 하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만 그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아니다. 나만 겪는 거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겪었고, 말씀으로 승리했고, 증거를 얻었다(히12:1-2)
① 그래서 성도는 말씀에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 찾아내고(시107:20), 그 말씀 붙잡고 힘을 얻고(시119:50),
그 말씀으로 계속 치유 받아야 한다(딤후3:16-17)). 그것을 매일 하는 것을 3오늘이라고 한다.
말씀을 붙잡고, 거기서 기도제목을 찾고, 말씀을 붙잡을 때 주신 축복을 가지고 나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② 성도는 모든 생각과 판단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내 기준(상처), 육신 기준, 세상 기준에 잡혀 평생 스스로 속고, 육신에 속고, 세상에 속다가 인생 끝난다. 창3장, 6장, 11장에 시작된 사단 작품이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를 붙잡고, 매순간 나를 속이는 사단과 대적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 내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고난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왕이 나귀를 타는 것은 수치스런 것이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를 당한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이요 아들의 영광을 가진 그 분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받은 것이다(빌2:7-8)
히4:15에 보면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하는 체휼하신 분이라고 했다.
주님은 내 고난을, 내 아픔을, 내 눈물을, 내 가난을, 내 수치를 모를 것이다. 그렇게 속지마라. 다 겪으셨다.
2) 그래서 그리스도는 나의 오직, 나의 전부, 나의 24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고난 받으신 유일한 분이다. 유일성이다.
3) 그의 고난으로 우리가 당할 저주, 고통, 운명, 지옥 저주까지 끝난 것이다(사53:5). 그냥 말로만 한 것 아니다.
잠시 죽을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으나 모든 문제는 끝난 것이다(요19:30). 문제로 생각하니 더 큰 문제가 된다. 혹시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낮아지라. 그러나 알라.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고, 결론이 아니다(렘애3:33).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반드시 축복이 될 것이다.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라. 더 큰 영광이 오는 시간이 온다.
- 온 세상을 살리고 다스리실 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모습으로 오셔야 한다.
세상의 왕, 인간의 왕은 가짜 왕이고, 틀린 왕이고, 실패하는 왕이다. 그래도 세상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왕, 완전한 왕, 영원한 왕으로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세가지 왕권의 축복을 누리라.
1) 우리의 대적을 무너뜨린 승리의 왕권이다(고전15:25).
아무리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에 숨은 대적이 무너지지 않으면 끝없는 고통이다(요10:10)
아담이 그냥 실패한 것이 아니다. 가인이 동생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살인으로 이끈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요8:44). 욥이 그냥 고냔을 당한 것이 아니다. 가룟 유다가 그냥 배신한 것이 아니다.
이 마귀의 일을 멸하신 분이 그리스도다(요일3:8). 그 분의 권세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눅10:19, 막16:17)
그래서 문제 올 때 더 이상 속지 말고 영적 싸움하라는 것이다. 특히 전도 현장에서 이 권세를 누려야 한다.
2) 모든 믿는 자 안에서 그 인생을 다스리는 통치의 왕권이다(사9:6)
내 마음, 생각, 의지도 내가 다스리기가 어렵다. 그 분의 나의 참 왕이 되어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하라.
그 분이 나의 참 왕이 되어 나를 다스릴 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고전14:17).
내가 그 분의 평화를 얻을 때 나도 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도 살리는 것이다.
3) 그리스도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려야 할 영원한 왕권이다(눅1:33)
거기서 우리가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계22:5)
그래서 짧은 인생과 세상에 마음 뺏기고 헤메지 말고, 위엣 것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골3:1-4).
그래서 보물을 썩고 사람에게 도적질 당하는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마6:19-20)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것은 영원한 축복, 보좌의 축복이다. 그것이 세상 살리는 참 써밋의 축복이다.
결론-종려 주일에 세가지 축복(말씀의 축복, 십자가 고난의 축복, 왕권의 축복)붙잡고, 모든 문제에서 승리하고, 참증인으로 세상앞에 서는 세계복음화의 주역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4)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마21:1-9) 4/9/2017 April 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3) - 나의 성공관과 세계복음화(신28:1-10) 4/2/2017
사람은 누구나 성공에 대한 본능이 있다고 한다. 심리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축복해주면 그 욕구가 채워지면서 더 잘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축복하실 때 이런 본능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창1:27-28).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세상을 다스리던 존재였다. 창3장에 인간이 타락하면서 이 축복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 분명히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사단 역사다.
가짜 성공이 뭔가?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창3장에 마귀가 시작한 일이다(요8:44).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면서 한 거짓말이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유혹을 한 것이다. 나중에 무너질 것 모르고 성공을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하며 사는지 모른다.
틀린 성공은 무엇인가? 오직 육신의 기준, 물질의 기준으로만 성공을 판단하는 것이다. 창6장에 사람들이 보는 외모, 일류 대학, 일류직장에 속고 있다. 신자들조차 진짜 하나님 축복을 받게 만드는 영성과 인성은 나중이다.
그 가짜 성공, 틀린 성공의 결과가 실패한 성공이다. 창11장의 바벨탑처럼 어느날 무너지는 것이다. 성공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날 우울증, 약물 중독, 자살에 이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개발 도상국 중에 한국은 더 심각하다.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서로 죽여야 한다. 대통령이 되고도 감옥 가고, 자살까지 간 사람들이 많다.
지금 개인을 비롯해서 사회가 이 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으로 달려가고 있다. 거기에 선두 주자가 뉴에이지, 프리메이슨, 유대주의 사상이다. 엘리뜨주의, 이기주의, 패권주의로 세상에는 고통과 재앙이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성공에 각인 뿌리 체질된 나를 바꾸고, 그들을 살려낼 만큼의 참 성공자의 축복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 그 해답은 복음 밖에 없다.
창3:15에 약속한 “여인의 후손”, 창6:14의 “방주의 언약”, 창12:1-4에 바벨탑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나 안 언약”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이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성공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본문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이다.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축복이다.
1) 참 성공이 어디서 오는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이다.
본문에 계속 나오는 단어가 “나 여호와가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다.
① 그 분이 뭘 하셨는가? 아담의 원죄와 우리의 죄로 저주에 빠진 우리를 해방 시키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롬 8:1-2, 갈3:14).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던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신 것이다(롬3:23, 요14:6)
내 인생을 실패로, 고통으로 끌고 가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신 것이다(창3:15, 요일3:8)
② 그리스도를 만난 순간 나는 그 분의 영원한 계획 속에 들어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다(빌3:12). 정말 깨달으면 성공을 위해 애쓸 이유도 없다. 되어지는 것이다.
2) 참 성공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 그리스도로 각인 뿌리 체질되도록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라는 것이다.
①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할 때 그 안에 아버지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했다.
우리가 말씀을 받고, 묵상할 때 똑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② 1절에 “내가 주는 말씀을 붙잡으라”고 했고, 2절에 말씀을 순종하라고 했다. 너를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고 모든 복이 임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말씀 붙잡을 때 세상을 이기는 용기와 힘도 생기고(시107:20)
원수와 스승과 노인보다 더한 지혜를 얻고(시109:98-100), 그때 천사가 동원되고 흑암도 깨진다(시103:20-21)
반드시 말씀을 정리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하고, 스스로 포럼하는 시간을 가지면 무조건 승리한다(수1:8)
3) 참 성공의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에게 참 성공을 주셔야 하는가?
① 나를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워야 하고, 나를 통해 저주와 고통과 재앙에 빠진 세상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0절에 “너를 선택한 하나님을 보고 만민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②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아브라함(창12:3), 이삭(창26:4), 야곱(창28:14), 요셉(창45:5)에게 계속해 강조해주신 언약이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의 언약이다.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마28:18-20).
우리가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며 헌금하고, 다민족 사역을 하고, 단기 선교를 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 참 성공을 위해 그 복음을 적용하는 써밋 교육의 7가지 방법이 있다.
불신자도 성공 교육의 모델을 유대인 교육으로 본다. 복음은 그 이상이다. 7가지 키를 붙잡고 복음 확신가지라.
1) 유대인들은 “탈무드, 토라, 쉐마”를 가지고 지혜 교육, 선민 사상, 각인 교육을 시켰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의 흐름을 보며, 모든 문제를 끝낸 “그리스도를 만나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요5:39).
2) 유대인들은 많은 “위인전”을 읽고 성공자 강의를 들어 모델을 삼고 동일시(Identification) 하게 한다.
혹시 좋은 강의를 못 들어도 우리에게는 “렘넌트 7명의 모델”이 있다. 모든 문제, 갈등, 죽을 것 같은 환경에서 도 그 렘넌트에게 역사하신 그리스도를 보며, 그 분이 지금 나의 하나님임을 붙잡으면 된다.
3) 유대인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라는 세 절기를 큰 축제로 지키면서도 그 속에 영적인 축복을 놓쳤다.
우리는 내 영혼 속에 그 절기의 주인으로 오신 “그리스도”(행1:1), 그 분이 함께 할 때 누릴 “하나님의 나라” (행1:3). 세상 살릴 “성령의 능력”(행1:8)을 붙잡고 가는 것이다.
4) 유대인들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에 잡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지금 살아계신 “주일”(주 의 날, 계1:10)의 축복을 누리고, 일주일 전부가 주께서 함께 하고 축복하시는 날인 줄 붙잡고 가는 것이다.
5) 유대인들은 13세가 되면 “율법 두루마리”를 받으며 대단한 성인식을 한다. 우리는 그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 도를 “오직”으로 붙잡고, 매주 세상을 살리기 위해 가는 선교사 파송식을 하는 것이다.
6) 유대인들은 “유대인 회당”에 모여 유대주의 엘리뜨 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는 렘넌트들에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체험하도록 돕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은 사람은 전문성 정도가 아니다. 유일성이다. 그 축복으로 세계복음화 한 것이다.
7) 프리메이슨처럼 곳곳마다 “랏지”(Lodge)를 세워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치유하고, 살리는 “재창조의 역사”를 믿고 가는 것이다.
결론-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자의 각인과 뿌리와 체질을 버리는 집중을 해야 한다. 세상 기준으로 성공 안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성공자이다. 참 성공자의 언약을 붙잡고 세상을 바꾸고, 치유하고, 살리는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3) - 나의 성공관과 세계복음화(신28:1-10) 4/2/2017 April 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2) - 나의 교회관과 세계복음화(마16:13-19) 3/26/2017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려야 할 첫번째 축복이 뭐냐? 교회의 축복이다. 그것이 본문이다.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18절)
계속되는 세상의 문제와 고통에서 정말 힘을 얻고 응답 받는 비밀이 뭐냐? 참된 교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성도가 교회 축복 못 누리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1:24), “하나님의 집”(히3:6)라고 했다. 몸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실제로 교회들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전 세계교인수가 감소되고, 여러 갈등으로 교회가 분열해 교인이 이동하고, 무엇보다 후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 하나님이 다락방 전도 운동을 통해 교회를 살리고, 복음에 생명을 건 제자들이 일어나고, 후대 살리는 렘넌트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성령의 역사이고, 시대의 축복이다.
- 그러면 교회가 왜 무너지고 있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계12:17에 마지막 사단의 공격 목표가 교회(“여자의 남은 자손”)라고 했다. 그 사단의 구체적인 전략이 뭐냐?
1) 핍박이나 개인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다. 계시록에 보면 계속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교회는 핍박이나 어려움이 올 때 더 강해졌다. 개인도 그 때 더 믿음이 연단된다(약1:2-4)
2) 더 위험한 전략은 교회 내부 안에 있는 갈등이다. 교회 안의 갈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교회 성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이 목회자의 리더쉽과 인격, 영성이라고 한다. 둘째는 그 교회 중직자들의 수준을 지적한다. 나머지가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결국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이 준 각인, 뿌리, 체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① 목사는 목사대로, 중직자는 중직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내 기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창3:5).
내 생각, 내 경험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가 아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것이고, 나하고 관계 없으면 무관심하는 정도가 아니다. “날 뺐다”, “무시했다”,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싸움이 난다.
② 육신 기준이다. 네피림 시대에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영적으로는 죽은 자가 되었다(창6:4)
“더 이상 하나님의 신이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령이 거하지 않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계3장의 사데 교회). 교인 숫자, 재정 규모등이 교회 성장의 기준이다. 돈 없으면 힘 빠지고, 돈 생기 면 힘나는 수준이다. 반대로 돈이 있어도 계산이 앞서 헌금도 잘 안한다. 정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시고, 그 분으로 충만하면 계산 수준이 아니다. 내 인생 전부가 주님의 것이고, 돈 버는 이유도 그 분을 위해서이다.
③ 세상 기준이다. 교회도 사람 차별한다는 말이 나온다. 교회도 실수를 하지만 자기 열등감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중요한 직분을 가진 사람일수록 낮아지고, 섬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막10:43-45)
3) 이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한, 더 근본적인 사단의 전략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교회에서 그리스도만 선포하지 못하게 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 열심, 헌신, 다 하는데, 그리스도의 뜻도 모르는 성도가 온 세상에 가득 찼다.
① 본문에 예수님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율법주의), 엘리야(신비주의), 예레미야(박애주의), 선지자(지식주의)로 이해하는 교회가 꽉 차 있다.
② 이때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시고, 나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참 제사장(롬8:1-2),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 데 상관없이 인생을 도적질하는 사단을 박 살내신 참 왕(요일3:8),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영원한 길이 되신 참 선지자(요14:6)로 고백한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요19:30). 어떤 문제도 문제 아니다. 이 결론이 안 나면 계속 속는 것이다.
③ 그때 주님이 그리스도를 깨달은 이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못 깨닫게 만드는 교회가 적그리스도이고(요일2:22, 4:3), 이단 중에 이단이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는 순간 사단은 모든 것을 다하고 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 그렇게 그리스도가 세우시겠다고 하신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세 종류의 교회를 누려야 한다.
1) “내 안에 있는 교회”의 축복이다(개인 교회)
① 고전3:16의 축복이다. 렘넌트 7명,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든 문제, 상황에서 이 축복을 누린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 것이다. 나와 동행하고, 나를 인도하고,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② 그것을 누리는 비밀이 다섯가지 참된 기도의 비밀이다. 첫째, 감사로 누리라(빌4:6-7). 그 분이 내 안에 함께 한 것을 감사하라. 둘째, 말씀을 붙잡으라(시103:20). 거기서 하나님 소리를 듣고, 그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셋째, 묵상하며 내 과거, 현재, 미래 속에 적용하라(요15:7). 넷째, 반드시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평안과 힘과 용기가 생긴다(히4:12). 다섯째, 그때 더 이상 내 삶이 흔들리고, 치우치 않고,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시1:3).
2) 그러면 꼭 예배당에 가야 하는가? 그것이 마18:19-20의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교회”의 축복이다(성전 교회)
① “두 사람이 합심하여 땅에서 무엇을 구하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언약을 붙잡고,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훈련하고, 힘을 얻어서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다.
② “두 세사람이 내 이름(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을 성전에 못 모이게 해야 한다. 혼자 있게 해놓고 공격하는 것이다(히10:25)
마귀도 그룹을 만들어 다닌다(계3:9의 사단의 회 또는 교회). 성도가 모일 때 이 사단의 회가 깨지는 것이다.
3) 함께 모여 힘을 얻고, 이제 세상으로 가서 누리는 “흩어지는 교회”의 축복이다(현장 교회, 평일교회, 지교회)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 것을 깨닫고 누린다면 내가 머문 자리(가정, 학교, 직장)가 곧 교회이다. 흑암 역사하는 그 곳에서 파수꾼의 사명 감당해야 한다. 행2장에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① 다락방 운동이 뭐냐? 그리스도를 깨닫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참 교회의 축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현장 운동)
거기서 불신자를 전도하니 “전도 운동”이라고 하고, 말씀을 나누어 힘을 얻게 되니 “말씀 운동”이라고 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전도에 생명 건 제자들을 찾아 훈련시키니 “제자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 내 집이 가정 교회가 되고, 내 직장이 전문 교회가 되고, 내 지역에 지교회가 시작되는 기도를 하라.
이 축복을 가지고, 나 같은 사람 살리고, 곳곳의 현장 살리는 것을 제2 RUTC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론-흑암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참 교회의 축복을 누리고, 꼭 세상 살리는 증인으로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2) - 나의 교회관과 세계복음화(마16:13-19) 3/26/2017 March 2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1) - 나의 자아관과 세계복음화(벧전2:4-9) 3/19/2017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창3장 아래 있는 세상이기에 당연하고, 온 땅에 흑암, 저주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 속에 있는 개인도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 고통이 계속 되고, 세상에 눌려 살다보니 어느날 “내가 없다”.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실종된 나). 그래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한다(방황하는 나). 그러다가 잘못된 것에 빠져서 집착을 하고, 중독에 빠진다(사로잡힌 나)
여기에 여러 종교 단체나 뉴에이지, 프리메이슨 같은 단제들이 답을 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명상운동이다. “세계의 엘리뜨는 왜 명상을 하는가”라는 책도 나올 정도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다. “나를 찾으라”깊은 명상을 통해서 “초월적인 나”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창3:5에 마귀가 한 소리이다. “하나님 없는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되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속아 완전히 무너진다.
하나님은 여기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그리스도의 답을 주신 것이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버려진 돌” 같았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산 돌”이 되셨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를 돌에 비유를 했냐?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데, 내가 어떤 기초 위에 집을 짓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5절에 내 인생이 그 안에서 “신령한 집”과 같이 만들어져 갈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참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나를 찾으면 된다. 우리는 세가지로 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아관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 받은 나”, “재 창조된 나”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와 고통을 당하면서 “다 끝났다”고 선언하셨다(요19:30).
그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는 사단, 운명, 저주(개인의 저주, 가문의 저주, 영원한 지옥 저주)에서 빠져 나왔다.
내 인생의 근본을 바꾼 것이다. 그것을 “구원 받았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후5:17)라고 하는 것이다.
1) 이제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하신 것이다(요5:24, 요일5:11-12)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그 분이 성령으로 지금 내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임마누엘).
그 자체로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요 사랑스런 자이다(사43:4, 마18:10). 이제는 그 분이 함께 해서 그분 이 붙잡고 있는 인생이다. 6절에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 이제 내 인생이 그 분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라고 했다.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라도 그 분이 택하여 쓰시기로 작정한 인생이다.
아무나 택하고, 실수로 날 택하신 것이 아니다. 영세 전에 택하여 자녀 삼으셨다고 했다(엡1:3-5).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절대 계획, 절대 시간표 잡고 거기서 믿음 찾아내고, 감사해보라.
3) 구원 받은 순간 내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가 그 분의 시간표 속에 있다는 사실을 정말 믿어야 한다.
나의 과거도 하나님이 아셨고,허락하셨다. 그래서 상처로 잡으면 속는 것이다. 나의 오늘도 그분이 허락하셨다. 오늘을 누리고, 감사 속에 살라. 무조건 열심히 산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대충해도 된다. 반대로 해서 문제다. 미래는 전부 증거가 될 것이다. 다 양보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라
- “그리스도가 주신 것을 가진 나”이다.
늘 하나님 잃어버린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보니 나는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다.
1)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그 분이 내 안에 계시니 그 분의 권세가 내가 누릴 축복이 된 것이다.
왕권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덮은 어둠의 권세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권세이다. 그래서 세상 두려워 말고, 마귀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이다. 제사장권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권세다. 싸움은 사단하고 하고(엡6:12). 핍박하는 자도 축복하는 인생을 살라(롬12:14). 그 축복이 내게로 올 것이라고 했다(시35:13)
2)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기도할 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하나님 자녀의 7가지 특권이다.
성령이 동행하는 특권이다(고전3:16).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다(요16:13).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행1:8). 천사가 동원되는 특권이다(히1:14).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는 특권이다(눅10:19). 천국 배경을 누리는 특권이다(빌3:20). 세상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특권이다(마28:18-20)
이 7가지 주어진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기도로 누리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고후6:9-10)
3) 거기에 그 분이 은혜로 주시는 각자의 달란트, 은사, 직분이 있다(롬12:3-8, 엡4:7-12)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아무리 작아도 작은 것이 아니다.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봐서 그렇다.
그것이 비록 작은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그 분의 이름으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때 능력이 나타난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오직(오직 그 분의 영광을 위해)이고, 유일성(그 분이 주시는 축복)이고, 재창조(그것으로 세상 살리는 역사)의 축복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데 무슨 능력이 체험되고, 나타나겠는가?
- 그래서 마지막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가 보내시는 나”이다.
본문에 우리를 향해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다. 그 분이 다스리고, 그 분이 쓰시기로 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중요한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을 부를 때 “Honorable"이라는 호칭을 붙힌다.
사43:4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너를 보배롭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겼다“. 꼭 세가지 붙잡으라.
1) 우리는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다(고후5:20)
세상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그 능력을 보는 것이다. 나는 부족하나 내 안의 그 분은 부족하지 않다.
2) 나는 어두움에 묶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주어야 할 전도자이다(9절하)
분명히 자기를 잃어버리고, 흑암 속에 방황하고, 허무한 것에 집착하고 있는 영혼들이 내 옆에 있다. 자기를 찾 는 그 길이 그리스도라는 답만 주면 된다(요14:6). 그리스도의 답을 주는 데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다.
3) 나는 분명히 세상과 세계를 살릴 선교사이다(행1:8)
요셉이 노예로 간 것이 아니다. 애굽을 살릴 선교사로 간 것이다. 초대 교회가 핍박을 받아 온 세상에 흩어졌는 데 그냥 흩어진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로, 아시아로, 마게도니아로, 로마까지 살리는 자로 흩어진 것이다.
그것이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는 무조건 선교사이다. 세계화된 사람들이다. 우리가 가진 메시지, 기능, 달 란트,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민족 살리고, 세상 살리는 선교사로 부름 받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결론-내가 누군지를 찾아서 기도로 들어 가보라. 감사 회복하고, 말씀의 언약 붙잡고, 묵상해보라. 어떤 상처도 치유 받고, 정확한 응답이 새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찾아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1) - 나의 자아관과 세계복음화(벧전2:4-9) 3/19/2017 March 1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0) - 나의 역사관과 세계복음화(창45:4-8) 3/12/2017
사람은 흔적을 남기고 산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역사로 남는다. 그래서 작은 것도 작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중에는 역사로 기억할 가치도 없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기억할 정도의 영원한 역사가 될 것도 있다.
흔히 역사를 과거와의 대화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역사를 보는 눈이다. 두 종류의 역사관이 흘러가고 있다.
첫째는 인간 중심의 역사관이다. 인간 기준으로만 역사를 보는 것인데, 결국 그것이 창3장, 6장, 11장의 작품이다.
창3장은 자기 중심이다. 모든 사건과 역사를 자기 기준으로 본다. 모든 것이 이기주의가 되고, 세상은 고통이 된다. 상처와 고통이 되고, 이기주의가 된다. 창6장은 육신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인류가 당한 고통의 배후 속에 어떤 사단의 역사가 있었는지를 못 보는 것이다. 당연히 역사를 공부해도 반복되는 실패와 저주에 답을 찾지 못한다.
창11장은 세상의 기준이고, 성공한 자, 힘 있는 자의 기준이다. 힘 있는 자, 힘 있는 나라 중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사도 왜곡시켜 만들고 해석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민족주의, 패권주의다.
둘째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이다. 단순히 성경의 역사, 교회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눈(영적인 눈)으로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끝없이 타락하고, 분쟁하고, 고통과 저주가 더해가는 세상 역사에 답이 보이고, 결론이 보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래야 하나님 사람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작은 일을 하고도 세상 살리고 역사를 바꿀 만큼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시대적 응답, 역사적 응답)
본문의 요셉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애굽이라는 나라가 왜 존재하는지, 그 곳에 하나님이 왜 자기를 보내셨는지에 대한 답이 있었다. 이 시대 강대국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답이 있어야 한다.
노예로 팔려왔고, 억울하게 감옥을 갔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알았다. 나라의 미래에 대한 답을 줄 정도였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고, 오늘을 승리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이 중요하다.
-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주권이라는 말은 모든 것의 소유권과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보니까 이해가 안 되고, 답도 못 찾는다. 그래서 “History"는 ”His Story"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1) 대상29:11-12의 다윗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천지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고, 모든 것이 그 분께로 온다는 것이다(부자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도)
성공하려고, 부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리고 무너진다. 그 분이 되어지게 해야 되는 것이다(참 성공)
이것을 놓치고, 욕심을 위해 싸우고 몸부림한 것이 인류 역사다(그래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성공을 이루고 나면 롬11:36의 바울처럼 모든 것을 그 분께 영광 돌리면 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히 있으리로다 아멘”
3)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개인과 가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라.
요셉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승리한 비밀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 그 이유가 뭘까?
-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무엇일까? 모든 세상, 민족, 인생이 구원 받는 것이다. 영세 전에 그 길을 준비하셨고,
역사를 통해 계속 계시(드러내 주심)해주시다가 마침내 이 땅에 오신 것이다(롬16:25-26). 그 분이 그리스도다.
1) 끝없이 타락해가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서 왜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했는지의 절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나 자신과 인간 스스로의 힘이 안 되니까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끝없는 타락과 고통과 저주와 재앙을 보면서, 나 개인의 문제를 보면서 “정말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① 세상 역사의 시간을 B.C(그리스도 오시기 전)과 A.D(그리스도 오신 이후)로 나누는 이유도 이것이다.
인류 역사의 큰 분기점이 언제였냐?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와 오신 이후였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다시 오 심으로 인류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저주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② 나 개인의 인생 역사도 구원 중심(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만나기 전의 내 인생, 그리스도가 참 나의 그리스도가 된 이후의 내 인생, 이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남은 인생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나는 그리스도께 붙잡혀 쓰임 받을 인생이다(빌3:12)
2)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개인, 나라. 민족은 하나님의 절대 섭리(Providence) 속에 있다.
그 말은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축복해 가신다는 뜻이다. 그들을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① 구약의 모든 나라들이 망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언약) 속에 있는 이스라엘은 망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만 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속에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② 개인도 같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이루어가시고(빌1:6),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아 갈 수가 없다(요10:28). 이유는 나를 세상 살릴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요셉이 그것을 붙잡은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픔을 통과시키며 생명을 살리고(5절), 세상과 후대를 살릴 자로(7절)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붙잡은 것이다.
- 하나님의 절대 시간표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마24:14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했다. 그 절대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시간표 가지고 개인과 가정, 교회, 국가를 택하여 쓰고 계신다. 그 시간표를 보는 눈이 열릴 때 참 응답 받는다. 1) 한국과 미국이 어렵다고 한다. 아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전도와 선교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선택해 쓰고 있다. 한국은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아주 작은 나라다. 미국은 아주 짧은 역사다. 그런데 쓰고 계신 것이다. 계속 전도 와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어떤 일이 생겨도 문제없다. 오히려 더 큰 증거가 되게 하실 것이다.
2) 개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런 환경에, 이 자리에 왔는지를 전도 중심으로 풀어보라. 하나님이 요셉을 보 디발의 집을 살리기 위해 노예로 보냈다. 감옥에서 애굽 관리들을 살리기 위해 죄수로 보냈다. 왕궁에 가서는 세계를 살리는 일을 한 것이다. 나 때문에 복음 받고, 살아야 할 사람이 거기 있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붙잡을 영원한 시간표가 있다. 세상의 역사는 지나가고, 불로 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고전3:13).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그 날에 기억될 역사이다. 작은 일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감사로 하고, 오직 하나님 영 광을 위해 하면 하나님이 기억하는 불멸의 역사, 불멸의 작품이 된다. 요셉은 노예 일부터 그렇게 한 것이다.
결론-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역사다. 하나님의 주권, 계획, 시간표로 보고, 그 현장 살리는 참 증인, 전도자로 세워지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0) - 나의 역사관과 세계복음화(창45:4-8) 3/12/2017 March 1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창37:1-11) 3/5/2017
나의 자녀관이라는 말을 안 쓰고 후대관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후대”라는 말은 뒤를 잇는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고, 우리가 누린 이 복음의 축복을 다시 전달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 관한 말씀을 계속 나누는 이유가 뭐냐?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모든 잘못된 세계관으로 각인, 뿌리, 체질된 것을 바꾸라는 것이다. 모든 기준과 수준이 하나님이 아닌 나. 육신, 세상이다. 내 기준과 수준을 못 뛰어 넘는다. 영적인 축복은 다 놓치고 육신에 매여 산다. 결국 세상에 짓눌려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와 후대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이다(창3장).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기준대로 하려고 한다. 자식이 부모 수준을 못 넘어간다. 육신 기준이다(창6장). 내 몸에서 난 자식이어야 하고, 누구 피가 섞였냐에 묶여 산다. 그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예수 피가 섞여야 영원한 관계다. 마지막 때는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미워하고, 불순종할 것이라고 했다. 세상 기준이다(창11장),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게 만드냐가 기준이다. 그래서 좋은 학교 나와야 하고, 좋은 직장, 성공한 자리에 가놓고, 어느날 우울증, 성격 장애, 영적 문제에 빠진다(창1:2)
- 성도에게 있어 참된 자녀는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자녀가 있다.
1) 내 태의 열매를 통해 나온 자녀다.
① 분명히 시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다. 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기업이고 상급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자르고 헤메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선물 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믿음이 전달되어야 자녀가 더 잘 한다.
②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수준으로 키우면 안 된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기준, 하나님 수준, 하나님 목표로 키워야 한다. 눅2:52의 예수님이 성장이 모델이다. “그 키가 자라면서(육신적 건강), 지혜도 자라 고(인격적 성장),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영적 성숙),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았다(인간관계의 성숙)”고 했다.
2) 내가 현장에서 전도를 통해 살린 영적 자녀이다.
①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죽이신 이유이다. 현장에 영적 고아로 헤메는 자들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자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천국 가서 만나야 할 영원한 자녀들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전도해서 양육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유모가 자식을 살피듯이”(살전2:7), “아비가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듯이”(살전2:11) 한다고 고백했다.
내가 전도한 영혼들, 그들이 어릴수록 좋다. 내가 영혼 속에 담아 키우는 영적인 자녀들이다. 얼마나 있는가?
3) 나의 렘넌트 자녀, 곧 제자이다.
① 주일학교에서 교사를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렘넌트 자녀이고, 그리스도 제자로 자라가도록 도와야 한다.
교사를 안 해도 교회 안에서, 현장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렘넌트 자녀들이 있다. 나를 통해서 자라가는 그 렘넌트 제자들이 성도에게는 하나님 앞에 가서 누릴 영원한 면류관이고 상급이다(빌4:1).
② 실제로 이렇게 영적인 자녀의 모습으로 세워진 렘넌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모세가 세운 여호수아와 갈렙, 자식처럼 키운 렘넌트 제자들이었다. 바울은 디모데, 디도를 향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같은 믿음 안에 있는 나의 참 아들”(딛1:4)이라고 불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해 “아버지”라고 불렀고(왕하2:12), 엘리가 키운 사무엘, 사무엘이 기름부어 평생 기도로 지원한 다윗, 전부 렘넌트였고, 영적 자녀로 키운 것이다. 이런 렘넌트 자녀들을 키우는 것은 절대 축복이다.
-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자녀, 참 후대를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그들에게 반드시 심어 주어야 할 언약이다. 일단 각인부터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그것이 나온다.
본문의 요셉처럼 사실은 적어도 17세, 18세 이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다(2절). 17세의 요셉이라고 밝힌 이유다.
사실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다. 그때는 어떻게 할까? 뒤에서 생각하겠다.
세상 가서 어떤 일을 당해도 승리할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쓰실 축복과 응답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고, 택함 받은 렘넌트, 그루터기들이다(사6:13, 롬11:5)
하나님이 은혜로 택한 자, 끝까지 망할 수 없고, 하나님이 붙드실 것이다(빌1:6). 본문의 요셉을 포함해 렘넌트 7명이 이것을 체험했다. 노예로 필려 가고, 살인자로 도망 다니고, 사울왕에게 쫒겨 다녔지만 그 결론을 안다.
② 그들은 “남은 자”다(사10:21, 습2:7).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온 세상이 타락하고 저주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손에 붙잡혀 남을 자고, 남는 자고, 남길 자(자기 같은 사람 살릴 자)다.
③ 그들은 “흩어지는 자”이다(행1:8, 행11:19). 결국 남들이 못 가는 땅끝(재앙지대, 사각지대, 황금어장)으로 가고, 온 세상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 갈 사람들이다. 성경에 흩어진 자들이 왜 흩어졌는가 보라.
우리가 이 시대 로마 같은 미국에 와서 나그네처럼 인생을 사는 이유이다. 전도와 선교, 이거 심어주어야 한다. 2) 그들의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보여주고,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완전한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고 실패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부족한 내가 그래서 더 하나님 바라보고,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델이 되어주는 것이다.
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무엇을 보여주었겠는가? 많은 실패를 했지만 늘 제단 쌓고(하나님 바라보고 예 배에 승리한 사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창22장의 모리아 산 사건이 결론)
② 본문의 요셉이 17세에 형들에게 팔려가서 세상에서 승리했던 이유도 결국 아버지 야곱을 통해 본 것이다.
많은 실패를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로 바뀌는 성숙과 치유와 성화의 모델이다.
3) 우리 후대들의 참된 발판과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다.
세상적 권력의 배경, 경제적인 배경, 다 좋은 것이다. 진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① 기도 배경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한 하늘의 힘과 배경이 역사하는 것이다.
11절에 요셉이 꿈 얘기를 했을 때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으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
② 무엇을 마음에 두고 사는가?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기도 제목으로 붙잡았다”는 것이다.
상처가 아닌 감사를 담고, 거기에 말씀을 담고, 그것을 잠시라도 묵상하고 집중하는 것이 참된 기도다. 평안과 용기가 생긴다. 치유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내 기도와 말씀과 내 상황이 정확하게 맞고 균형이 잡힌다.
훗날 요셉을 만날 때 “나는 믿었다”고 고백한다(창45:28). 그 시간까지 야곱은 믿음의 기도로 승리한 것이다.
결론-하나님이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기준 속에서 후대를 살리고, 참된 세계복음화의 축복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창37:1-11) 3/5/2017 March 5,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