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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4)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마21:1-9) 4/9/2017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 날이다. 이 첫날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Palm Tree)를 흔들고 기뻐했다고 해서 종려 주일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을 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이유는 그 분이 “그 옛날 다윗의 영광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줄 왕”이라고 믿었다는 뜻이다.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가 맞다.
문제는 그렇게 오시는 왕이 왜 하필이면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오는가?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왕이라고 하면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황제처럼은 못해도 이 수준은 너무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오늘 종려주일에 꼭 붙잡아야 할 메시지고, 우리가 평생 반드시 누려야 할 축복이다.
- 말씀의 성취였다.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오시고, 무슨 일을 하실지 이미 말씀을 통해 주셨던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이 있는가? 말씀 붙잡고, 묵상하면서 거기서 그리스도를 체험해라(요5:39)
1) 시대마다 개인마다 문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답을 주셨고,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셨다.
①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고, 모든 뼈가 어그러지는 고통을 당했다고 했다.
그 속에서 나를 건지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시를 썼다(시22:1-22) 거기서 다윗은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것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면 죽으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예언이 된다.
② 욥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이 죽음의 자리에서 건지실 것을 믿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욥19:25-26).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훗날 그것이 그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예언이 된다.
③ 본문도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족속에게 짓밟힌 시간에 스가랴라는 선지자가 아픈 가슴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대적과 싸울 군대도 말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기를 이스라엘을 구원 할 참 왕이 오시는데, 말이 없어서 나귀를 타고 온다. 너무 초라해 보이는데, 그 분을 통해 전 세계 모든 민족 에게 평화가 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귀 타신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슥9:9-10)
2) 그래서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아니 평생에 걸쳐 어느 정도 말씀을 잡아야 하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만 그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아니다. 나만 겪는 거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성경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겪었고, 말씀으로 승리했고, 증거를 얻었다(히12:1-2)
① 그래서 성도는 말씀에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 찾아내고(시107:20), 그 말씀 붙잡고 힘을 얻고(시119:50),
그 말씀으로 계속 치유 받아야 한다(딤후3:16-17)). 그것을 매일 하는 것을 3오늘이라고 한다.
말씀을 붙잡고, 거기서 기도제목을 찾고, 말씀을 붙잡을 때 주신 축복을 가지고 나 같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② 성도는 모든 생각과 판단 기준이 말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내 기준(상처), 육신 기준, 세상 기준에 잡혀 평생 스스로 속고, 육신에 속고, 세상에 속다가 인생 끝난다. 창3장, 6장, 11장에 시작된 사단 작품이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를 붙잡고, 매순간 나를 속이는 사단과 대적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 내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죽으시는 예수님의 고난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왕이 나귀를 타는 것은 수치스런 것이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를 당한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이요 아들의 영광을 가진 그 분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받은 것이다(빌2:7-8)
히4:15에 보면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고통을 하는 체휼하신 분이라고 했다.
주님은 내 고난을, 내 아픔을, 내 눈물을, 내 가난을, 내 수치를 모를 것이다. 그렇게 속지마라. 다 겪으셨다.
2) 그래서 그리스도는 나의 오직, 나의 전부, 나의 24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고난 받으신 유일한 분이다. 유일성이다.
3) 그의 고난으로 우리가 당할 저주, 고통, 운명, 지옥 저주까지 끝난 것이다(사53:5). 그냥 말로만 한 것 아니다.
잠시 죽을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으나 모든 문제는 끝난 것이다(요19:30). 문제로 생각하니 더 큰 문제가 된다. 혹시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낮아지라. 그러나 알라.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고, 결론이 아니다(렘애3:33).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반드시 축복이 될 것이다.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라. 더 큰 영광이 오는 시간이 온다.
- 온 세상을 살리고 다스리실 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모습으로 오셔야 한다.
세상의 왕, 인간의 왕은 가짜 왕이고, 틀린 왕이고, 실패하는 왕이다. 그래도 세상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왕, 완전한 왕, 영원한 왕으로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세가지 왕권의 축복을 누리라.
1) 우리의 대적을 무너뜨린 승리의 왕권이다(고전15:25).
아무리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에 숨은 대적이 무너지지 않으면 끝없는 고통이다(요10:10)
아담이 그냥 실패한 것이 아니다. 가인이 동생을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살인으로 이끈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요8:44). 욥이 그냥 고냔을 당한 것이 아니다. 가룟 유다가 그냥 배신한 것이 아니다.
이 마귀의 일을 멸하신 분이 그리스도다(요일3:8). 그 분의 권세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눅10:19, 막16:17)
그래서 문제 올 때 더 이상 속지 말고 영적 싸움하라는 것이다. 특히 전도 현장에서 이 권세를 누려야 한다.
2) 모든 믿는 자 안에서 그 인생을 다스리는 통치의 왕권이다(사9:6)
내 마음, 생각, 의지도 내가 다스리기가 어렵다. 그 분의 나의 참 왕이 되어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하라.
그 분이 나의 참 왕이 되어 나를 다스릴 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고전14:17).
내가 그 분의 평화를 얻을 때 나도 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도 살리는 것이다.
3) 그리스도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려야 할 영원한 왕권이다(눅1:33)
거기서 우리가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계22:5)
그래서 짧은 인생과 세상에 마음 뺏기고 헤메지 말고, 위엣 것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골3:1-4).
그래서 보물을 썩고 사람에게 도적질 당하는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마6:19-20)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것은 영원한 축복, 보좌의 축복이다. 그것이 세상 살리는 참 써밋의 축복이다.
결론-종려 주일에 세가지 축복(말씀의 축복, 십자가 고난의 축복, 왕권의 축복)붙잡고, 모든 문제에서 승리하고, 참증인으로 세상앞에 서는 세계복음화의 주역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4) -나귀를 타신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마21:1-9) 4/9/2017 April 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3) - 나의 성공관과 세계복음화(신28:1-10) 4/2/2017
사람은 누구나 성공에 대한 본능이 있다고 한다. 심리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축복해주면 그 욕구가 채워지면서 더 잘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축복하실 때 이런 본능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창1:27-28).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세상을 다스리던 존재였다. 창3장에 인간이 타락하면서 이 축복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 분명히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사단 역사다.
가짜 성공이 뭔가?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창3장에 마귀가 시작한 일이다(요8:44).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면서 한 거짓말이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유혹을 한 것이다. 나중에 무너질 것 모르고 성공을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하며 사는지 모른다.
틀린 성공은 무엇인가? 오직 육신의 기준, 물질의 기준으로만 성공을 판단하는 것이다. 창6장에 사람들이 보는 외모, 일류 대학, 일류직장에 속고 있다. 신자들조차 진짜 하나님 축복을 받게 만드는 영성과 인성은 나중이다.
그 가짜 성공, 틀린 성공의 결과가 실패한 성공이다. 창11장의 바벨탑처럼 어느날 무너지는 것이다. 성공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날 우울증, 약물 중독, 자살에 이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개발 도상국 중에 한국은 더 심각하다.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다 보니 서로 죽여야 한다. 대통령이 되고도 감옥 가고, 자살까지 간 사람들이 많다.
지금 개인을 비롯해서 사회가 이 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으로 달려가고 있다. 거기에 선두 주자가 뉴에이지, 프리메이슨, 유대주의 사상이다. 엘리뜨주의, 이기주의, 패권주의로 세상에는 고통과 재앙이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성공에 각인 뿌리 체질된 나를 바꾸고, 그들을 살려낼 만큼의 참 성공자의 축복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 그 해답은 복음 밖에 없다.
창3:15에 약속한 “여인의 후손”, 창6:14의 “방주의 언약”, 창12:1-4에 바벨탑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나 안 언약”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이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성공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본문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이다.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축복이다.
1) 참 성공이 어디서 오는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이다.
본문에 계속 나오는 단어가 “나 여호와가 축복하겠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다.
① 그 분이 뭘 하셨는가? 아담의 원죄와 우리의 죄로 저주에 빠진 우리를 해방 시키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롬 8:1-2, 갈3:14).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던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신 것이다(롬3:23, 요14:6)
내 인생을 실패로, 고통으로 끌고 가는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신 것이다(창3:15, 요일3:8)
② 그리스도를 만난 순간 나는 그 분의 영원한 계획 속에 들어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다(빌3:12). 정말 깨달으면 성공을 위해 애쓸 이유도 없다. 되어지는 것이다.
2) 참 성공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 그리스도로 각인 뿌리 체질되도록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라는 것이다.
①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할 때 그 안에 아버지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했다.
우리가 말씀을 받고, 묵상할 때 똑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② 1절에 “내가 주는 말씀을 붙잡으라”고 했고, 2절에 말씀을 순종하라고 했다. 너를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고 모든 복이 임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말씀 붙잡을 때 세상을 이기는 용기와 힘도 생기고(시107:20)
원수와 스승과 노인보다 더한 지혜를 얻고(시109:98-100), 그때 천사가 동원되고 흑암도 깨진다(시103:20-21)
반드시 말씀을 정리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하고, 스스로 포럼하는 시간을 가지면 무조건 승리한다(수1:8)
3) 참 성공의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에게 참 성공을 주셔야 하는가?
① 나를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워야 하고, 나를 통해 저주와 고통과 재앙에 빠진 세상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0절에 “너를 선택한 하나님을 보고 만민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②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아브라함(창12:3), 이삭(창26:4), 야곱(창28:14), 요셉(창45:5)에게 계속해 강조해주신 언약이다. 그것이 전도와 선교의 언약이다.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마28:18-20).
우리가 선교지를 놓고 기도하며 헌금하고, 다민족 사역을 하고, 단기 선교를 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 참 성공을 위해 그 복음을 적용하는 써밋 교육의 7가지 방법이 있다.
불신자도 성공 교육의 모델을 유대인 교육으로 본다. 복음은 그 이상이다. 7가지 키를 붙잡고 복음 확신가지라.
1) 유대인들은 “탈무드, 토라, 쉐마”를 가지고 지혜 교육, 선민 사상, 각인 교육을 시켰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의 흐름을 보며, 모든 문제를 끝낸 “그리스도를 만나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요5:39).
2) 유대인들은 많은 “위인전”을 읽고 성공자 강의를 들어 모델을 삼고 동일시(Identification) 하게 한다.
혹시 좋은 강의를 못 들어도 우리에게는 “렘넌트 7명의 모델”이 있다. 모든 문제, 갈등, 죽을 것 같은 환경에서 도 그 렘넌트에게 역사하신 그리스도를 보며, 그 분이 지금 나의 하나님임을 붙잡으면 된다.
3) 유대인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라는 세 절기를 큰 축제로 지키면서도 그 속에 영적인 축복을 놓쳤다.
우리는 내 영혼 속에 그 절기의 주인으로 오신 “그리스도”(행1:1), 그 분이 함께 할 때 누릴 “하나님의 나라” (행1:3). 세상 살릴 “성령의 능력”(행1:8)을 붙잡고 가는 것이다.
4) 유대인들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에 잡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지금 살아계신 “주일”(주 의 날, 계1:10)의 축복을 누리고, 일주일 전부가 주께서 함께 하고 축복하시는 날인 줄 붙잡고 가는 것이다.
5) 유대인들은 13세가 되면 “율법 두루마리”를 받으며 대단한 성인식을 한다. 우리는 그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 도를 “오직”으로 붙잡고, 매주 세상을 살리기 위해 가는 선교사 파송식을 하는 것이다.
6) 유대인들은 “유대인 회당”에 모여 유대주의 엘리뜨 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는 렘넌트들에게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체험하도록 돕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은 사람은 전문성 정도가 아니다. 유일성이다. 그 축복으로 세계복음화 한 것이다.
7) 프리메이슨처럼 곳곳마다 “랏지”(Lodge)를 세워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꾸고, 치유하고, 살리는 “재창조의 역사”를 믿고 가는 것이다.
결론-가짜 성공, 틀린 성공, 실패한 성공자의 각인과 뿌리와 체질을 버리는 집중을 해야 한다. 세상 기준으로 성공 안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성공자이다. 참 성공자의 언약을 붙잡고 세상을 바꾸고, 치유하고, 살리는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3) - 나의 성공관과 세계복음화(신28:1-10) 4/2/2017 April 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2) - 나의 교회관과 세계복음화(마16:13-19) 3/26/2017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려야 할 첫번째 축복이 뭐냐? 교회의 축복이다. 그것이 본문이다.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18절)
계속되는 세상의 문제와 고통에서 정말 힘을 얻고 응답 받는 비밀이 뭐냐? 참된 교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성도가 교회 축복 못 누리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골1:24), “하나님의 집”(히3:6)라고 했다. 몸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실제로 교회들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전 세계교인수가 감소되고, 여러 갈등으로 교회가 분열해 교인이 이동하고, 무엇보다 후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 하나님이 다락방 전도 운동을 통해 교회를 살리고, 복음에 생명을 건 제자들이 일어나고, 후대 살리는 렘넌트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 성령의 역사이고, 시대의 축복이다.
- 그러면 교회가 왜 무너지고 있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으나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계12:17에 마지막 사단의 공격 목표가 교회(“여자의 남은 자손”)라고 했다. 그 사단의 구체적인 전략이 뭐냐?
1) 핍박이나 개인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다. 계시록에 보면 계속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교회는 핍박이나 어려움이 올 때 더 강해졌다. 개인도 그 때 더 믿음이 연단된다(약1:2-4)
2) 더 위험한 전략은 교회 내부 안에 있는 갈등이다. 교회 안의 갈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교회 성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이 목회자의 리더쉽과 인격, 영성이라고 한다. 둘째는 그 교회 중직자들의 수준을 지적한다. 나머지가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결국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사단의 전략이다. 사단이 준 각인, 뿌리, 체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① 목사는 목사대로, 중직자는 중직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내 기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창3:5).
내 생각, 내 경험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가 아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것이고, 나하고 관계 없으면 무관심하는 정도가 아니다. “날 뺐다”, “무시했다”,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싸움이 난다.
② 육신 기준이다. 네피림 시대에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영적으로는 죽은 자가 되었다(창6:4)
“더 이상 하나님의 신이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령이 거하지 않고,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계3장의 사데 교회). 교인 숫자, 재정 규모등이 교회 성장의 기준이다. 돈 없으면 힘 빠지고, 돈 생기 면 힘나는 수준이다. 반대로 돈이 있어도 계산이 앞서 헌금도 잘 안한다. 정말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시고, 그 분으로 충만하면 계산 수준이 아니다. 내 인생 전부가 주님의 것이고, 돈 버는 이유도 그 분을 위해서이다.
③ 세상 기준이다. 교회도 사람 차별한다는 말이 나온다. 교회도 실수를 하지만 자기 열등감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중요한 직분을 가진 사람일수록 낮아지고, 섬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막10:43-45)
3) 이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한, 더 근본적인 사단의 전략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교회에서 그리스도만 선포하지 못하게 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 열심, 헌신, 다 하는데, 그리스도의 뜻도 모르는 성도가 온 세상에 가득 찼다.
① 본문에 예수님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율법주의), 엘리야(신비주의), 예레미야(박애주의), 선지자(지식주의)로 이해하는 교회가 꽉 차 있다.
② 이때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시고, 나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참 제사장(롬8:1-2),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 데 상관없이 인생을 도적질하는 사단을 박 살내신 참 왕(요일3:8),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영원한 길이 되신 참 선지자(요14:6)로 고백한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이다(요19:30). 어떤 문제도 문제 아니다. 이 결론이 안 나면 계속 속는 것이다.
③ 그때 주님이 그리스도를 깨달은 이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못 깨닫게 만드는 교회가 적그리스도이고(요일2:22, 4:3), 이단 중에 이단이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는 순간 사단은 모든 것을 다하고 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 그렇게 그리스도가 세우시겠다고 하신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세 종류의 교회를 누려야 한다.
1) “내 안에 있는 교회”의 축복이다(개인 교회)
① 고전3:16의 축복이다. 렘넌트 7명,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든 문제, 상황에서 이 축복을 누린 것이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 것이다. 나와 동행하고, 나를 인도하고,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심을 누리는 것이다.
② 그것을 누리는 비밀이 다섯가지 참된 기도의 비밀이다. 첫째, 감사로 누리라(빌4:6-7). 그 분이 내 안에 함께 한 것을 감사하라. 둘째, 말씀을 붙잡으라(시103:20). 거기서 하나님 소리를 듣고, 그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셋째, 묵상하며 내 과거, 현재, 미래 속에 적용하라(요15:7). 넷째, 반드시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평안과 힘과 용기가 생긴다(히4:12). 다섯째, 그때 더 이상 내 삶이 흔들리고, 치우치 않고,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시1:3).
2) 그러면 꼭 예배당에 가야 하는가? 그것이 마18:19-20의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교회”의 축복이다(성전 교회)
① “두 사람이 합심하여 땅에서 무엇을 구하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이 언약을 붙잡고, 예배당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훈련하고, 힘을 얻어서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다.
② “두 세사람이 내 이름(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들을 성전에 못 모이게 해야 한다. 혼자 있게 해놓고 공격하는 것이다(히10:25)
마귀도 그룹을 만들어 다닌다(계3:9의 사단의 회 또는 교회). 성도가 모일 때 이 사단의 회가 깨지는 것이다.
3) 함께 모여 힘을 얻고, 이제 세상으로 가서 누리는 “흩어지는 교회”의 축복이다(현장 교회, 평일교회, 지교회)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 것을 깨닫고 누린다면 내가 머문 자리(가정, 학교, 직장)가 곧 교회이다. 흑암 역사하는 그 곳에서 파수꾼의 사명 감당해야 한다. 행2장에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① 다락방 운동이 뭐냐? 그리스도를 깨닫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참 교회의 축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현장 운동)
거기서 불신자를 전도하니 “전도 운동”이라고 하고, 말씀을 나누어 힘을 얻게 되니 “말씀 운동”이라고 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전도에 생명 건 제자들을 찾아 훈련시키니 “제자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 내 집이 가정 교회가 되고, 내 직장이 전문 교회가 되고, 내 지역에 지교회가 시작되는 기도를 하라.
이 축복을 가지고, 나 같은 사람 살리고, 곳곳의 현장 살리는 것을 제2 RUTC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론-흑암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참 교회의 축복을 누리고, 꼭 세상 살리는 증인으로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2) - 나의 교회관과 세계복음화(마16:13-19) 3/26/2017 March 2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1) - 나의 자아관과 세계복음화(벧전2:4-9) 3/19/2017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창3장 아래 있는 세상이기에 당연하고, 온 땅에 흑암, 저주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 속에 있는 개인도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 고통이 계속 되고, 세상에 눌려 살다보니 어느날 “내가 없다”.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다(실종된 나). 그래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한다(방황하는 나). 그러다가 잘못된 것에 빠져서 집착을 하고, 중독에 빠진다(사로잡힌 나)
여기에 여러 종교 단체나 뉴에이지, 프리메이슨 같은 단제들이 답을 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명상운동이다. “세계의 엘리뜨는 왜 명상을 하는가”라는 책도 나올 정도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다. “나를 찾으라”깊은 명상을 통해서 “초월적인 나”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창3:5에 마귀가 한 소리이다. “하나님 없는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되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속아 완전히 무너진다.
하나님은 여기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그리스도의 답을 주신 것이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버려진 돌” 같았는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산 돌”이 되셨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를 돌에 비유를 했냐?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데, 내가 어떤 기초 위에 집을 짓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5절에 내 인생이 그 안에서 “신령한 집”과 같이 만들어져 갈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참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나를 찾으면 된다. 우리는 세가지로 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아관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구원 받은 나”, “재 창조된 나”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와 고통을 당하면서 “다 끝났다”고 선언하셨다(요19:30).
그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는 사단, 운명, 저주(개인의 저주, 가문의 저주, 영원한 지옥 저주)에서 빠져 나왔다.
내 인생의 근본을 바꾼 것이다. 그것을 “구원 받았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후5:17)라고 하는 것이다.
1) 이제 내 안에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하신 것이다(요5:24, 요일5:11-12)
그 분의 생명이 함께 하신다는 말은 그 분이 성령으로 지금 내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임마누엘).
그 자체로 나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요 사랑스런 자이다(사43:4, 마18:10). 이제는 그 분이 함께 해서 그분 이 붙잡고 있는 인생이다. 6절에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 이제 내 인생이 그 분의 계획 속에 있는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라고 했다. 아무리 부족하고 모자라도 그 분이 택하여 쓰시기로 작정한 인생이다.
아무나 택하고, 실수로 날 택하신 것이 아니다. 영세 전에 택하여 자녀 삼으셨다고 했다(엡1:3-5).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절대 계획, 절대 시간표 잡고 거기서 믿음 찾아내고, 감사해보라.
3) 구원 받은 순간 내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가 그 분의 시간표 속에 있다는 사실을 정말 믿어야 한다.
나의 과거도 하나님이 아셨고,허락하셨다. 그래서 상처로 잡으면 속는 것이다. 나의 오늘도 그분이 허락하셨다. 오늘을 누리고, 감사 속에 살라. 무조건 열심히 산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대충해도 된다. 반대로 해서 문제다. 미래는 전부 증거가 될 것이다. 다 양보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라
- “그리스도가 주신 것을 가진 나”이다.
늘 하나님 잃어버린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보니 나는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다.
1)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그 분이 내 안에 계시니 그 분의 권세가 내가 누릴 축복이 된 것이다.
왕권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덮은 어둠의 권세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권세이다. 그래서 세상 두려워 말고, 마귀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이다. 제사장권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권세다. 싸움은 사단하고 하고(엡6:12). 핍박하는 자도 축복하는 인생을 살라(롬12:14). 그 축복이 내게로 올 것이라고 했다(시35:13)
2)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로 기도할 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하나님 자녀의 7가지 특권이다.
성령이 동행하는 특권이다(고전3:16).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다(요16:13).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이다(행1:8). 천사가 동원되는 특권이다(히1:14).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는 특권이다(눅10:19). 천국 배경을 누리는 특권이다(빌3:20). 세상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특권이다(마28:18-20)
이 7가지 주어진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기도로 누리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고후6:9-10)
3) 거기에 그 분이 은혜로 주시는 각자의 달란트, 은사, 직분이 있다(롬12:3-8, 엡4:7-12)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아무리 작아도 작은 것이 아니다.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봐서 그렇다.
그것이 비록 작은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그 분의 이름으로,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때 능력이 나타난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오직(오직 그 분의 영광을 위해)이고, 유일성(그 분이 주시는 축복)이고, 재창조(그것으로 세상 살리는 역사)의 축복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데 무슨 능력이 체험되고, 나타나겠는가?
- 그래서 마지막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가 보내시는 나”이다.
본문에 우리를 향해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다. 그 분이 다스리고, 그 분이 쓰시기로 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중요한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을 부를 때 “Honorable"이라는 호칭을 붙힌다.
사43:4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너를 보배롭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겼다“. 꼭 세가지 붙잡으라.
1) 우리는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다(고후5:20)
세상이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그 능력을 보는 것이다. 나는 부족하나 내 안의 그 분은 부족하지 않다.
2) 나는 어두움에 묶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주어야 할 전도자이다(9절하)
분명히 자기를 잃어버리고, 흑암 속에 방황하고, 허무한 것에 집착하고 있는 영혼들이 내 옆에 있다. 자기를 찾 는 그 길이 그리스도라는 답만 주면 된다(요14:6). 그리스도의 답을 주는 데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다.
3) 나는 분명히 세상과 세계를 살릴 선교사이다(행1:8)
요셉이 노예로 간 것이 아니다. 애굽을 살릴 선교사로 간 것이다. 초대 교회가 핍박을 받아 온 세상에 흩어졌는 데 그냥 흩어진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로, 아시아로, 마게도니아로, 로마까지 살리는 자로 흩어진 것이다.
그것이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는 무조건 선교사이다. 세계화된 사람들이다. 우리가 가진 메시지, 기능, 달 란트,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민족 살리고, 세상 살리는 선교사로 부름 받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결론-내가 누군지를 찾아서 기도로 들어 가보라. 감사 회복하고, 말씀의 언약 붙잡고, 묵상해보라. 어떤 상처도 치유 받고, 정확한 응답이 새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찾아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임받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1) - 나의 자아관과 세계복음화(벧전2:4-9) 3/19/2017 March 1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0) - 나의 역사관과 세계복음화(창45:4-8) 3/12/2017
사람은 흔적을 남기고 산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역사로 남는다. 그래서 작은 것도 작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중에는 역사로 기억할 가치도 없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기억할 정도의 영원한 역사가 될 것도 있다.
흔히 역사를 과거와의 대화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역사를 보는 눈이다. 두 종류의 역사관이 흘러가고 있다.
첫째는 인간 중심의 역사관이다. 인간 기준으로만 역사를 보는 것인데, 결국 그것이 창3장, 6장, 11장의 작품이다.
창3장은 자기 중심이다. 모든 사건과 역사를 자기 기준으로 본다. 모든 것이 이기주의가 되고, 세상은 고통이 된다. 상처와 고통이 되고, 이기주의가 된다. 창6장은 육신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인류가 당한 고통의 배후 속에 어떤 사단의 역사가 있었는지를 못 보는 것이다. 당연히 역사를 공부해도 반복되는 실패와 저주에 답을 찾지 못한다.
창11장은 세상의 기준이고, 성공한 자, 힘 있는 자의 기준이다. 힘 있는 자, 힘 있는 나라 중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사도 왜곡시켜 만들고 해석한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민족주의, 패권주의다.
둘째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이다. 단순히 성경의 역사, 교회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눈(영적인 눈)으로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끝없이 타락하고, 분쟁하고, 고통과 저주가 더해가는 세상 역사에 답이 보이고, 결론이 보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래야 하나님 사람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작은 일을 하고도 세상 살리고 역사를 바꿀 만큼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시대적 응답, 역사적 응답)
본문의 요셉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애굽이라는 나라가 왜 존재하는지, 그 곳에 하나님이 왜 자기를 보내셨는지에 대한 답이 있었다. 이 시대 강대국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답이 있어야 한다.
노예로 팔려왔고, 억울하게 감옥을 갔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알았다. 나라의 미래에 대한 답을 줄 정도였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고, 오늘을 승리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이 중요하다.
-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주권이라는 말은 모든 것의 소유권과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기준, 육신 기준, 세상 기준으로 보니까 이해가 안 되고, 답도 못 찾는다. 그래서 “History"는 ”His Story"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1) 대상29:11-12의 다윗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천지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고, 모든 것이 그 분께로 온다는 것이다(부자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도)
성공하려고, 부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리고 무너진다. 그 분이 되어지게 해야 되는 것이다(참 성공)
이것을 놓치고, 욕심을 위해 싸우고 몸부림한 것이 인류 역사다(그래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성공을 이루고 나면 롬11:36의 바울처럼 모든 것을 그 분께 영광 돌리면 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히 있으리로다 아멘”
3)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개인과 가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라.
요셉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승리한 비밀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 그 이유가 뭘까?
- 하나님의 절대 계획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무엇일까? 모든 세상, 민족, 인생이 구원 받는 것이다. 영세 전에 그 길을 준비하셨고,
역사를 통해 계속 계시(드러내 주심)해주시다가 마침내 이 땅에 오신 것이다(롬16:25-26). 그 분이 그리스도다.
1) 끝없이 타락해가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서 왜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했는지의 절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나 자신과 인간 스스로의 힘이 안 되니까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끝없는 타락과 고통과 저주와 재앙을 보면서, 나 개인의 문제를 보면서 “정말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① 세상 역사의 시간을 B.C(그리스도 오시기 전)과 A.D(그리스도 오신 이후)로 나누는 이유도 이것이다.
인류 역사의 큰 분기점이 언제였냐?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와 오신 이후였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다시 오 심으로 인류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저주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② 나 개인의 인생 역사도 구원 중심(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만나기 전의 내 인생, 그리스도가 참 나의 그리스도가 된 이후의 내 인생, 이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남은 인생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나는 그리스도께 붙잡혀 쓰임 받을 인생이다(빌3:12)
2)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개인, 나라. 민족은 하나님의 절대 섭리(Providence) 속에 있다.
그 말은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다스리시고, 축복해 가신다는 뜻이다. 그들을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① 구약의 모든 나라들이 망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언약) 속에 있는 이스라엘은 망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만 의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속에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② 개인도 같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이루어가시고(빌1:6),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아 갈 수가 없다(요10:28). 이유는 나를 세상 살릴 증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요셉이 그것을 붙잡은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픔을 통과시키며 생명을 살리고(5절), 세상과 후대를 살릴 자로(7절) 세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붙잡은 것이다.
- 하나님의 절대 시간표 속에서 역사를 보아야 한다.
마24:14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했다. 그 절대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시간표 가지고 개인과 가정, 교회, 국가를 택하여 쓰고 계신다. 그 시간표를 보는 눈이 열릴 때 참 응답 받는다. 1) 한국과 미국이 어렵다고 한다. 아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전도와 선교 때문에 한국과 미국을 선택해 쓰고 있다. 한국은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아주 작은 나라다. 미국은 아주 짧은 역사다. 그런데 쓰고 계신 것이다. 계속 전도 와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어떤 일이 생겨도 문제없다. 오히려 더 큰 증거가 되게 하실 것이다.
2) 개인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런 환경에, 이 자리에 왔는지를 전도 중심으로 풀어보라. 하나님이 요셉을 보 디발의 집을 살리기 위해 노예로 보냈다. 감옥에서 애굽 관리들을 살리기 위해 죄수로 보냈다. 왕궁에 가서는 세계를 살리는 일을 한 것이다. 나 때문에 복음 받고, 살아야 할 사람이 거기 있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붙잡을 영원한 시간표가 있다. 세상의 역사는 지나가고, 불로 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고전3:13).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그 날에 기억될 역사이다. 작은 일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감사로 하고, 오직 하나님 영 광을 위해 하면 하나님이 기억하는 불멸의 역사, 불멸의 작품이 된다. 요셉은 노예 일부터 그렇게 한 것이다.
결론-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역사다. 하나님의 주권, 계획, 시간표로 보고, 그 현장 살리는 참 증인, 전도자로 세워지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10) - 나의 역사관과 세계복음화(창45:4-8) 3/12/2017 March 1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창37:1-11) 3/5/2017
나의 자녀관이라는 말을 안 쓰고 후대관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후대”라는 말은 뒤를 잇는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고, 우리가 누린 이 복음의 축복을 다시 전달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 관한 말씀을 계속 나누는 이유가 뭐냐? 창3장, 6장, 11장에서 시작된 모든 잘못된 세계관으로 각인, 뿌리, 체질된 것을 바꾸라는 것이다. 모든 기준과 수준이 하나님이 아닌 나. 육신, 세상이다. 내 기준과 수준을 못 뛰어 넘는다. 영적인 축복은 다 놓치고 육신에 매여 산다. 결국 세상에 짓눌려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와 후대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이다(창3장).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기준대로 하려고 한다. 자식이 부모 수준을 못 넘어간다. 육신 기준이다(창6장). 내 몸에서 난 자식이어야 하고, 누구 피가 섞였냐에 묶여 산다. 그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예수 피가 섞여야 영원한 관계다. 마지막 때는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미워하고, 불순종할 것이라고 했다. 세상 기준이다(창11장),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게 만드냐가 기준이다. 그래서 좋은 학교 나와야 하고, 좋은 직장, 성공한 자리에 가놓고, 어느날 우울증, 성격 장애, 영적 문제에 빠진다(창1:2)
- 성도에게 있어 참된 자녀는 누구이며,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 종류의 자녀가 있다.
1) 내 태의 열매를 통해 나온 자녀다.
① 분명히 시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했다. 자식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한다. 기업이고 상급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자르고 헤메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선물 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가올 축복의 미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믿음이 전달되어야 자녀가 더 잘 한다.
② 내 기준, 육신 기준, 세상 수준으로 키우면 안 된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기준, 하나님 수준, 하나님 목표로 키워야 한다. 눅2:52의 예수님이 성장이 모델이다. “그 키가 자라면서(육신적 건강), 지혜도 자라 고(인격적 성장),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고(영적 성숙),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았다(인간관계의 성숙)”고 했다.
2) 내가 현장에서 전도를 통해 살린 영적 자녀이다.
①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죽이신 이유이다. 현장에 영적 고아로 헤메는 자들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자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천국 가서 만나야 할 영원한 자녀들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전도해서 양육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유모가 자식을 살피듯이”(살전2:7), “아비가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듯이”(살전2:11) 한다고 고백했다.
내가 전도한 영혼들, 그들이 어릴수록 좋다. 내가 영혼 속에 담아 키우는 영적인 자녀들이다. 얼마나 있는가?
3) 나의 렘넌트 자녀, 곧 제자이다.
① 주일학교에서 교사를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렘넌트 자녀이고, 그리스도 제자로 자라가도록 도와야 한다.
교사를 안 해도 교회 안에서, 현장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렘넌트 자녀들이 있다. 나를 통해서 자라가는 그 렘넌트 제자들이 성도에게는 하나님 앞에 가서 누릴 영원한 면류관이고 상급이다(빌4:1).
② 실제로 이렇게 영적인 자녀의 모습으로 세워진 렘넌트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들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모세가 세운 여호수아와 갈렙, 자식처럼 키운 렘넌트 제자들이었다. 바울은 디모데, 디도를 향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 “사랑하는 아들”(딤후1:2), “같은 믿음 안에 있는 나의 참 아들”(딛1:4)이라고 불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해 “아버지”라고 불렀고(왕하2:12), 엘리가 키운 사무엘, 사무엘이 기름부어 평생 기도로 지원한 다윗, 전부 렘넌트였고, 영적 자녀로 키운 것이다. 이런 렘넌트 자녀들을 키우는 것은 절대 축복이다.
-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자녀, 참 후대를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그들에게 반드시 심어 주어야 할 언약이다. 일단 각인부터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그것이 나온다.
본문의 요셉처럼 사실은 적어도 17세, 18세 이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다(2절). 17세의 요셉이라고 밝힌 이유다.
사실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다. 그때는 어떻게 할까? 뒤에서 생각하겠다.
세상 가서 어떤 일을 당해도 승리할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쓰실 축복과 응답의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고, 택함 받은 렘넌트, 그루터기들이다(사6:13, 롬11:5)
하나님이 은혜로 택한 자, 끝까지 망할 수 없고, 하나님이 붙드실 것이다(빌1:6). 본문의 요셉을 포함해 렘넌트 7명이 이것을 체험했다. 노예로 필려 가고, 살인자로 도망 다니고, 사울왕에게 쫒겨 다녔지만 그 결론을 안다.
② 그들은 “남은 자”다(사10:21, 습2:7).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온 세상이 타락하고 저주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손에 붙잡혀 남을 자고, 남는 자고, 남길 자(자기 같은 사람 살릴 자)다.
③ 그들은 “흩어지는 자”이다(행1:8, 행11:19). 결국 남들이 못 가는 땅끝(재앙지대, 사각지대, 황금어장)으로 가고, 온 세상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 갈 사람들이다. 성경에 흩어진 자들이 왜 흩어졌는가 보라.
우리가 이 시대 로마 같은 미국에 와서 나그네처럼 인생을 사는 이유이다. 전도와 선교, 이거 심어주어야 한다. 2) 그들의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보여주고,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완전한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고 실패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부족한 내가 그래서 더 하나님 바라보고,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델이 되어주는 것이다.
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무엇을 보여주었겠는가? 많은 실패를 했지만 늘 제단 쌓고(하나님 바라보고 예 배에 승리한 사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창22장의 모리아 산 사건이 결론)
② 본문의 요셉이 17세에 형들에게 팔려가서 세상에서 승리했던 이유도 결국 아버지 야곱을 통해 본 것이다.
많은 실패를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로 바뀌는 성숙과 치유와 성화의 모델이다.
3) 우리 후대들의 참된 발판과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다.
세상적 권력의 배경, 경제적인 배경, 다 좋은 것이다. 진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① 기도 배경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한 하늘의 힘과 배경이 역사하는 것이다.
11절에 요셉이 꿈 얘기를 했을 때 형들은 요셉을 시기했으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
② 무엇을 마음에 두고 사는가?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기도 제목으로 붙잡았다”는 것이다.
상처가 아닌 감사를 담고, 거기에 말씀을 담고, 그것을 잠시라도 묵상하고 집중하는 것이 참된 기도다. 평안과 용기가 생긴다. 치유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내 기도와 말씀과 내 상황이 정확하게 맞고 균형이 잡힌다.
훗날 요셉을 만날 때 “나는 믿었다”고 고백한다(창45:28). 그 시간까지 야곱은 믿음의 기도로 승리한 것이다.
결론-하나님이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기준 속에서 후대를 살리고, 참된 세계복음화의 축복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9) - 나의 후대관과 세계복음화(창37:1-11) 3/5/2017 March 5,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8) - 나의 직업관과 세계복음화(창39:1-6) 2/26/2017
제21차 세계 선교 대회는 끝났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응답과 축복이 시작될 줄로 믿는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응답과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직업관과 세계복음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붙잡고자 한다.
우리가 “직업”이라고 하면 내 삶의 자리에서 활동하는 모든 것을 직업이라고 한다. 우리가 활동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생명은 끝난 것이다. 우리는 꼭 정해진 월급을 받아야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가정 주부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일을 하고, 그래야 한다. 그것을 가사일(housework)이라고 한다. 여인들이 하는 일과 그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잠언31장에 “현숙한 여인”이란 표현으로 잘 나와 있다. 그 자식들은 훗날에 일어나 감사하고, 남편은 그 아내를 칭찬하고, 그 손의 열매로 인해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해야 하는 활동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학생의 직업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업관을 가지고 간다면 하나님은 내 하는 일, 내 있는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나를 증인으로 세우실 것이다. 본문의 요셉을 통해 그것을 보려고 한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업관은 무엇인가? 성경의 직업관의 시작은 창1:27-28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축복이 바로 이 직업이다.
1) 어느 정도 다르고 틀리고 망할 기준을 가지고 사냐? 창3장, 6장, 11장의 영적 문제가 직업관에까지 들어왔다.
① 창3장에 인간이 타락한 이후 직업은 죽도록 일하고 고생해야 하는 “노동”(Labor)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힘들게 일했으니 늙어서는 쉬라고 은퇴도 시킨다.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구원받은 자에게 직업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원래대로 축복이다. 쉬겠다 고 은퇴할 이유도 없다. 그런다고 쉬는 것이 아니다. 참된 쉼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마11:28)
② 창6장의 네피림 시대에 사람들은 육신의 존재로만 전락했다. 그래서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좀더 육신적인 행복을 위해서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곳으로 여행 다니는 것이 전부다. 틀린 것이다.
③ 창11장의 바벨탑 시대에 인간은 오직 세상 중심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직업도 성공을 이루는 도구다. 남에게 박수 받고, 사람 위에 존재하고, 성공을 위해서 뭐든지 한다. 그리고 허무하게 망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이 불신자의 직업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① 우리가 불신자 기준과 수준으로 직업을 생각해서 그렇지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요셉이 노예가 되었다. 누가 허락한 것인가? 이것을 저주로, 노동으로만 알았다면 요셉은 비참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로 붙잡은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 하나님이 허락한 일로 붙잡아야 한다.
②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내가 하는 모든 일, 그것이 노예의 일이라고 해도 거기에 하나님의 증거가 온다.
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니 그 주인이 요셉이 하는 범사에 형통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5절에는 주인이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긴 후부터 하나님이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축복하셨다고 했다. 나의 지금의 일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③ 하나님이 우리의 직업(학업, 사업)을 그렇게 축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참된 구원의 축복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전도요 세계복음화이다.
나중에 왕이 인정을 한다. “이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자를 어떻게 얻겠냐?”(창41:38). 한 나라를 살렸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하는 세상 일은 임시 업무요 부업이고, 전도자로 사는 것이 참 직업이고, 주업이다.
-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내 직업과 내 일터에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1) 평상시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신 나를 찾으라.
① 어떤 환경,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과 능력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붙잡으라는 말이다.
거기서 참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뭘 해도 행복하지 않다. 좋은 일이 생겨도 잠깐의 즐거 움일 뿐 진짜 행복 아니다. 요셉은 노예로 살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 사실로 행복을 찾은 것이다.
② 이 행복을 체험하는 비밀이 기도다. 다섯가지의 참된 기도의 키가 있다. 하루에 잠깐만이라도 해야 한다.
내가 구원 받은 사실을 생각하며 감사하라. 나를 해방시키고, 복의 근원 삼으시고, 나와 함께 하신 것이다.
그때 말씀을 들으면 깨달아진다. 그 감사의 마음과 주신 말씀을 붙잡고 잠깐이라도 묵상을 하며 집중해보라.
반드시 마음, 생각이 바뀌면서 평안이 오고 치유가 된다. 나의 모든 일이 말씀과 맞고, 삶의 균형이 집힌다.
③ 이때 발견되는 것이 나의 달란트(은사)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발견되고, 그것이 전문성이 되는 것이다. 영어의 “Profession"이란 말은 이 때 쓰는 것이다. 열심히 해서 전문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운데 발견된 달란트가 참된 전문성이 된다. 하나님이 계속 축복하시면 유일성이 된다.
2) 사단과 세상에 빼앗겼던 나의 것을 찾으라.
① 세상에는 나보다 잘 나고, 육신적으로 화려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 속지 마라.
결국 창3, 6, 11장의 결과일 뿐이다. 부러워하지 마라. 결국 창1:2의 흑암, 혼돈, 공허 밖에는 남을 것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복음으로 그들을 살려 내야 한다. 성공해야 할 이유는 거기서 성공자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② 다만 이제는 사단에게 빼앗긴 것을 찾아 세상을 살리겠다는 천명을 붙잡고 도전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까지 전부 뉴에이지와 프리메이슨에게 빼앗겼고, 그 결과로 세상은 우상, 흑암, 저주로 가 득한 것이다. 겁내지 말고 담대히 가는 것이다. 거기서 그리스도를 설명하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가면 된다.
영어의 직업이란 단어 중에 “Occupation"이란 단어는 여기에 맞는 의미이다.
3) 불신자들이 가지 못하는 나의 현장을 찾으라. 그곳이 버려진 곳일 수 있고, 행1:8의 땅 끝일 수 있다.
① 정확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우리만 할 수 있는 그 일, 그 장소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하는 일을 천직(“Vocation”)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피하는 재앙 지대, 사람들이 못 보는 사각지대, 그러나 황금 어장이다. 요셉이 간 보디발의 집, 감옥도 그런 곳이었다. 하나님이 보낸 것이다.
②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기준과 수준이 아닌 성령의 능력이어야 한다(슥4:6, 행1:8)
언제 그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가?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이다”,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흑암을 깨고 하나님 나라의 미션을 이루는 자다”, “분명히 성령은 나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다”라는 사실을 믿을 때이다. 그 믿는 시간이 집중이다. 서서히 내 각인, 뿌리, 체질이 바뀌고 영적써밋, 기능써밋, 문화써밋의 축복이 온다.
결론-우리가 지금 하는 일을, 지금 있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꼭 세계복음화을 위해 쓰여지길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8) - 나의 직업관과 세계복음화(창39:1-6) 2/26/2017 February 26,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7) - 나의 가정관과 세계복음화(마12:46-50) 2/12/2017
“하나님 사람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다(지난 주까지 경제관, 선교관, 세상관) 오늘은 “나의 가정관과 세계복음화”이다. 가정이라고 하면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형제 관계를 전부 포함한다.
어느 정도 가정이 위기인가? 부부 관계는 별거와 이혼 수준이 아니다. 아예 결혼을 안 하고 살겠다고 한다. 동성 결혼, 계약 결혼이라는 말도 나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도 딤후 3장에 잘 예언되어 있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서로 미워하면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가족 관계의 고통을 겪고 있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최고의 살인 사건이 형제 관계에서 나왔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떤 가정관을 가지고, 어떤 가족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할까? 본문에 예수님의 답이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자기를 찾아 온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앞에 놓고 한 말이다. 그냥 결혼해서 산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부가 아니다. 내가 낳았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다. 같은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제 관계가 아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한마디로 하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참된 가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일까?
분명히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가정이 될 것이다. 말씀 속에서 세가지만 정리해보겠다.
- 복음 안에 있는 가정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가정이다.
1) 이것이 왜 중요한가?
① 창3장에 나타난 사단이 가장 먼저 건드린 것이 가정이다. 아담을 건드린 것이 아니다. 아담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하와를 건드렸다. 그 이후에 어떤 문제가 시작되었는가? 모든 가정 문제에 대한 시작을 밝힌 것이다.
서로에게 부끄러운 자아관이 생기게 되었고(7절), 아담은 아내와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까지 원망했다(12절)
사단이 개인을 무너뜨리고, 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나중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무너뜨리게 만든 것이다.
② 그 다음에 창4장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들이 낳은 자식들인 가인과 아벨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요8:44에 보면 그냥 일어난 살인 사건이 아니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따로 있었다고 했다. 사단을 말한다.
③ 이 문제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빠져 나오는 길, 해답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복음 곧 좋은 소식이다(눅2:10).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죄와 사단의 권세를 박살낸 것이다.
이 복음 안에 있을 때 가정에 어떤 문제, 갈등이 와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전부 축복으로 바꿀 것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다. 엄청난 상처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 안에 있는 요셉을 세워 나중에는 자기를 판 그 형제들까지 살리고 축복받게 만들었다(창45:5-8). 다윗이 악신들인 그 장인 사울왕으로 인해서 첫 아내와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은 다윗은 거기서 망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자기 같이 아픈 자들을 살려내고(삼상22:2), 왕의 가문을 이루고, 전 이스라엘을 살리게 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2) 렘넌트들은 아예 처음부터 오직 복음 안에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① 출2:1-2에 레위 지파의 남자가 레위 지파의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모세라고 강조한다.
② 고후6:14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다. 멍에는 두 마리의 소를 하나 로 묶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코를 꿰어 놓는 것이다. 왜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면 안 되는가?
같이 가려면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육신적으로도 한 쪽이 자꾸 병들면 돌보다가 같이 무너진다. 마 음도 통하고 심지어는 취미도 같은 것이 좋다. 아니면 마음 고생도 심해진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인 것이다.
분명히 신자에게는 성령이 함께 한 것이고, 불신자에게는 다른 영, 세상의 영이 함께 한 것이다. 평상시는 그냥 살지 모른다. 위기와 문제가 올 때에 답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응답을 받아 헌신을 해야 할 때는 걸림이 된다.
- 복음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가정이다. 가족이 함께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데, 성장하지 못하면 보통 고통이 아니다. 인격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같다(성인 아이)
1) 본문의 예수님의 가족 관계가 처음에는 뭔가가 영적 수준이 안 맞았던 것이다.
육신적으로 함께 살던 예수님이 어느 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해도 안 되고, 걸림돌이었을지도 모 른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이 나중에는 마가 다락방 교회의 주역이 된다(행1:14).
2) 본문에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한 말씀은 형제들을 단순히 기 분 나쁘게 하고, 무시한 것이 아니다. 참 가족 관계, 하나님이 쓰시는 가족 관계를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가정에 한 사람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 가족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잠시는 갈등이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에 전 가족을 살리는 시간이 온다.
3) 가능한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포럼하는 시간을 만들라. 결국 그것이 서서히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쓰실 수 밖에 없는 흐름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이다. 흐름과 문화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 복음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미션(사명)을 이루는 가정이다.
1) 인간이 가장 행복해지고, 가장 힘을 얻고, 가장 의미 있어지는 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미션을 깨닫고 행할 때 이다. 나만을 위해 즐기는 시간은 오래 안 간다. 사랑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2)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주어 가정을 이루게 하실 때 “돕는 자”라고 했다(창2:18). 무엇을 돕는 자인가?
하나님이 아담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고, 우리에게는 복음 가지고 세상 살리라는 것이다. 하나님 주신 미션 이다. 남편이, 아버지가 그 미션을 붙잡고 갈 때 아내는 “돕는 자”이다. 남편, 아버지부터 정신차려야 한다.
부부가 정말 행복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후대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길은 이 미션의 동역자가 될 때이다.
3)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께 창3:15의 복음을 받고, 아내의 이름을 다시 지어준다.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의 “하와”라고 지어준다(창3:20). “모든 산 자”라는 말은 내 식구, 우리 부부, 우리 자식 수준이 아니다.
이제는 세상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땅의 모든 렘넌트 살리는 수준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 가정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시대 살리는 축복의 가정으로 쓰임 받을 수 밖에 없다.
결론-가족끼리 잘 먹고, 잘 놀고, 그냥 사는 가정, 불신자도 그렇게는 산다. 복음 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세상과 교회와 렘넌트들을 살리는 일을 위해 참된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 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7) - 나의 가정관과 세계복음화(마12:46-50) 2/12/2017 February 1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6) - 나의 세상관과 세계복음화(수1:1-9) 2/5/2017
올해 우리는 분명히 다가 올 세계복음화와 렘넌트 시대를 놓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2세대 렘넌트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듯이 내가 처한 여러 문제, 갈등, 어려움을 이기고 실제적인 정복의 축복을 누려야겠다.
전 세계가 불확실하고 위기라고 한다. 본문의 배겅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실은 위기였다.
이스라엘을 400년 저주에서 해방시켜 광야를l 통과시킨 지도자 모세가 죽었다. 가나안을 앞에 두고 일어난 것이다.
큰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행스럽게 모세는 이런 날을 위해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제자들을 세웠고, 그들과 함께 할 렘넌트들도 세워졌다. 이런 제자들과 렘넌트들을 세워야 한다. 이들을 통해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 제2 RUTC 운동이다.
그러면 이 제자들과 렘넌트들 앞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가? 아니다. 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요단강도 건너야 하고, 여리고성도 무너뜨려야 하고, 가나안 전 족속들이 연합한 대적과도 싸워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 앞에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위기와 문제들이 그냥 온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 모든 문제와 어려움의 배후에는 영적인 대적이 있다는 것이다(사60:2, 엡6:12-13). 이 흑암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목이 나의 세상관과 세계복음화이다. 위기와 문제가 계속 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세상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답을 붙잡고 다시 출발해야 하겠다.
-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이신다는 확신이다(절대 주권 속에 있는 세상과 나).
1) 세상의 어떤 책과 기록에도 세상 창조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 오직 성경에만 그 비밀을 밝히고 있다(절대 계획)
① 창1-3장이 왜 중요한지 아는가?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성경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인생이 있고(창1장), 그 세상을 다스리면서 최고의 행복을 누렸던 인생이 있다(창2장). 이것이 무너진 것이다(창3장)
② 첫 인생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도 고통을 당하고, 행복도 뺏기게 된 것이다. 그 배후에 누가 있 었는가? 옛 뱀이라고 불리는 사단이다(창3:1-5, 계12:9). 이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고, 고통과 저주에 빠진 세상 을 회복시키고, 그 배후의 사단을 영원히 지옥 저주에 보내시겠다는 것이 성경의 나머지다(마25:41)
2) 누가 어떻게 그 일을 이루어가시는가? 우리가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직접 하시겠다는 것이다(절대 해답).
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하고 저주에 빠졌을 때 먼저 이 언약을 주셨다(창3:15)
구약은 이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약속이다. 신약은 이 그리스도가 오셔서 인생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 활해서 사단의 권세를 밟으시고, 승천하신 다음에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성령이 함께 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고전3:16)
②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을 통해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다.
그 타락하고 저주받은 세상과 인생을 살리는 일에 전도자로, 증인으로 쓰시겠다는 것이다(행1:8)
3)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시냐?(절대 축복)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오고 가는 모든 세대의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① 2절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단순한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라는 말도 헬라어로 바꾸면 “예수”, 곧 “구원”(마1:21)이라는 뜻이다. 구원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너희에게 주는 땅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려워도 우리가 누릴 축복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② 3절에 “모세에게 말한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다”고 했다.
모세가 체험하고 모든 성경의 증인들이 체험한 것처럼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증거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③ 4절에는 “이 광야로부터 저 헷 족속의 땅과 해 지는 편의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했다.
행1:8에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언약이 같은 말이다. 세계를 살릴 자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교요 세계복음화의 언약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은 우리에게 주신 이 언약이 각인되어야 한다.
- 그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살릴 나의 준비이다(하나님이 약속하신 절대 능력)
아무리 세상이 커 보이고, 위기와 문제와 어려움이 기다려도 이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면 끝나는 것이다.
1) 5절에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어리고,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비밀을 가진 자를 영적 써밋이라고 한다. 구원받은 순간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 축복을 누린 노예 요셉을 왕이 인정했고(창41:38), 사무엘의 말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삼상3:19), 다윗 앞에는 골리앗이 무너졌다(삼상17:46)
2) 어떻게 누리냐? 두가지를 말씀하셨다(6-9절). 언약의 뿌리를 내리는 방법이다.
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다. 어떤 경우도 불신앙에 빠지지 마라는 것이다. 두려움, 염려, 낙심이 다 불신앙이고, 순간 찾아온다. 상처로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성령이 주장하시도록 기도로 들어가라.
②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환경, 사람의 소리 듣지 말고), 주야로(24시) 말씀을 묵상하라고 했다.
이 힘을 얻을 때 요단강도 무너지고, 여리고성도 무너지고, 전무후무한 역사도 나타난 것이다(수10:14)
- 이 능력을 누리면서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하나님 주시는 절대 미션). 완전히 체질되게 만들어야 한다.
1) 대적과의 영적 싸움이다. 여호수아가 싸운 전쟁이 그냥 전쟁이 아니다. 기도로 싸운 영적 전쟁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요단강가로 가고(수3:1), 여리고성을 언약궤 앞세우고 말없이 돈다(수6:12).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었다고 했다(수10:14). 하나님 사람은 모든 것을 양보하고, 이것을 가장 잘 해야 한다(가정, 직장, 사역에서). 사단은 무너지고(롬16:20), 승리자, 세상 살리는 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2) 내 현장에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받을 한 사람,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걸 한 제자를 찾는 일이다.
가나안에서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기생 라힙이다(수2장). 이 여인에게 붉은 줄을 주었다.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후손을 통해서 다윗 가문이 세워진다. 한 사람의 제자를 통해 세상에 영원한 응답과 축복이 시작된 것이다.
결론-사단은 끝없는 문제로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을 속일 것이다. 속지 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 절대 능력, 절대 미션 붙잡고 흑암 덮인 세상에서 승리하고, 정복하고, 세상 살리는 참 제자의 삶을 누리길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6) - 나의 세상관과 세계복음화(수1:1-9) 2/5/2017 February 5,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5) - 나의 선교와 세계복음화(행1:6-8) 1/29/2017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선교의 축복에 관한 언약을 주신다. 마28:18-20에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했다. “모든 족속”은 꼭 어디로 멀리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다민족 사역이다. 세계에서 다민족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가장 잘해야 하는 사역이 이것이다. 오늘 읽은 행1:8에는 “성령이 임하면 나의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땅끝”은 영적인 다른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찾아 가야 하는 장소이다. 두가지 다 우리가 꼭 놓치지 않아야 할 선교에 대한 언약이다.
주님은 왜 이 약속을 마지막에 주셨을까? 그만큼 중요한 미션이고, 결론적으로 붙잡아야 할 축복이기 때문이다.
- 잘 알겠지만 선교가 어떤 의미인줄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적어도 세가지 의미는 꼭 붙잡으라.
1) 선교는 아들을 죽여서라도 인생을 구원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소원이다(요3:16)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첫 인생이었다. 아담이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 남으로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끝없는 죄와 저주와 운명과 지옥 고통 속에 살게 된 것이다(창3장 사건).
분명한 것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원래 인생은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부모가 나를 통해 태어나고, 나를 닮은 모습으로 태어난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과 같다(선교의 당연성)
인생이 저주와 멸망에 빠지도록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전 세계로 가는 것이 선교이다.
2) 전 세계 모든 민족과 나라가 서로 미워하며, 전쟁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게 만드는 것이 선교다.
① 세상 모든 민족이 원래 하나였다. 창11장의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민족과 나라가 나누어지고, 분쟁과 전쟁이 시 작된 것이다. 그것이 마귀 작품이다. 마24:7에 보면 마지막 때에 이 마귀가 더 악한 일을 해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죽이는 일이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② 이 인생을 원래대로 하나가 되어 서로 평화하고 살 수 있도록 길이 되어주신 분이 그리스도다(요14:6)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들 이 되는 것이다. 늘 자기 욕심으로 인해 분쟁하고, 전쟁하게 하는 사탄의 역사가 깨지는 것이다(하나님 나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정치인, 외교관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각각 자기 민족과 나라 입장에서 일하다 보니 더 문제가 된다.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선교다
선교는 어떤 정치인, 외교관, 군인도 할 수 없는 가장 필연적인 일이다(선교의 필연성)
기독교가 들어가 군대를 앞세워 현지인들을 죽이고, 노예를 삼고, 식민지를 만든 것은 틀린 선교를 한 것이다.
3) 거기에 쓰임 받을 한 사람의 선교사가 중요한 것이다.
개인은 운명, 저주, 지옥 권세에서 해방 받게 하고, 백성과 나라는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길을 없다. 그리스도 한 분이다(행4:12). 다른 힘으로는 안 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이다(행1:8)
이 그리스도를 정확히 전해주고,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한 사람의 선교사만 있어도 된다(선교의 절대성)
① 노예로 간 요셉 한 사람이 그 선교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전 애굽을 살렸다.
② 성령의 인도를 받을 줄 아는 빌립 한 사람 때문에 에디오피아와 전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다.
③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이었던 11제자들을 통해 전 세계 모든 민족에 이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선교사가 되고, 그들을 돕는 지원자가 되라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도 다민족을 만나 선교할 수 있 다. 자기 것을 내려놓고 내가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선교사가 있다면 기도로, 물질로 함께 할 수 있다.
성령으로 같이 가는 것이고, 같은 응답과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 이제는 나의 선교를 찾으라.
1)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지금 나와 함께 하신 그 분이 나의 오직이 되게 만들라(내 안의 선교).
선교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소원이다. 그 분의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해도 문제가 된다.
① 구원 받은 우리는 조금만, 잠깐 이라도 그 분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집중해보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지 않고는 절대로 선교할 수 없다.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데 무엇을 나누어 줄 것인가?
선교,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그 분의 능력이 역사할 때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② 돈이 없어서 선교를 못하고, 돈이 있어서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참된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고 누리지 못 하면 그 돈의 노예가 되든지 허무하고, 외로워진다. 그것도 없을 때는 더 이기적이 될 수 있다. 그나마 있는 것 하나라도 안 뺏기려고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다. 그런 성도에게 선교는 나하고는 먼 얘기가 되는 것이다(아주 부 자였던 진젠돌프와 아주 가난했던 어린 소년 리빙스턴이 선교에 헌신한 계기가 된 일화)
2) 내가 있는 자리에서 참된 선교(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내 현장에서의 선교)
① 내 현장에 분명히 저주, 운명, 사단, 지옥 권세 아래 살아날 구원받을 영혼들이 준비되어 있다(행13:48).
늘 그 생각을 하며 살고, 그 눈이 열리도록 기도해보라. 전도를 가로막는 흑암이 꺽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 도록 기도를 하라. 어느날 전도 문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이 열리는 것이다(계3:7-8)
② 특히 다민족에서 찾아내라. 그것이 선교의 시작이다.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안디옥교회가 그렇게 세워졌다. 다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데,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 그들을 기뻐하고 축복하신 것이다(행11:20)
3) 실제적으로 선교지와 선교사를 돕고, 미래 선교사를 키울 계획을 하고 실천해보라(나의 땅끝 선교)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구원받은 우리는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다.
① 내가 나의 필요을 절약하고 정성껏 모은 선교 헌금이 선교지의 선교사의 힘을 보태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교 를 위해 쓰여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막 쓰고 진짜 헌금해야 할 때는 돈이 없다면 실패하는 것이다.
② 물질의 십일조를 드리듯이 나의 시간의 작은 일부를 선교지에서 보낼 계획도 해보라. 신혼 여행을 선교지로 가 고, 휴가를 모아 선교지로 가는 사람도 있다(단기 선교, 기능을 가지고 하는 중단기 선교)
③ 마지막 중요한 것은 미래 선교사를 키우는 일이다. 자녀 교육을 할 때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를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주는 동시에 세계를 가슴에 품는 세계화된 그릇으로 만드는 길이다.
하나님이 렘넌트들을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통해 전부 세계로, 열방으로 보내신 이유다(시57:9-11)
결론-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그 주님의 마지막 언약이 내가 누릴 언약과 축복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선교를 찾아서 하나님의 소원 속에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5) - 나의 선교와 세계복음화(행1:6-8) 1/29/2017 January 29,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4) - 나의 경제와 세계복음화(딤전6:11-19) 1/22/2017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했고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 전체를 지켜보았다. 일단 세 명의 목사가 성경 말씀을 주고, 대통령과 미국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미국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당연히 앞으로 우리 렘넌트들 중에 많은 정치인들이 나올 것을 믿고 기도를 했다.
RUTC 운동은 한 시대 특히 강대국을 살릴 렘넌트를 일으키는 운동이다(실제로 7명의 렘넌트가 강대국에서 증거를 보인 사람들이다). 제2 RUTC 운동은 이 렘넌트를 일으켜 전 세계 현장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복음화의 실제적인 방법이고,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다(사60:22, 행1:8). 우리 각자가 여기에 쓰임 받기를 축복한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 계획을 붙잡고, 그릇이 준비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몇주간 이 그릇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오늘은 “나의 경제와 세계복음화”, 나의 경제관에 관한 말씀이다.
- 나의 경제관, 왜 중요한가? 적어도 세가지 이유 때문에 올바른 경제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제관이 중요하다.
1) 경제는 우리가 세상에서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다,
그것을 돈으로 표현하고, 경제로 표현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평생 여기에 묶여 고통을 당하며 산다.
문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조차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여기에 묶여서 힘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마6:31-34). 그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 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부족하고, 갈등하고 사는가?
2) 아담이 타락한 이후 경제는 사단이 인생과 세상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① 성경에 이 돈과 물질로 인해 사단의 통로가 되어 너무 실패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 욕심 따라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가서 완전히 실패해서 나온 롯이 있다(창19장). 전쟁 중에 하나님 것을 숨기다가 저주 받은 아간도 있다(수7장). 늘 헌금을 훔쳐가다 완전히 망한 유다도 있다(요12:4-6). 헌금을 속이다가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있다(행5:1-11). 그냥 실패한 것 아니다.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했다.
② 그래서 본문 9-10절에 경제로 인한 영적 실패에 관한 중요한 경고가 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에 걸리고, 그 욕심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일만 악의 뿌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다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사단은 예수님까지도 이 돈을 가지고 유혹했다(마4:8-9). 이 돈에 붙잡히면서 영적 문제까지 오는 것이다.
3) 반대로 올바른 경제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그 힘으로 우리는 세계와 후대를 살릴 수가 있다.
① 사60:1-5에 흑암이 온 땅을 덮지만 일어나 빛을 발하면 열방과 열왕의 재물까지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흑암 세력(사단)이 세상을 덮을 때 그 속의 경제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흑암 경제, 타락 경제, 우상 경제)
이때에 그 사단의 권세를 밟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우리가 일어나면 모든 것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그 현장 살릴 전도자로 일어나라는 것이다. 이 흑암 덮힌 세상을 살릴 경제도 주시겠다는 것이다.
② 실제로 성경에 그렇게 쓰임받은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을 우상 국가로 만들어버린 아합왕 시절에 쓰임받은 오바다가 있다(왕상18장). 왕궁을 책임 맡은 장관이었고, 하나님이 쓰시는 선지자 100명을 뒤에서 경제 지원을 해줄 정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신약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다. 행 10장의 베드로를 뒤에서 지원한 피장 시몬, 행16장의 빌립보 교회의 루디아, 특히 롬16장에 나타난 인물들(보호자, 동역자, 식주인), 전부 경제 축복 받아 쓰임받은 사람들이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인 경제관은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두가지 결론이 있어야 한다.
1)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에 대한 근본적 결론부터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내가 가진 것(생명, 시간, 재물등)이 누구 것인지 결정된다. 누가 주인인가?
① 그래서 본문 15절에 부자들에게 명령하라고 했다. 마음을 높이지 말고(주인이 따로 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두지 말고(언제 주인이 거두어 가실지 모른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께 두라고 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두면 넘치게 주고,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② 아브라함이 타락한 땅의 소돔 왕을 도와주고 그가 주는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창14:23).
소돔왕이 나를 부자가 되게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축복할 것을 믿었다.
이 정도 믿음과 영적 자존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만일에 욥처럼 어려움이 올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욥1:22의 고백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갑절을 준비해 놓으셨다. ③ 모든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방법이 뭐냐? 반드시 부모가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로 소득의 첫 번째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출13:2, 34:19). 둘째는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 라는 것이다(레27:30, 말3:10). 내 인생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라는 것이다.
2) 주인이 내게 주신 것을 어떻게 관리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내 것이 아닌 맡은 것이기 때문에 주인 앞에 결산을 해야 한다. 마25장에 두가지의 비유가 이것을 잘 설명한다.
① 달란트 비유다. 핵심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을 어떻게 관리했는냐는 것이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투자를 해서 더 많은 것을 남긴다. 받은 축복 을 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냥 땅 속에 묻어 두었다. 하나님 주신 것을 마구 낭비하는 것도 문제 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말 귀한 것을 모르든지, 게으르든지, 영적 문제든지 셋 중의 하나다.
작은 것도 하나님 주신 줄 알고,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고, 절약하고, 중요한 때를 위해 남겨 놓아야 한다.
② 양과 염소의 비유다. 핵심은 하나님 주신 것을 잘 관리해서 그것을 무엇을 위해 썼느냐 하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네가 가난한 자, 병든 자, 감옥에 있는 자를 도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한 것이라고 했다.
나의 경제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남을 위해 쓴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점검해봐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전도를 위해 쓰고, 선교를 위해 쓰고, 후대 살리기 위해 쓴 모든 돈이 여기에 들어갈 것이다.
③ 본문 18절에도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부자다. 19절에는 그것이 자기를 위해 축복의 기초를 쌓고,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했다.
결론-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제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나의 경제를 찾으라. 경제를 장악한 사단의 역사를 보고 그 흑암에 뺏긴 경제를 찾아 올 렘넌트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참된 부자가 되어 이 시대 후대 살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4) - 나의 경제와 세계복음화(딤전6:11-19) 1/22/2017 January 22, 2017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3) - 하나님 응답의 시작은 현장이다(행1:4-8) 1/15/2017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가지(하나님의 최고 계획 속에 있는 나, 교회, 현장)를 반드시 찾아내서 최고의 축복과 응답의 증인으로 살다 가기를 바란다. 그 세가지 중에 오늘 마지막, 하나님의 참된 응답의 시작인 현장이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가 응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필연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다. 왜 당연하냐? 그것이 하나님 자녀의 당연한 특권이다(마7:11). 왜 필연적이냐? 응답 받은 증거를 가지고 증인으로 서야한다. 그것이 전도다. 왜 절대적이냐? 그 응답 받은 힘이 없으면 하나님 소원인 땅끝까지 가는(행1:8) 세계복음화는 불가능하다.
- 우리가 응답을 받는다고 할 때 세가지 응답이 있다.
1) 기도 응답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을 받는 것은 최고의 특권이다(요16:24)
① 마16:19에 이것을 천국 열쇠의 축복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축복이다. 구약에는 매번 양을 죽여서 피를 뿌려야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고, 그것도 제사장을 통해서 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담대히 하나님께 가게 된 것이다(히4:18)
② 우리의 크고 작은 일을 놓고 하나님 은혜와 응답을 얻기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못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기도부터 할 수 있는 훈련이 안 되어있다. 기도를 해도 자기 필요를 채 우려는 기도이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깊은 기도가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영성 훈련의 시작이 이 기도훈련이다.
③ 우리가 기도 속에서 받을 최고의 응답이 뭐냐? 성령 충만의 축복이다(눅11:13). 요셉이 이 성령충만을 받을 때 왕이 인정했다(창41:38). 다윗이 이 성령충만을 받을 때 악신 들린 사울왕도, 거인인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았 다(삼상16:13). 본문에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말씀이 그 뜻이다. 올해 이 꼭 응답을 받으라.
2) 문제를 통한 응답이다. 문제를 당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응답이었다. 내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이다.
① 분명히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저주, 운명, 사단, 지옥의 권세를 박살)를 끝냈다고 했다(요19:30)
그러면 남은 것은 축복과 응답 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 올 때 롬8:28, 렘33:3 응답을 붙잡고 기다리면 된다.
“모든 것을 합력해 주실 응답”이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응답”이다.
문제 올 때 낙심하거나 상처 받거나 흔들리지만 않으면 된다. 반대가 되면 사단의 통로가 된다(광야 이스라엘)
② 내 고집과 주장대로, 내 원하는대로 하다가 실패가 오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응답이다.
그가 구원받았다면 실패를 통해서도 깨닫게 되고, 다시 갱신해서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바꾸어 가신다. 다만 실패를 하면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내 기준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가면 실패할 이유도 없다. “네 길이 형통하고 평탄하리라”했다(수1:8, 시1편). 올해도 말씀 따라 가다가 문제도 최고 응답이 되기를 바란다.
3) 현장을 통한 응답이다. 내 학교, 직장, 사업체, 지역에서 반드시 누려야 할 전도자의 응답을 말한다.
① 본문 6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인가를 묻는다. 그때 예수님은 어떤 답을 주시는가?
그 날과 아버지께 맡기고 “오직 성령이 임하면 나의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다.
무슨 뜻이냐? 너희가 받을 응답은 단순히 문제 해결 정도가 아니고, 땅끝까지 살리는 응답이라는 것이다.
② 이 약속이 주님이 이 땅에서 주신 마지막 약속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응답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일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간증해서 그들을 전도할 수 밖에 없는 증거를 주신다는 것이다.
때로는 오해도 당하고, 손해도 보고, 핍박도 당할 수 있으나 100배의 응답이 준비되어 있다(막10:29-30)
우리는 이 응답을 가지고, 내 현장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다.
- 제2 RUTC 운동은 이 응답을 누릴 사람을 찾아 훈련시켜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꼭 세가지 회복해야 한다.
1)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응답하실 자리라는 믿음부터 회복하라.
① 나의 직장, 학교, 사업, 지역,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가? 우연이 아니다(마10:29).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불신자도 성공하는 사람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서 자기 미션을 찾아 도전한다.
② 시16:5-6에 내 분량대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머물 지역, 해야 할 일을 축복으로 나누어주셨다고 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왔지만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결론을 내릴 때 그는 애굽을 살리는 자로 서게 된다(창45:5)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셨다”, 이것을 인정할 때 내 마음과 영적 상태가 바뀐다.
무엇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천명 소명 사명으로 한다. 하나님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응답을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이 나를 지금 내 현장의 전도자로 세우셨다는 정체성을 붙잡으라
① 8절에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증거를 주시겠다는 말이다.
실제로 요셉에게 보디발의 집에서도 증거를 주시고, 감옥에서도 증거를 주신다. 나중에는 왕궁까지 보내셨다.
하나님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행6장의 중직자들)
②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이 뭐냐? 거기에 구원 받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을 찾는 것이다(행13:48)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을 만나도록 기도하다 보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만나게 되어 있다(빌립과 이디오 피아 재무장관과의 만남, 베드로와 고넬로 장군의 만남, 바울과 루디아와의 만남)
③ 그 사람과 계속 복음을 나누고 응답 받게 만들어주는 모임을 다락방이라고 한다. 올해 이 목표를 세우라. 중직 자가 한 사람만 다락방 해도 빌립 같은 참 중직자가 된다. 렘넌트 때 이것을 체험해야 렘넌트 시대도 온다.
3) 나의 24시가 성령의 능력 속에 있도록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나의 권능을 받으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① 우리가 그 축복된 일에 쓰임을 받고 응답 받도록 마귀는 그냥 두지 않는다.
내 자신이 성령의 능력 속에 있어야 한다(영성, 영적 써밋). 중요한 자리, 사람을 움직이는 중요한 자리에 갈수 록 더하다.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② 만일에 내가 있는 현장에 불신자가 가득 차 있다면 이미 그 곳에는 흑암의 역사가 가득한 곳이다(요14:30).
반드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할 수 있는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마12:28).
그때에 그 현장에 성령이 역사하면서 사단의 권세가 무너진다. 영적 흐름이 바뀌면서 모든 흐름이 바뀌게 된다.
내 현장에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할 것이다(마6:33).
반대로 이 비밀이 없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이 시대 미국에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왕따, 우울증, 정신 문제, 마약, 타락, 자살, 재앙, 테러, 전쟁, 끝없는 문제가 계속 되는 것이다)
결론-하나님은 내가 있는 현장을 내게 맡기셨다. 거기서 생명 살리고, 최고의 응답을 받는 전도자로 서기를 바란다
RUTC 운동의 모델이 되는 교회(3) - 하나님 응답의 시작은 현장이다(행1:4-8) 1/15/2017 January 15, 2017